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아가 1:8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5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시(詩)다. 물론 솔로몬의 시로 술람미 여인을 향한 찬가다. 저들의 뜨거운 연정과 그리움이 절절하다. 이 글을 읽을 때 시점을 놓치면 안 된다. 11절까지는 두 연인의 밀회의 기쁨을 노래한다. 15절까지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지칭하며 향기로운 몰약 향낭과 엔게디 포도원에 핀 고벨화 송이로 칭송한다. 그런 술람미 여인을 향해 솔로몬은 사랑스런 비둘기로 화답한다. 16, 17절은 서로 고백하는 사랑의 교창이다.
단지 저 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사랑 이야기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그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하는 사랑으로,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 곧 나의 남편, 나는 저의 신부로서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끝까지 변치 않는 불변의 사랑이시다.
곧 우리는 주를 원한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2).” 이를 오늘 시편에서 읽었다면,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아가는 히브리어로 ‘노래 중의 노래’라 하여 솔로몬의 천다섯 편의 노래-시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는 노래다. 시의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여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다.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 이는 지성소를 거룩한 곳 중의 거룩한 곳으로 나타내는 것과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출 29:37).” 주일을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31:15).”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을 하늘 위의 하늘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 8:27).” 왕들 중의 왕으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왕들 중의 왕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북쪽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겔 26:7).” 하나님의 통치는 국가와 이념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신다.
이와 같은 의미로 랍비 아카바는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로 가장 으뜸으로 ‘모든 성경이 거룩하되 아가서는 성경 중의 성경으로 가장 거룩한 책’이라 하였다. 솔로몬의 삼천 편의 잠언과 일천다섯 편의 노래 가운데 단연 아가서를 으뜸으로 꼽는다. 사랑은 모든 논리와 철학과 문학을 빨아들인다. 이는 솔로몬의 결실이다.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왕상 4:32-33).”
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향하신 사랑이다. 그 사랑은 주를 경외하는 것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 사랑은 모든 생명의 본분으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결국 그 사랑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이를 모두 한데 축약해 놓은 것이 아가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우리 사랑의 갈망을 응축하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42:1, 73:25).
이를 술람미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3).” 우리가 주를 향한 고백이 이처럼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4).” 이 내밀하고 농밀한 사랑 고백이 우리로 웃게 하는지? 기쁨으로 차고 넘치게 하는지?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우리 주의 허용이다. 더욱 농밀한 관계를 원하신다.
아,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하여 우린 사랑예찬론자로 산다. 이는,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곧 우린 주가 계신 곳을 찾아 함께 있기를 사모한다. 오늘 아가서의 바람이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7).” 여기서 ‘얼굴을 가리운 자’란 ‘창녀’나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창 38:15).” ‘슬피 애통하는 자’로 의미한다.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왕하 19:4).” 곧 주가 계신 곳에 함께 있지 않을 때 우린 창녀나 슬피 애통하는 자로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를 찾을 때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사 65:1).” 주는 내게 응답하신다. 곧 하나님의 귀히 여김을 받는 자로 산다는 일은 구별되다. 아무나 알 수 없고 그리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신령한 아름다움, 그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은밀한,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10).” 주가 나를 보듬으시며 사랑하신다. ‘땋은 머리털’은 장식으로 결혼한 사람으로 ‘머리를 올렸다’ 할 때 그와 같은 상징이다. 곧 우리가 아름답게 꾸며 더욱 사랑 받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실제 우리의 흉측하고 괴이한 죄의 형상으로,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사 3:24)” 그러한 나의 몰골을 주의 보혈로 덮으셨다. 즉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나의 죄가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고후 2:14-16).” 그런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8).” 오늘 아가서는 그 방법을 제시한다. 때론 주의 곁에서 걷는 것 같다가 때론 그 주님을 찾을 길 없는 지경에 놓인 것 같을 때, 우린 서로에게 주의 발자취를 찾는 ‘양 떼의 발자취’가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반드시 그날은 오리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그럴 수 있는 것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4-7).” 이 놀라운 사랑의 힘은 사랑을 아는 사람만 안다. 머리로도 어떤 이론으로도 아니라 실제 우리 손끝에 와 닿는 감촉과 같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이 내밀하고 농밀한 사랑에 대해서는 그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구별된 자로서의 나, 나와 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13-14).” 오늘 아가서의 고백은 감미롭다. ‘몰약’은 원래 쓰다. 우리의 ‘쓴 주머니’는 향료나 약품으로 쓰인다. 몰약은 또한 성전의 관유이다.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출 30:23).” 또한 정결한 향품으로 쓰인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45:8).
몰약은 주를 장사 지낼 때 쓰였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 19:39-40).” 이는 우리의 고백이고 마음이며 전부이고 모든 것이다. 곧 주를 경외함으로,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사 33:6).” 이에 바울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이를 오늘 내 안에 품고 사는 일,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15).” 주가 나를 어여뻐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6-17).” 우리는 주께 어여쁘고 어여쁘다. 이는 도로 우리의 마음도 같아서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데 있어,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1-2).
이처럼 주를 기리며 또한 고대하는 마음으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3).
곧,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4).
주의 집, 그의 품, 그의 사랑 안에 산다는 일은 참으로 내밀한 마음이어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곧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이처럼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서둘러 주의 전으로 오게 하시는 마음으로, 내가 주 안에 거한다는 것.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7-18).” 주의 ‘특별한 소유’ 곧 주를 섬기는 자로 산다는 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5).
이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6-7).
이를 주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알겠나? 백날 가르치고 설명한들, 사랑은 말로 어찌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3:3).
그러할 때,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4:10-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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