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전봉석 2022. 2. 15. 05:09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민 35:34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성전 봉사자’로 레위인을 따로 구분하고 저들은 기업을 주지 않으셨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물로 저희 몫이 되게 하신 것이다(1-8).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 다음은 도피성을 두어 과실로 인한 살인을 보호하셨다(8-15). 이로써 무죄한 자의 피흘림을 막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또한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하여는 엄히 그 죄를 물으셨다(16-21). 그러나 우연히 어쩌다 그린 된 경우는 저를 무조건 보수자의 손에 넘기지 못하도록 하셨다(22-28). 어찌 됐든 피 흘림을 주의 땅에서 막음으로 땅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심을 볼 수 있다(29-34). 그에 따른 판결은 신중하고 또 엄격해야 한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 19:15).”

 

하여,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민 35:34).” 오늘 본문은 그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확실히 하신다. 시인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이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그 백성들에 대하여 결코 외면하지 않으심을 알린다. 고로 우리는 주께 고하고 구하고 아뢰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83:1).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시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우리가 이 땅을 살며 이와 같은 의뢰가 없었다면 어찌 살까? 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분명하여서,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10).” 이와 같은 말씀이 보증이 되어 우리에게 있음은 복되다.

 

곧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만이 사는 동안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러니 아이들을 대하거나 누구의 소식 앞에, 또는 저를 마주하고 격려해야 할 때 내가 주를 신뢰하지 않고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가령 어떤 아이에 대해서도 그 부모를 보고 아이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그저 그런가, 하고 외면하고 모르는 체 하며 살면 될 것인데… 내 안에 주를 신뢰하는 마음을 주신 까닭이다.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말이다.

 

다른 생각할 것 없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에겐 세상이 알 수 없고, 줄 수도 없는 이와 같은 놀라운 믿음이 있다.

 

곧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할 때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환경과 상황과 여건 등 원수는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는 원수가 된다.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시 83:2).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의 내가 아니다. 그리 두지 않으신다. 바울의 설교는 이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곧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주는 우릴 위해 싸우신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신 20:4).”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힘쓰고 있는지, 주가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는 있는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결국 이 땅에서 믿는 자로 사는 일은 숱한 공격,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려는 온갖 어려움이 닥쳐오는 것과는 필연적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시 83:3).

 

이것은 저의 일이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세상을 살며 느긋하고 여유 있고 평온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이 이처럼 누누이 강조하고 주의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곧 우리를 대적 하려는 것들, 내 안의 어떤 노여움에서부터 밖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대적과 유혹은 쉴 새가 없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숨기신다. 감추시고 보호하신다. “내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 49:2-3).” 오늘 날 일련의 여러 위험요소들이 우리를 쥐고 흔들듯 위협적이다. 특히 그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핍박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모두가 저들 속의 무의식적인 시기심 때문이다.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시 83:4)

 

어떤 꼬투리만 잡히면 교회는 도마에 올라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마치 이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나 공로나 더 나은 삶을 과신하려는 듯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겐 은근히 적이 많다. 하다못해 즐겨보는 TV 대부분의 영상도 하나님을 대적하기 일쑤다. 무속과 사이비집단, 샤머니즘적인 미신 행위들이 웃자고 덤빈다. 넋을 놓고 있다간 같이 웃고 즐기느라 정작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데도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시 3:1-2).

 

어쩌면 저들의 공격 또는 괄시와 천대는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도 일러,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곧 우리가 주의 백성으로 주의 부르심이 맞는 자로 산다는 일은 그저 안이하고 태평한 삶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의 실패뿐이다. 우리는 승리한다. 저들은 우릴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8).”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시 84:5).

 

그러하나 결국 저들의 끝은 비극적이다.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삼하 17:23).” 주의 종 다윗을 대적하려다 저의 선택은 비참하였다. 시인은 이에 허탄해 한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시 2:1).

 

그 결국을 우리가 앎으로 우리는 굽힘이 없다.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사 8:10).”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리로 든든히 세우신다. 나로 하여금 주만 바라게 하신다. 대충 어찌 살려고 할 때는 세상 사람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으나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시 83:9).

 

결국 저들의 결과로 알고 그 결국은 우리 앞에서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곧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이를 직접 체험하고 목격할 수 있다. 어제는 아이들과 수업하다, 내가 어찌 신학을 하게 되었고 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모든 것을 책임지셨는가를 알려줄 때 아이들도 믿기지 않아 에이, 설마!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늘 내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꿈만 같다. 97학번으로 다시 십년 만에 신학부로 편입했을 때도 나와 그럴 사이가 아닌 이인데 저의 손길을 통해 5학기 그 모든 등록금을 맡기셨다. 다시 엇나가 훌쩍 십년의 시간이 지나고, 09학번으로 신대원을 다닐 때 6학기 전 등록금을 하나님이 일괄 책임지셨다. 나는 늘 이 거짓말 같은 사실 앞에서 몸서리친다.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떨린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사 43:13-14).” 그러니 그 외 소소한 삶의 구석구석까지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며 나를 이끄시는데, 내가 어찌 이를 부정할 수 있겠나? 곧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아이들은 나의 그러하였던 일에 놀라워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으나, 누구에게라도 나는 나의 실전에서 내 생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방어하고 계심을 알게 하고 싶다.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양떼를 기르시는 목장으로 나는 이를 맡은 자로 여기에 두심이려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시 83:12)

 

때론 생활의 곤란한 형편이 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의 건강이 나를 굴복시키려 할 때도,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이를 체험하고 알고 그리 살아가고 있는 것은 성도뿐이다. 남들에게 백날 떠들며 말해주어도 저들은 그저 우연으로 또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따름이겠으나,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오늘 내게 두시는 이 모든 일이 결코 헛되이 주어진 게 아님을.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83:13-15).

 

어쩌면 인류의 멸망은 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회개할 수 없는 무능력 때문이다. 회개는 성도의 무기다. 내게 두신 출구이며 도피성으로 나의 생명을 지키신다. 고로,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시 83:16).

 

그러할 수 있을 때 그러는 것이 가장 귀한 복인 것을.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못해 구원 받지 못함을.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잠 28:14).” 저들은 굳이 회개할 게 없다. 잘못은 인정한다 쳐도 다들 그러고 사는 일로 치부한다. 그 결과 자신은 별로 용서를 구할 게 없다. 한데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그러니 참… 때로는 말로 어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뭐라 아무리 일러 말해준다 하여도,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7-18)

 

하나님이 이를 알게 하셔야 할 일이다. 나는 다만 그에 앞서 저에게 알리는 나팔수다. 신호등 같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다.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께 영광으로 나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니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 놀라운 사실은 오늘 시편은 단 한 구절의 함축으로 정리해주는 것이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그러므로 우리는,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7-8).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기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9-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