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7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시편 79:9
하나님의 섭리, 그의 성품을 품고 그의 뜻을 사모하며 살 때 우리는 외모도 변한다. 오늘 전도서의 서두이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1).” 우린 이를 꾸미거나 가식적으로 가면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자신은 알 수 없으나 곁에서 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이를 분간한다. 가령 스데반 집사에 대하여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6).” 하고 저의 생김을 묘사하고 있다.
곧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그 빛이 우리로 전혀 다른 인자함을 가지게 한다.
노예선장으로 유명한 존 뉴턴이 목사가 되고 저는 전혀 다른 성격과 말투와 외모로 저를 아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심지어 누가 아직 죄 중에 있는 자들을 궂은 얼굴로 비난할 때 저는 인자한 얼굴과 말로 ‘우리도 수렁에서 건진 바 된 자들인데 하물며 저들도 그리하실 것이다.’ 하고 온유함을 드러냈다. 저가 작사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는 찬송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한 <프리덤>은 감동적이다.
영화 <노예 12년>에 이어 미국의 노예제도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도주를 감행한 노예 ‘사무엘’과 노예를 운반하는 배의 선장 ‘존 뉴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1856년 노예 사무엘이 가족과 함께 농장에서 탈출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노예들의 탈출을 돕는 비밀 조직 ‘지하철도’의 안내를 받아 캐나다로 향한다. 노예사냥꾼 플림튼의 추적 속에 자유를 향한 사무엘 가족의 숨 막히는 여정이 이어진다. 반복되는 위험 가운데 심신이 지친 사무엘은 “흑인을 위한 신은 없다”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의 어머니는 사무엘에게 증조부에게서 이어지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얽힌 비화를 들려준다.
1748년, 노예들을 가득 실은 배의 선장 존 뉴턴은 약혼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노예선을 맡았다. 영화는 이전에 방탕한 생활로 인해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가 직접 노예 장사를 하는 모습을 고발한다. 어느 날 폭풍우로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고,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배는 무사히 노예시장이 있는 미국 항구에 도착하고, 뉴턴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노예장사를 그만둔다. 후에 그는 자신의 회심을 담은 찬양을 쓰고, 죽는 날까지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한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새찬송가 305장)
이와 같은 변화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성경은 말하길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곧 우리로 주의 자랑이 되게 하시려고,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7-8).”
하고 오늘 지혜는 말한다. 곧 우리 자신이 자신됨을 알게 되면서 이와 같은 변화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억지로나 가식으로 꾸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우린 굴복할 때를 안다. 이는 우릴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 때문이다. 우린 이제 ‘왜?’ 하고 묻기보다 ‘예!’ 하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8-10).”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나온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 위에 세워질 성’을 바라는 것. 이처럼 우리의 가는 길은 막연하거나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었다. 확실한 것,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그와 같은 것이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상은 줄 수 없는 기쁨,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사람들로 변해간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
오후께 친구와 통화를 했다. 아들이 퇴원하여 병원 수속을 끝내고 국가에 제출하여 신청할 무슨 서류를 떼려고 오후 근무를 뺐다고 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묻기는 ‘요즘도 하나님과 대화하며 잘 지내?’ 하는 것이다. 순간 저는 그런 게 자기 마음에는 왜 없는지 알 수가 없다고 토로하였다. 나는 저에게 성령을 달라고 구할 것과 곧 3월부터 열린다는 장년들 성경공부에 참여하라고 권하였다. 이는 우리가 구할 때,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이는 말씀이 확인해주시는 것으로, 내가 보고 느끼고 말하는 그 이상의 것을 누릴 수 있음을 나는 친구에게 장담하였다.
회사에서의 직책도 있고 또 그 일이 공사 설계와 감리 일이라 거칠 수 있으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지금처럼 어떤 일이 있을 때는 주를 바라나 느슨하고 안온할 때는 나태해지기 마련이어서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엡 4:17).” 우린 늘 그런 것이다. 자칫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이것은 수시로 드는 일이어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오늘 지혜자도 그 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 그 될 일을 알지 못함으로 오히려 유익할 수 있나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하여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우리는 평소 주를 인정하고 경외함으로 자신을 쳐 복종하게 한다. 오늘 전도서는 그래서 권한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 8:15).” 주 안에서 희락하는 일, 이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기도 하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와 같은 것들이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열리는 것들이었다. 하면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그러나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17-18).” 하는 오늘 말씀에서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것, 알고자 하는 마음이 주를 사모하게 하고,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유심히 보는 것과 그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 등을 살펴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피는 것이다. 하면 그 속에 비밀한 일은 숨겨져 있는데,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로 성경은 이를 열어 보여주심으로 우린 그 열린 바 보여주시는 것을 한정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더욱 신뢰하고 경외하게 한다. 즉,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이와 같은 주의 마음은 오늘도 한결같으셔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79:9).
우린 주 앞에 구한다. 왜냐하면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 결국 ‘나 같은 죄인 살리려는 주 은혜’를 알게 되면서 우린 그 마음이 또한 영혼이 변하여 우리 외모도 온화하여진다. 그러함을 알 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먼저와 나중’을 아는 신앙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 19:19).”
때론 옴짝달싹 못할 지경에 처한 것 같을 때, 더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여겨져 힘에 겨울 때,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렘 15:15).” 우린 주께 간구한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이 놀라운 사실,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3).
오늘 시인의 호소가 우리 삶을 지배할 때,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즉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고 구하면 저는 들으신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이것이 주의 사랑의 원리이고 희락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79: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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