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1
오늘은 각각의 첫 구절에 모든 의미가 함축된다. 특히 신명기 28장은 복을 받는 길과 저주를 당하는 길이 뚜렷하게 갈린다. 그 길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것.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라는 푯말이 세워져있다. 그런데 이어서 시편을 보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시 53:2-3).” 왜 그러는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돈 앞에 섰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의 신앙을 소유하고 사는지가 판명난다. 말로나 행동으로야 누군들 선을 구하고 의를 추구하려 하지 않겠나? 그런데 공산주의 유물론이나 자본주의 유물론이나 결국은 하나다. ‘돈만이 유일하다’는 것과 ‘돈만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돈의 위력 앞에 우리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돈은 이미 화폐 이상의 힘과 권력과 명예와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칼 막스는 어디 말하길, ‘나는 못 생겼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돈이 최고의 선인 세상이다. 예수님은 이미 이를 아시고 말씀하시길,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돈은 모든 보물의 보물이다. 어느 유명한 랩퍼가 자신의 지하에 수십 대의 슈퍼카를 자랑하며 ‘돈이 최고다.’ 하고 외쳤다. 그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 우리를 인도하는 눈이 온통 그리로 쏠려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2-23).
볼 걸 바로 보지 못하는 눈이 우리로 그릇 된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래서 그 길의 중앙에 적힌 푯말에는 이어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그러니 문제는 이걸 읽을 수 있는 눈이 어두워진 것이라, 신명기 28장의 오분의 일(14절까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내용이 저주에 대해 일일이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저주의 길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말씀이겠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45-46).” 그리고 마지막 한 구절, 큰 글자로 이렇게 새겨져 있다.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64).” 결국은 이 모든 게 다 맘몬 곧 돈의 신 때문이다. 어쩌면 그 푯말 끝부분은 다시 또 처음 경고를 되풀이하듯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하고 저주의 경고를 나열하였다(15).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 39:6).
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소유인가? 어쩌면 오늘 우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이 아닐까? 돈을 사랑하면 타락하게 돼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 귀한 돈이 남도 찌르고 자신도 찌른다. 결국 믿음을 떠나게 한다. 욥은 그래서 자신은 일찍이 돈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고 항변하기도 하였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욥 31:24-28).” 그러니 다들 오늘을 사는 게 거시기 하긴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경건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을 행사하신다(시 86:8-13). 바른 신앙은 그 돈을 쓰는 걸 보면 안다. 십일조를 보면 그 신앙의 정도를 알고 헌금과 구제를 하는 걸 보면 하나님과 어떤 사이인지를 알 수 있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시 86:8).
우리 삶에 기이함으로 드러나는 사실 중에 하나는 없는 가운데서도 감사와 찬송이 나오는가 하면, 있는데도 늘 허기진 개새끼마냥 깽깽거리며 여기저기서 아무 거나 주워 먹는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둘 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주를 바랄 때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하는 고백이 내 것이 된다. 반드시 우린 마주할 것이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5-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참 신 되심을 입증하는 삶’으로 살아야 한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시 86:9).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그러할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 22:27-28).
하는 말씀은 이루어진다. 그때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하는 그 자리에 우리를 둘러 세우실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입증하실 것이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86:10).
이처럼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복되다. 곳곳에 얼마든지 말씀이 있다.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말씀을 듣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는 위대하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4).” 몸이 어디가 안 좋고 무슨 일로 힘들고 또 어려움이 어떻게 우리를 덮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에서 결코 실패가 없음을 보이실 것이다. 우리에겐 실패도 실패가 아니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 86:11).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돈의 위력이 아무리 세상을 쥐고 흔든다 해도 우리의 기쁨은 아랑곳할 게 없다. 그렇게 시인들은 찬송하고 또 간구한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25:5).
곧 말씀을 갈망하는 사고 것보다 더 위대한 삶은 없다. 세상 사람들이야 보이는 것이 전부겠으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이라,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27:11).
저들에게 나로 증거를 삼으실 것이다. 나는 나의 부모와 형제와 내 모든 곁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기도할 때에 저들의 삶이 결국은 하나님의 자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하여 주의 살아계심의 증거로써 말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43:10).
한결 같은 간구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에 지혜자도 말하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시 86:12-13).
누구는 자신의 인생을 두고 지옥 같다고 하였다. 한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도 알 수 있었다. 사랑을 해도 그 사랑이 지옥 같고, 미워해도 그 미움으로 사는 게 지옥 같은 삶으로, 누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국을 곁에 두고 사는 게 지옥이라!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누구를 사랑하는 일도 미워하는 일도 모두가 지옥살이 같다. 그러나 우리 주의 자녀들은 그 영혼이 그와 같은 지옥에서 건지심을 받았다는 데 확신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자랑할 것이다. 더는,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세상 사람들이 좇는 길로 달려가지 않는다. 돈을 구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살지 않는다. 아등바등 살지도 않는다. 욥의 고백과 같이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 17:34-35)."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령 두 연예인이 함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가 했더니, 어느 순간 한 사람은 돈과 마약과 여자로 찌들었고 한 사람은 주의 종이 되어 목사가 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동무로 오랫동안 지내오다 한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로운 주의 사람으로 살고 한 사람은 여전히 사느라 아등바등 죽지 못해 사는 꼴로 산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주의 부르심은 확실하였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시 44:7-8).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유다. 영원히 들어갈 나라에서 누리고 살 영광이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이와 같은 믿음으로의 삶이 복되다. 그러니 오늘을 바로 사는 비결은 은혜 베푸심을 믿고 구원의 길을 걷는 일이다. 시편은 항상 이를 강조하고 있다(시 86:14-17).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시 86:14-15).
당면한 현실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고로 우리 자신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성도라면 자신에 대한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긴다.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시 86:16-17).
아, 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지.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다.' 하는 구절 하나로 모든 게 다 해결된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들이 뭐라 해도 알 바 없다. 당장들 돈돈거리며 사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셨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 바울은 우리에게 힘주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이와 같은 말씀으로 든든하다. 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결국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주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된 게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사신, 주의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있다면,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신 28:64).” 하는 오늘 경고의 푯말이 눈에 확 띈다. 오늘 말씀은 마치 최후통첩 같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1-3).
이 악랄하고 기가 찰 노릇 앞에서 우리는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6).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0) | 2022.03.18 |
---|---|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0) | 2022.03.17 |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0) | 2022.03.15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0) | 2022.03.14 |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0)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