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전봉석 2023. 2. 10. 05:3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시편 74:16-17



천하 모든 게 다 때가 있고 그 때를 하나님이 정하셨다. 오늘 전도서는 이를 전제로 시작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1).” 이를 알면서도 실제 이를 주의하며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누가 다 지나고 난 뒤에 지난 일을 두고 다시 되풀이 할 수 있을까? 하여 지혜는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22).” 이에 내 몫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는 것,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이와 같은 말씀의 연결이 오늘이 나와 장래의 나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나간 나에 대하여는 되돌릴 수 없다. 후회도 환희도 이미 다 흘러간 것이어서 앞서 주 앞에 당도하였다. 하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마땅히 생각할 것들,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대하 6:27).”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내게 행하시는 주의 섭리에 나를 놓아두는 일,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이 은혜, 내가 받은 것으로 감사히 알고 주신 바 한 날의 생을 쌓아가는 일.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시 37:34).

하여 주신 날에 전심으로 주를 바라며 성실히 행하는 것은,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89:48).

일찍이 우리로 이와 같이 주를 아는 마음을 두셨다. 오늘 지혜자는 이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11).” 우리로 그의 영원을 사모하되 그의 하시는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이로써 주를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3-14).” 우리로 보게 하시고 이를 묵상하며 알게 하신다. 곧게 하시고 굽게 하신 일에 대하여,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심으로 우린 누구도 장래 일을 헤아려 알 수 없다. 알 수 없음으로 우린 주를 바란다. 인생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도 하신다는 것을 오늘 전도서는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때론 알 수 없는 일을 두고 답답해 죽을 것 같다. 그러할 때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동생은 질려 다신 청소년 사역을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할 때,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12).” 우리의 기도가 부당한가? 뭘 해도 이 정도 돈벌이는 못하겠나? 하며 한탄하는 막내 동생이 사역에 있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교회의 요구와 목회자의 부당한 처사가 마뜩찮다. 하다못해 세상에서 정한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로 헌신을 강요하고 그 이상의 사사로운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렘 10:19).”

가끔 아내에게 이르길 친정엄마로 저를 대하면 그 수발드는 일이 고달프고 힘에 겹다. 지겹고 때론 야속하다. 하지만 주가 맡기신 한 영혼으로 부모도 자식도 대하고 섬길 수 있다면 주의 사랑과 주의 마음을 우린 요구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을 우리 자신이 아니까!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으며 스스로를 장담할 수 있겠나? 종종 나의 모친은 모질 정도로 단호하게 말한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 자녀도 다를 바 없어서 주가 알아서 하시라, 하는 심정으로 우리 사남매를 키우셨다고 한다. 그런 말이 때론 비장하게 여겨져도 숨은 저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오늘 이 한 날의 때에 내게 닥치는 일을 두고 스스로 아등바등한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주가 알아서 하시라. 우리의 가장 무책임한 전가가 실은 가장 어려운 신앙의 진수가 아닐까? 내 자식이나 부모는 물론 나 자신까지도 난 모르겠다, 하고 주께 엉겨 맡기는 것.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우리가 알 바 아닌 것을 두고 씨름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주의 뜻은 어그러지고 나는 그 일을 훼방하게 된다. 곧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이 두려운 말씀 앞에 멈칫한다. 성령을 거역한다함은 성령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나를 맡기지 못하는 것으로 내가 어쩌든지 해보려고 하는 마음에 주를 뒤로 미루는 일. 하여 우리에겐 주께 빌고 또 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90:12, 89:47).

하여 주 앞에서 주의하는 하루,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이때에 주를 바라고 주께 맡기는 일, 나는 누구를 부러워하다 아들의 일을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딸애의 이런저런 일을 두고 뭐라 관여하려다가도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모친이 하셨던 일처럼, 주의 것으로 여겨 주가 마음대로 하시라고 외친다. 성경의 놀라운 진리 하나,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2:10).” 대체 이 논리가 삶에 적용이 될까 싶은데,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30:5).

우리에게 보장된 사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0-31).” 이 세상의 외형, 그 되는 일을 두고 일희일비할 거 없다. 다 지나갈 뿐 남는 것은 없다. 아이가 전화를 하여 직장 생활의 소회를 밝혔다. 남들 다 부러워할 직장에 취직을 했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6월에 있을 시험도 포기하지 않고 노량진에 따로 방을 얻어 생활하면서… 나는 저의 수고와 애씀을 격려하면서도 우려하였다. 주를 그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주가 어찌 함께 하시는가를 아이도 나도 서로의 삶을 보며 알고 있다. 참 좋은 인연이라, 글방에 초등부로 왔다가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도 같은 길을 간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직접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는 저의 말에 기특하였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어 줌으로나 예배를 드리는 저에게서 그와 같은 마음을 듣고 보니 감사가 저절로 일었다.

주께 떠맡긴다는 것, 마치 나의 책임을 전가하듯이 주를 바라는 데 있어 이를 주는 기뻐하신다. 자주 느낀다. 내가 어찌 수고하여 나름 애쓰려고 할 때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저 주의 품으로 달려들고 나 몰라라 할 때에… 이상하게도 우리 하나님은 이를 더 좋아하시고 심지어는 영광으로 삼으신다. 주께 맡긴다는 일, 실은 이게 회피나 전가 같으나 이보다 더 필사적인 용기도 없다. 나는 당장 급한데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하시니, 성미가 맞지 않아서 그러느니 내가 어찌 해보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게 인다. 때론 자식 일이어서, 혹은 내 문제를 놓고 주가 알아서 하시라, 하고 믿고 맡기는 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하여 바울은 외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 기껏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내가 잘나서 그리 된 줄로 아는… 나는 아이가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전화를 하였을 때 그와 같은 당부를 하였던가? 없을 때 오히려 어려울 때는 우리가 주를 찾다 조금 나아지고 그것이 적당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를 멀리 두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일은 그런 것이어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이 단순명료한 원리를 나는 아이에게 강조하였다. 결코 이를 우리 손에서 빼앗을 자는 없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그러므로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14).” 은혜를 헛되이 받아 그릇된 길로 돌아간 이들이 참 많다. 나는 누구보다 저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설령 주의 자녀라 돌아올 것을 믿는다 해도 너무 먼 길을 돌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그 고단한 인생을 우려한다. 그리고 절규하는 소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74:1).

오늘 시편은 그러시는, 그리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결국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약 1:15-16).”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를 일일이 가르칠 수도 그 방도를 제시할 수도 없는 이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는 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12).” 그러므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정신 바짝 차리자. 아차, 할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분명히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6-17).

어떠하든지 주는 내 편이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6).

꿀릴 거 없다. 세상이 아무리 어떠하고 나의 생활이 어떠하다 해도,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1:3).

그러할 때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
(74:22-23).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59: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