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7 주일
시편 87편
나의 모든 근원
시 87: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은 결혼보다 비혼주의로 동거를 먼저 선호한다. 노인들은 늘그막에 졸혼을 꿈꾸고, 이혼은 더 이상 흠이 될 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들의 판단을 고스란히 이고 지고 산다. 누구는 혼자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기도 한다. 요지경인 세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은 더 이상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닌 게 되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실 리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이는 첫째 되는 계명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9:40).”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부부 사이는 어쩌다 맺어지는 인연의 결과가 아니다. 사랑은 책임을 상실하였고 좋아한다는 감정은 개인의 선호에 따라 좌우된다. 오늘 날 사랑이 얼마나 악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말씀이 무색한 시절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 전제다. 우리는 값으로 산 존재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로 우리가 건강을 살피고 사는 날 동안 자기 몸을 위하는 까닭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앞서 이러한 말씀을 우선 언급하는 까닭은 오늘 시편의 주제가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의 찬송시다. 곧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산다는 것, 우리가 경건한 자로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흠과 티가 없이 경건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일이다. 이에 오늘은 그럴 수 있는 자격과 기준에 대해 살피고 이는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이해
앞서도 밝힌 것처럼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온에 대한 찬양시이다.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이 앗수르의 산헤립 군대 18만 5천 명에 의해 포위되었다가 주의 천사들이 저들을 진멸하신 후 올려드리는 찬야으로써 시적배경일 수도 있고, 바벨론에서 70년 만에 풀려나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며 기쁨과 용기를 담아 부른 찬양시로써의 시적배경일 수 있다. 어느 것이든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실 때를 찬송한다. 그렇듯 시온의 영광을 찬송하는 예언자적 시로 볼 수 있다.
시적구성은 간단하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1연은 1-3절로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시온의 영광스런 지위를 회복하면서 부르는 찬양’이다. 2연은 4-7절로 ‘하나님의 도성에서 시온을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찬송’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두 단락을 중심으로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지,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필수조건이 무엇인가를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보려 한다.
첫째,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시 87:1-3).”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시적 용어는 ‘하나님의 터전 시온’과 ‘야곱의 모든 거처’다. 우린 저마다 가옥과 가옥, 전토와 전토를 이 땅에서 소유하는 것으로 복의 근원을 삼으려 한다. 한데 성경은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즉 혼자 살기에 과분한 집 크기와 시설은 성경에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우리가 거룩한 것은 주를 모시고 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곧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예루살렘과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은 회복돼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이것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무궁한 영광이 될 것이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으로 살다오라고 보내신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완전하였던 사람은 없다. 하지만 또한 한 사람도 완전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없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로 용서하시고 천국 백성을 삼으시는 것, 이를 깨닫지 못하면 더는 사람 구실 못한다. 성경의 가르치심이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2-3).” 결국은 말씀으로다. 말씀은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온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33).” 고로 우리는 그의 아들이 되었다. 이는 우리 안에 두신 ‘착한 일’ 곧 믿음으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모태’로 사용하신다.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시 87:4-5).”
라합도 바벨론도 모두 이방나라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곧 우리 곁에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과 사람들이 있다.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도 모두 하나님께로 났다. 이를 위하여, 곧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곧 우리는 라합이었고 우리 민족이 바벨론이었다. 우리가 블레셋이며 두로이고 구스였다. 자, 이를 바꾸어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그 증거 오늘의 우리 자신들이어야 한다.
세상이 우릴 보고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울은 이를 서술하기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정말로 이를 실감하며 살고 있나? 세상적으로는 비루하고 모자란 것 같은데 우리보다 부요하고, 우리보다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 또 있나? 즉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로 주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게 하심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듯하나,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삶으로 살아서 이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야 한다. 다들 반목과 이혼이 난무하고,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이때에 가장 놀라운 사실 하나,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시 87:6).” 우리를 하나님의 민족으로 등록하셨다. 곧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 국민이다. 하다못해 이 땅에서도 미국 시민권자를 함부로 취급하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살아가는 모양새가 우린 어떤가?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사느라 사는데 찌들어서 ‘돈만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야!’ 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스스로 우리는 자주 망각하는 것이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6).” 우리는 이제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탄은 기를 쓰고 우리를 흔들어댄다. 천국 백성인 것을 잊고 살게 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연연하느라 여념이 없게 만든다.
결코 먹고 사는 일이 가벼운 문제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를 등한시해도 된다는 말씀도 아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눅 17:27-29).” 당연히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야 한다.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언가? 그러느라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기본적으로 유물론주의 사상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를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나오는 말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시 87:7).”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나의 모든 권원’이 시온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지경에서도 노래하고 뛰어 노는 자로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세상 기준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지금 혹시 고통 중에 있나? 주가 좀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다. 사는 게 혹시 지옥 같은가? 그것은 천국 시민으로 세상 시민들처럼 살려고 바동거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초대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명절 끝 날이면 나름 스스로 만족스러워할 때에 주가 목마르지 않나? 하고 부르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명절 끝에 부부싸움이 가장 많고, 이혼율이 높다고 하니 것도 알만한 일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곧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실 때,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나의 모든 근원’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오직 주가 거하심으로 가능한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시온으로 올바르게 재건되고 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시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우리로 만족함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오직 우리는 증거가 된다.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시 87:7).”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8편 / 기도의 절벽에서 (0) | 2022.04.08 |
---|---|
5) 칭의(稱義) (0) | 2022.04.01 |
시편 86편 / 주는 나를 돕고 위로 하시는 이 (0) | 2022.03.17 |
시편 85편 / 의가 주의 길을 닦으신다 (0) | 2022.03.11 |
3) 회심(회개, 인생의 방향전환), (겔18;30~32) (0) | 2022.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