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전도서 9: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편 80:19
모순된 현실에서 흔들리지 않기란 어렵다. 기껏 수술을 결정하고 앞서 모든 검사나 준비를 끝낸 뒤 입원하여 한 번 더 정밀검사를 하고는 교수들의 긴급회의가 열렸다. 궁극적으로 수술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기형적인 신체구조와 뒤틀린 몸을 두고 의사들은 난감하였다. 일련의 사태를 덤덤하게 말하는 누구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머리가 하얘졌다. 기도로 마음을 준비하였고 담임목사는 간병을 자청하고 같이 들어왔는데… 저는 네 시간이 넘는 논쟁 끝에 결국은 도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심정은 어찌 가늠할 수 없어 나는 숨을 죽였다.
살면서 사는 동안에 겪는 말도 안 되는 일들 속에 우린 당혹스럽다. 고발 당사자가 재판을 열어놓고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모친에게는 새로 남자가 생겼다. 저와의 동거를 위해 부리나케 그리 결정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아이의 심신이 미약하다며 소송을 건 것인데… 뭐가 어찌 돌아가는 판국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떤 불의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전도서의 서두는 그리 말한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1).” 장차 저 일이 어찌 될지 우린 알 수 없다. 다만 이 모순되고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붙들고 서야 하는지…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다들 저마다 산다. 살아서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간다. 하나 그 모든 게 일반이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2).” 오늘 지혜자의 이와 같은 통찰은 우리로 회의적이게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모순과 허무에 대하여 지혜는 마지막 때를 생각하게 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3).”
오늘 말씀과 일련의 사태를 두고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리기 전에 통화한 누구의 음성과 그 사연이 명치끝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는지, 일찍 눈을 뜨고 내차 잠을 이룰 수 없어 교회로 나왔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주님은 우리에게 이르셨다. ‘스스로 조심하라.’ 이를 후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정리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마음이 요동칠 때, 그 사연이 어떠하든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그럴수록 깨어 기도할 수 있고 그것으로 산 소망이 있음을 오늘 전도서도 알려준다.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4).”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우리 생명을 연장하여 두신 이유가 있다는 것. 천박한 개와 왕으로 불리는 사자를 대비시켜 지혜가 일깨우려는 것은,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5-26).” 이것이 아직 살아있는 자의 복이다. 저의 복은 기회다.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72:14).
주의 긍휼하심을 증거한다. 내가 오늘도 살아서 주어진 날을 산다는 일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일이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아, 참 어렵다. 기도를 부탁하며 들려주는 이런저런 말들이 마음을 어렵게 한다. 내심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특권이 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7).” 오늘 전도서는 우리가 주를 신뢰함으로 얻는 평안에 대하여 모순보다 모순인 축복임을 알게 한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8).”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황당하고 답답한 현실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주를 바라게 하는 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어찌 우린 일련의 사태를 포함한 ‘항상’을 소유할 수 있을까? 그럴 때 ‘우리의 의복을 정갈하게 하는 것.’ 이것으로 즐거움이 가득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는 말씀을 더듬어 찾게 한다(행 2:28). 그럴 수 없는 중에도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는 은혜,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30:11-12).
우리로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시려고,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9).” 주신 데 감사하는 훈련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나는 이른 새벽 이와 같은 말씀을 놓고 턱을 괴고 앉아 생각이 많아진다. 누구의 어떤 사연을 두고 그 현실만 바라보면 덩달아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다 문득 인생이 그러한 모순 속에 굴러가게 두심을 알게 될 때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11).” 불공평한 가운데 공평하신 하나님, 모순된 것 같은데 이상적인 하나님,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왜 앞서 간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혜를 그 속에 가졌는가 했더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저변의 여러 일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알아서이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12).” 이러한 인생의 구조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은 무엇인지, 오늘 전도서는 우리로 찾아들게 한다.
곧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6-7).” 부디 정신 차리자. 아차, 하다 휩쓸린다. 저마다 그러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달리 볼 수 있는 그것,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이 놀라운 그러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그러므로 현재의 무엇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 그 문제에 함몰되어 정신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곧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17-18).” 가만히 내 안에 두신 한 음성,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3-14).” 결국,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0:3).
오늘 시편의 간구를 따라서 읊조린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행 11:1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나는 누구의 사연을 일일이 열거하여 책상 위에 펼쳤다가 이를 주께 아뢴다. 다들 저마다의 외모와 지위나 그 형편으로 서로를 보고 알 수 있으나 이는 다 헛것이어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알아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8:5-6).” 이와 같은 말씀에 승복할 수 있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6).
그리 처하게 하신 이도 주이시라면,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7).
이를 해결하고 회복시킬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도 외쳐 부른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4).
맡기신 날들을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7).
주가 치리하고 다스려주시기를. 오늘의 현실도 이를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오늘 시편의 기도로 산다. 하고 주가 이루실 것을 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1-2).”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11).” 그리할 때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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