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대하 29:2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시 111:10
남유다 12대 왕 아하스의 폭정이 끝나고 이어 13대 왕으로 히스기야(B. C. 715-687년)가 왕위에 올랐다. 저는 다윗 이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열왕기하 18-20장의 내용과 병행을 이룬다. 열왕기서는 저의 통치와 역사적인 측면이 상세히 기록된 반면 종교적인 측면은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되었다. 하지만 역대기서에서는 저의 산헤립 침공 기사 외에 모든 사실은 생략하거나 간단히 언급하고, 저의 종교적 측면에 치중한 것을 본다. 성전정화나 유월절 준수 등의 업적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저의 실수는 생략하고 그 일시적인 교만에 따른 회개를 간단히 언급한다. 그런 부분을 생략한 것은 의도적으로 성전정화나 제사제도의 회복 등 신앙과 종교적인 업적을 부각시킨다.
저는 25세에 즉위하여 29년을 통치하였다. 조상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것을 자세히 서술함으로 그의 업적을 영적인 측면에서 살피고 있는 것이다. 저는 아하스에 의해 폐쇄되었던 성전 문을 다시 열고 보수하였다. 제사장을 세우고 레위인들을 불러서 선친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한다(3-19). 특히 6-10절에 수록한 히스기야의 연설은 남유다의 재앙이 부왕의 우상숭배와 하나님 배반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이어서 예루살렘의 주요 인사들을 소집하고 성전에 올라 제사장들이 거행하는 속죄제를 드린다(20-24). 이를 시작으로 성전의 제사를 회복한다(25-36). 다윗의 규례에 따라 성전의 찬양단을 회복하고 번제를 복원하였다. 결국 그렇게 하여 저는 성전의 모든 제사를 회복하였다.
이와 같은 저의 신앙은 그 어머니의 모범이 필연적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1).” 스가랴는 앗수르의 남유다 침공 당시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 진실한 증거자였다.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사 8:2).” 이는 지혜자의 말과 같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즉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곧 이와 같은 신앙 안에서의 성장은 마치 바울에게 있어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같이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이에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적히 행한다 하는 것은 그 신앙의 척도가 된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신 6:18-19).” 곧 훌륭한 사람은 여럿이겠지만 신앙으로 그 믿음이 온전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잠 21:2).”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나 그 삶의 기준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고로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다시 말해서 우린 모두 죄인이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값으로 의인이라 하심을 받아서 산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순전히 내가 이룬 성과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특히 주신 자녀에게 믿음의 본이 된다는 일은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그러므로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과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함이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3-5).
고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성경의 일관된 입장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곧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예배 마치고 같이 점심을 먹고 아이와 같이 교회로 올라왔다. 우리 아들과 같이 저도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학기를 하면서 이번에 금융감독원 시험도 치러볼 계획이다. 12월 중하순으로 잡은 가족들과의 유럽여행이 새삼 마음을 어렵게 하는지, 평소 가지고 있는 불안장애를 앞서 걱정하고 있었다. 하긴 13시간 비행과 두 주간의 긴 낯선 여행이 예기불안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그 모든 일정을 자신이 잡고 벌써 비행기 티켓도 마친 뒤라 날짜가 다가올수록 뒤늦게 취소할 수도 없고,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그렇고… 이런저런 말이 아이의 속엣 얘기여서 우린 같이 기도하며 담대함을 주시기를 바랐다. 한편으론 저 앞에 자신과 같은(?) ‘나 같은 이’가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인지… 그러는 동안 나는 예배 마치기 무섭게 도로 오피스텔로 간 아들이 마음에 또 걸렸다.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 오늘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여러 어려운 환경과 처지 가운데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곧 주를 바라며 주만 바람으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곧 나의 허물과 실수까지도 하나님은 의로우사 선으로 바꾸실 것을 믿는다.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나야 말로 돌아보면 아이들 한참 어렸을 적에 신앙적으로 너무 황폐한 삶을 살았던 터라, 그 모습이 각인되어 행여 주 앞에서도 면이 안 서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오늘까지 이처럼 잘 자라게 하셨던 것처럼, 믿음 안에서 함께 지나오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나는 여러 생각으로 마음을 들락거렸다. 그러해서도 오늘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하여 나의 남은 바람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1-12).”
그리하여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4-15).” 그래서도 나는 더욱 주를 바란다. 주의 도우심이 아니면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음을 고한다. 하물며 자식이나 아이들이나 누구 한 영혼에 대하여 내가 무슨 낯으로 주를 나타낼 수 있을까?
오늘 시편에서는 이를 정직히 주 앞에 내어놓게 된다.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11:1).
과연 우리의 정직은 무엇일까?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11:7).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112:4).
곧 우리의 의와 공의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것으로 그의 얼굴을 뵙고 그의 자비와 긍휼 가운데서 산다. 하여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잠 11:6).” 즉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5:8).” 하면 우리가 정직할 수 있는 수단은 회개이고 늘 주 앞에 서는 삶으로 자비와 긍휼하심을 바랄 뿐이다. 내가 아들을 혹은 아이를 무슨 수로 본이 되고 덕이 되어 히스기야의 모친, 스가랴의 딸과 같이 저들을 신앙으로 양육할 수 있을까? 이는 모두 주가 행하심으로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97:11).
이에,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111:2).
오늘 시인의 권면은 간단하다. 기다림이다. 주의 행하신 일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기다릴 줄 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엉터리로 엉망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주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오늘에 가능한 것은 없다. 두 아이의 바른 성장과 함께 나 같은 죄인을 하등에 쓸모없는 것을 이처럼 채우시고 두시는 것만으로도, 이제 더는…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9:113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어떻게 내가 나의 더러운 손을 씻을 수 있을까? 이는 단 하나,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내가 그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안다. 회개하고 묵묵히 주의 뜻을 기다리며, 두신 한 날의 수고로 산다. 이는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 내가 안 게 아니라, 알게 하신 이의 예정하신 의다. 이를 위하여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므로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3-4).
오늘 시인의 고백은 모두 내 이야기다. 나로 그의 행하신 존귀한 일을 알게 하시려고 나의 허물과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주의 은혜로 기적을 행하셨다. 이는 엄청난 사실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나는 어제 아이와의 대화 후에 저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고 주께 고한다. 또 한 녀석은 무슨 TV 개인방송 신입들 체육대회에 나간다고 들떠서 온통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이를 말려야 하는지 격려해야 하는지 나는 몰라서 어렵다. 마음은 이래저래 불안하고 어려우나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이처럼 주 앞에 나아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나로 주께 감사하는 것,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5-6).
주가 행하심을, 주가 행하시도록, 나를 모두 주 앞에 내어드리는 일, 그리하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그러할 때 확실해진다.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삼상 12:16).” 때론 더디고 미덥지 않아 마음이 조급할 때에,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7-8).
곧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결국 말씀은 이루어져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사 33:6).” 그러므로 무엇을 귀히 여기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50:10).” 그러할 때에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이를 붙들고 오늘도,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9-10).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0) | 2022.10.19 |
---|---|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0) | 2022.10.18 |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0) | 2022.10.17 |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0) | 2022.10.15 |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0) | 2022.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