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서 5:3,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시편 76:7
신앙은 진보한다. 앞으로 나아간다. 머물거나 뒤로 퇴보할 수 없다. 이때 우리로 달려가게 하는 것은 시련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우리로 그의 즐거움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것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우리의 달려갈 푯대는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것이다(20).
이에 오늘 전도서는 거두절미하고,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1).” 즉 하나님은 우리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이에 주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게 주를 경외함이었다. 이를 알면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6).” 이와 같은 말씀에 주의한다.
살면서 이런저런 꿈이 많을 텐데, 우리 꿈의 근간이 걱정에서라니…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3, 7).” 이와 같은 지혜의 말씀 앞에 한참을 머물게 된다. 하긴 어떤 꿈을 가진다는 것은 오늘을 딛고 서려는 것일 테고, 신앙이 진보하는 것과 같이 우리로 달려가게 한다. 이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무엇보다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다는 것. 꿈이 많다는 것과 뜻을 허탄한 데 둔다는 것이 일치하면서,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지혜자의 말은 하나이다. 주를 의지한다는 것과 경외한다는 것,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이 단순명료한 말씀이 왜 그처럼 여러 해석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것에 자기 생각이 많다. 그 일에 꿈이 생겨난다. 바라는 게 있다. 주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엄히 경계하시는 말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러므로 오늘 전도서는 이른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2).” 함부로 말을 들내기 전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7-8).”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우리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곧 그렇게 주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141:2).
하여 우리 기도의 끝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결국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 하는 것. 그리하여 욥의 간절한 호소에서도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2-3).”
주어진 한 생을 사는 동안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7).” 하는 오늘 전도서의 격언은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8).” 모든 것에서 놓여나는 자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146:7).
그 하나님이 오늘 나의 생에 함께 하신다는 일. 신앙에서 진보란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이를 행하는 것. 결국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6).”
자기 마음을 속이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남들이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은 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왕하 17:39).” 이와 같은 말씀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이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25:12).
결국 내가 달려가야 할 길,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그러므로 삼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결국 인생이란,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15-16).” 하는 오늘 전도서의 말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여 다들 인생은 허무하다고 하는데 그 허무한 것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로 주를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마 6:19).” 하여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39:6).
여기서 우린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곧 우리 신앙의 진보란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일도, 장래 일을 꿈꾸며 오늘의 걱정을 무마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해서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결국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무던함으로 주어진 한 날의 수고에 전념하는 것, 내일의 염려는 내일이 하게 두고,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오늘을 여는 시간마다 이처럼 말씀으로 나를 붙드시는 것이 복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18).” 하는 오늘 전도서의 말씀이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그러므로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19).” 이를 감사히 여기고 하루를 살아가는 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20).” 주신 바 주신 이의 뜻을 헤아리며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것.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이를 오늘 시편으로 되새기면,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76:2).
오늘이 천국일 수 있는 연습,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하여 나는 가급적이면 같은 동선을 따라 같은 시간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단순함으로 주를 생각하는 외의 일로 마음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그러는 중에 누구의 사연이 또는 일련의 사건이 나의 이러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고 주의 말씀을 부여잡고 있다. 곧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그럼에도 어떤 날은 어디가 아파서, 또는 무슨 문제로, 누구 일로 분산되기 일쑤인 마음과 일상을 다시 수습하면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는 말씀 앞에 잠시 더 머물며 되뇌는 일,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7:3-4).
할 때에,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76:7).
오늘 시편은 경각의 종을 울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10).
나로 내 짐을 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사랑한다. 나로 내가 겪은 일로 시달리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아가게 하시는 이를 신뢰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5).”
결국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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