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전봉석 2023. 1. 18. 05:24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2, 17

 

 

 

인격적인 관계 맺기는 무던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게 싫어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물이나 짐승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우리로 그 긴 시간을 참고 또 기다리시며 이루시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관계를 위하여서이다. 더욱이 신앙적인 인격은 거룩한 삶을 일깨움으로 상호 친밀한 관계로 들어간다. 우리로 경건한 삶을 또한 거룩한 인격을 요구하시는 바는 곧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혜로운 삶은 인격적인 자질을 갖추게 하고 우매자의 길에서 벗어남으로 심판의 때를 준비하게 한다.

 

우선은 거짓을 멀리한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 오늘 잠언은 이를 먼저 다룸으로 우리가 주 앞에 정직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저들을 두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이는 거짓을 싫어하심을 명백히 하심으로, 성경은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1-12).” 이를 싫어하심에 대해 분명히 하였다.

 

우리가 정직하다함은 하나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주의하는 것이고 거짓되다함은 그 속에 자신을 우선하는 마음에서다. 결국 교만의 일로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2).” 오늘 잠언은 마치 징검다리를 놓듯이 그 보폭을 우리 삶에 두고 있다. 그날에 이르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그러나 상대적으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2).”

 

우리 삶의 원리는 명료하여서 뿌린 대로 거둔다. 오늘 잠언이 의도하는 길이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3).” 이를 시편으로 옮기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4:11).

 

곧,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2).

 

이와 같은 진리는 우리로 무엇을 성취하려 사는가? 하는 데 따른 답을 제시한다.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6-7).” 우리의 정직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최고의 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우리가 넉넉히 들어갈 나라, 그러므로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26:4-5).

 

요 며칠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주신 바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의 일로 주신 데 따른 감사와 수용을 자주 묵상하게 되었다. 나는 장모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했다. 나아가 주신 데 따른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주를 바라는 일, 그렇지 않으면 좋았던 시절만 떠올리며 헛된 욕심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살 뿐이다. 해서도 나는 허튼 꿈을 삼간다. 어쨌든 손위 처남은 좋은 의도로 돕고자 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정중히 거절하였고,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두고 마음을 멀리하는 데 힘썼다. 이는 성경의 일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덩달아 어디에 집을 사고 이를 구하느라 대출을 얻고 돕네 마네 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오늘의 삶에 족한 이유와 움직이게 하실 때면 주가 먼저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으로 앞장서실 것임을 확언하였다. 아내가 서운해 하는 마음은 알지만 아닌 것에 대하여 나는 임의로 무리하게 집을 소유하고 교회를 옮기고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으로 하시게 하는 의뢰함을 하나님을 기뻐하신다. 설령 그러다 득이 없다 해도 우리가 얻을 득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으로 판단하였다. 자세히 글로 옮길 수는 없으나, 해주겠다는 데도 왜 싫다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저들 반응에 나는 무심(無心)하였다. 무심함으로 일심(一心)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한 마음, 오늘 시편의 바람도 그렇다. 다른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0).

 

즉 일심으로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하여,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3:5).

 

그러할 때,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115:1).

 

이제 내가 사는 날 동안 주를 바람으로 정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주가 이루신 일에 대한 믿음에서다. 이 원리는 아주 간단한 것이어서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17).” 오늘 잠언의 이 논리는 영적으로도 분명하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사 3:10, 고전 15:34).” 하여 나는 무리한 것을 바라지 않고 어떤 일을 추구하는 데 있어 하나님이 이루시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결국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23).” 하는 잠언의 극명한 전언은 우리의 선이 곧 주가 행하심인 것을,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28).” 우리 주변의 여러 사람이 마치 이를 표본처럼 보여준다.

 

우리가 깨어 의를 행한다는 것,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30).” 나는 이 잠언의 명언을 사랑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9).” 오늘도 한 날을 허락하신 이유,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 20:10).” 그러므로 다윗은 절규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51:1-2).

 

죄의 문제 앞에서 저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4).

 

오직 주께만. 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1).” 그러게, 돈이 속이지… 살면서 사느라 다들 고역이라. 다시 밝히지만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이게 한 끗 차이라, 까딱했다간 넘어지는 곳도 여기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내가 뭐 좀 나은 게 있어서가 결코 아니다. 주의 긍휼하심으로다. 하여 저는 다시 구한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8).

 

죄로 어그러진 고통을 느낄 때,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9).

 

주께 바랄 수 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0-11).

 

우리로 가장 무서운 일,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2).

 

구원의 기쁨이 잃으면 아무 것도 헛되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3-14).” 진정 두려운 게 뭔지 모르면 이보다 불쌍한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7)

 

아,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4-15).

 

우리가 잃어버리면 슬픈 것,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5).

 

주를 찬송하는 입술을 잃으면 더는 기쁨도 잃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후 5:17, 골 3:10).” 그리하여 우린 이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하여,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1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