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 119편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전봉석 2023. 1. 19. 17:47

230122 주일

 

시 119편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편 119:49-50).”

 

들어가는 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때가 악한 세 가지 현상>

첫째, 게임 및 가상현실에 빠져드는 것.

둘째, 자기만족, 자신을 위한 소비와 지출이 증가하는 것.

셋째, 동물과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

 

이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훼손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저들 속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나타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다(롬 1:21-22).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24-25).”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레 18:23).” 곧 애완동물 사랑하는 게 최근의 일이 아니고,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5-26).” 동성애문제도 최근의 일이 아니다. 또한 사물을 숭배하듯 떠받들며 위하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날 아침,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시다.

 

첫째,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느 8:9).” 둘째,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 셋째,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설날 아침 안 믿는 자들은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우린 다른 차원에서 ‘오늘은 성일이니!’ 하는 반복적 어구에 아멘, 한다. 이를 ‘나누고’, ‘즐거워하라’는 것에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생각하며, “너희는 가서 …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10, 12).”

 

곧 오늘 우리가 누리는 설 명절이다. ‘울지 말고, 잔치를 열고 기뻐하라(9-10)’, ‘근심하지 말고, 나누어주고 즐거워하라(11-12)’ 어째서 그래야 할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 설을 맞는 주일 아침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이 퇴화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그러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하여 오늘 시편은,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9:50).” 곧 말씀이 우리로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는 새해가 되시길 기도드린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 119편은 분량도 구성도 이채롭다. 내용이 긴 것은 물론 주제에 따른 접근도 다양하다.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176절로 되어 있다. 각각 8절씩 연으로 나눠 22연으로 된 구성이다. 이를 다 다루려면 올 한 해를 다 들여도 모자랄 것이다. 시편 119편은 작자 미상이다. 오늘은 개괄적으로만 소주제를 잡아 일곱 가지로 나누었다. 구원의 핵심은 말씀으로 놓고 이를 다룬다.

 

1. 말씀으로 행실을 지키려고 말씀을 따른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119:9).”

 

우리에게 복이 있음은,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 하시는 말씀에서 출발된다. 바울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이는 정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의 문제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사는 길,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우리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시려고,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신 7:12).” 하신 말씀 앞에 아멘, 해야 한다. 말씀으로 우리가 실제,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8-10).”

 

2.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말씀을 가까이 한다.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24-25).”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구도 뭐라 나무라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소리다. 어릴 때는 부모나 선생이 나를 꾸짖고 바른 길로 인도하였는데, 어느 순간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하여 시인은 주께 구한다.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119:17).” 후대함은 잘 대해주는 것이다. 사심 없이 진심을 다해 우리를 나무라고 꾸짖어줄 수 있는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은 우리로 바르게 살게 한다. 하는 교훈이다.

 

곧 우리가 말씀을 준행한다는 것, 이에 말씀이 그러하시길,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말씀으로 우리를 든든히 세우고 거룩하게 하심을. 그리하여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이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곧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8-19).”

 

3. 말씀은 고난 중에 위로였고, 살리셨고, 소망을 가지게 하셨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9:49-50).”

 

오늘 시인은 거듭 찬송한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57).” 분깃이 무언가? 유산으로 얻은 내 몫의 그것이다. 여호와는 누군가? 만유의 주, 전능하신 창조주시다. 그럼 우리가 무얼 두려워하겠나?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112:7).” 지혜자는 이른다.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증거다. (잠 3:25-26).”

 

그러므로 우린 당연하게 구한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 119:58).” 분명히 그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이는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어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4. 서로를 보고 위로함을 받는 것은 같은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119:74, 92).”

 

말씀으로 가까이, 우리가 서로 말씀 앞에서 온전하여질 때, 서로는 서로의 선생이 된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겔 44:23).” 주는 그의 자녀가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릴 버리신다. 우리가 주를 잊으면 우리 자녀들도 주께 잊힌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시인은 기도하기를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81).” 특히 마음이 어려울 때,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82).”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5. 우리로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하시려고 말씀을 더하신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119:116).”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신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 5:15).” 하나님이 가려진 삶보다 고통스러운 날들도 없다. 적당하다는 것, 혹은 남들보다 낫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0).” 이러한 고난은 우리로 알게 하려 하심인데,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0-11).” 그래서 회개할 수 없는 영혼은 그의 나이듦이 비참하다. 우리 믿는 자녀는 늙고 병들어 죽을 날이 가까울수록 이를 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119:97).”

 

천국을 사모함이란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사는 삶으로, 오늘 시편의 찬송처럼 첫째, 주의 말씀을 사랑할수록 더욱 지혜와 명철로 주를 찬송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97-100). 둘째, 주신 상황 속에서 때론 미련한 것 같으나 무던함으로 주만 바라게 된다(101-104). 셋째, 어떤 역경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말씀을 사랑한다(105-112). 넷째, 최후의 날, 곧 죽음을 맞으면서 주의 심판을 기대한다(113-120). 이는 모두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주가 우리를 붙들고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6. 말씀을 열면 우둔하였던 삶에서 벗어난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119:130).”

 

우둔하다는 것은 어리석고 둔하다는 소리다. 이에 바울은 외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무엇을 자신을 본받으란 소릴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 다 이루었다, 하고 노년을 즐겨도 될 나이에 다윗과 같이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시 18:23-24).” 이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에 오늘 시인은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119:122).” 저들로 보여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모두에게 죽음 너머의 심판대 앞에서 우린 우리의 변호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곧 우린 남들이 다 떨고 있는 두려운 가운데서 찬송을 부른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우린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7. 주가 나를 변호하심으로 우린 말씀을 증거로 가졌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119:137, 154).”

 

어떠하든지 ‘주는 의로우시다.’ 때론 우리 생각에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을 두고도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이에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주가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죽이신다 해도 나는 주를 신뢰한다는 것이다. 곧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내 생명보다 주의 인자하심이 옳다. 그러므로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 1:14).” 우린 우리의 실패나 좌절, 매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주는 주를 신뢰하게 하실 것이다. 그만큼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119:140).” 하는 오는 시편의 찬송이 우리 것이다.

 

나오는 말

 

방대한 내용의 시편 119편을 다 다루지 못하였으나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142).” 하는 오늘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65).” 사는 데 따른 어려움이, 장애물이 왜 없겠나? 늙음과 병듦과 억울한 송사와 뜻하지 않은 사고 등이 늘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으로 우린 천국을 값주고 산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5-46).”

 

설날 아침,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말씀은, ①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②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유일한 무기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고후 6:7).” ③ 우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지 않게 고난도 두신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이에 ④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⑤ 말씀은 육신의 지배를 혐오하게 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오늘 시편 119편을 설날 본문으로 놓고, 우리의 남은 날들이 말씀으로 붙들려서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50).” 하는 고백이 우리 남은 생의 전부이기를 주께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