[설교원고]

시편 72편 / 평강의 왕

전봉석 2021. 11. 12. 11:13

211114 주일

 

시편 72편

평강의 왕

 

 

시 72: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시 72: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들어가는 말

 

오늘 시편은 [솔로몬의 시]로 분류 돼 있으나 솔로몬의 시로 보기에는 다소 걸리는 부분이 있다. 우선 마지막 19절에 보면,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하는 표현이다. 이를 보면 노년의 다윗이 왕이 된 아들 솔로몬을 위한 기도를 솔로몬 왕이 편집한 것이 아닌가싶다. 또한 시적구조로 보면 17절까지로, 나머지 18-19절은 시편 41편 [다윗의 시]에서 1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하는 부분은 ‘다윗의 시’ 특유의 송영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시]로 보는 것은 솔로몬 특유의 지혜로운 교훈으로 후대를 잇는 왕들에게 ‘평강의 왕,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본다.

 

시적구조는 앞서도 밝힌 바, 1-17절까지로 1연(1-7절)은 왕의 아들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평강의 왕’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2연(8-11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이 전 세계를 통치할 것임을 예언한다. 3연(12-17절)은 왕의 성정과 그의 통치를 칭송하고 있다. 18-19절은 송영과 후렴구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시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이를 위해 무엇이 우선적으로 필요한지를 교훈을 얻고자 한다.

 

1연(1-7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 72:1).”

 

시의 첫 구절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 구한 기도의 내용과 흡사하다.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고 저는 ‘주의 판단력’을 구한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대하 1:10-12).”

 

솔로몬은 후에 전언하기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곧 ‘주의 판단력’을 가지고 사는 일은 바울 사도의 설교와 같이 매우 중요하고 뜻 깊은 것임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곧 바울의 간구를 간추려 다섯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둘째,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신다.

셋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다.

넷째, 맡기신 영광과 그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다섯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남은 생을 살기를 바란다.

 

오늘 시편은 이를 한 마디로 더 간추려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2-3).” 곧 공의로운 재판과 평강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이것이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신 24:17).” 즉 개념적인 진리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삶으로의 실체적 진실로써의 진리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사 56:1).”

 

우리가 살면서 주의 판단력으로 산다는 것은 막연한 기대나 어떤 추상적인 위안의 삶으로가 아니다. 이를 다시 정의하면 세상 권세에 잡혀 살지 않는 것,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그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산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이는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시 146:7).” 그 하나님의 판단력으로 우리도 오늘의 자유를 사는 것이다.

 

2연(8-11절),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통치로 굴복하실 것이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시 72:11).”

 

다윗은 시편 22장에서 누누이 강조하였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27-28).” 모든 끝이 돌아올 것이다. 그 끝에는 모든 족속이 예배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주의 것이다. 이를 또한 바울의 설교로 정리해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여기서 그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왕이시다. 그 이름을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 곧 천국 백성이나 지옥 백성이나 모두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실 것이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실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다. 이때 누구는 천국 백성으로 기쁨을 누리며, 누구는 지옥 권세 아래에서 후회와 탄식으로 말이다.

 

오늘 시편은 이를,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시 72:7).”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노래한다. 이를 또한 바울의 설교로 정리하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우리도 죽음의 권세 아래 있었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 14:2).” 이에 걸맞은 삶,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곧 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복이었다. 하여 솔로몬의 부친 다윗은 그렇게 찬송한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 22:27-28).” 이에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11).” 하는 오늘의 시는 모든 결국의 결국이다.

 

3연(12-17절), 우리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는 것.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시 72:12-13).”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는 것이 복의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를 또한 바울 사도의 설교로 다시 들어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는 어떤 의미나 당위로써가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권리이면서 의무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 오늘 시편 끝부분에서는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시 72:17).” 이를 이번에는 사도 요한의 설교로 들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므로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2).” 이는 곧 도래할 우리의 미래다.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의 나라다.

 

나오는 말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8-19).”

 

우리의 구원에 우리는 일조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자유의지 운운하며 마치 스스로들 선택한 줄 아는데, 이를 칼빈의 설교로 정의하면, 이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곧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작정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다. 고로 우리의 어떤 공로나 업적으로도 아니다. 종종 타종교나 기독교 내에서도 사람과 하나님의 합작으로 우리의 믿음을 설명하는데, 이는 매우 어리석고 교만한 판단이다. 스스로 돌아보면 우리의 믿음은 이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일은,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다. 평강의 왕, 우리 구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로 의의 길을 가게 하신다. 고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요한의 설교에서 찾아보며 마치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첫째, 말씀이 우리 삶을 주장하시게 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일상 속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셋째, 우리가 마땅히 이 땅에서도 주의 영광을 보고 누린다.

넷째, 평강의 왕, 그리스도의 영광이 은혜와 진리로 우리 안에 충만하시다.

 

이를 붙들고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우리에게 주소서.” 하고 주께 아뢰자. 반드시 ‘그의 날에’는 “주의 공의”를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다(시 72:1). “그의 날에”는 주의 자녀들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을 영원무궁토록 누릴 것이다(7).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이 땅에서 궁핍하고 소외되어 핍박 받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이를 위해 오늘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한다(15). 즉 사도 요한의 설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그것이다.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으로 “그의 영광을” 맛보고 산다.

 

이를 바울은 사랑을 설교하면서 비록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곧 그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이 사랑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바로 알려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