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전도서 12:1-2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시편 83:1-2
우리가 알고 기억하며 살아야 할 ‘창조자.’ 오늘 전도서는 힘주어 마지막 글을 썼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1-2).” 우리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바로 그 청년의 때에 곧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그리하라고 이른다. 창조자. 우리 하나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곧 누구의 강요나 가르침으로 일깨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는 날 동안에 내가 이를 알 수 있는 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여 같이 성전에 올라가자 할 때에 기뻐할 사람이 몇이겠나? 곧 ‘곧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그리하자고 손을 내밀어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물다. 점점 더 세상은 그러하다는 데서 과연 우린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사는지.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03:5).
이는 축복이고 영광이었다. 나의 청춘이 그러할 때는 미처 몰랐던 것으로,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살면서 우린 무엇으로 만족해하곤 하는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13).”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산다는 것으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 7:24-25).” 그러니까 곧 곤고한 날이 이르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가 온다.
오늘 전도서는 그날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3-5).” 이 내용은 하나하나 그 의미를 생활에 연관지어 묵상할 의미가 있다.
마치 어떤 황량한 그림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암울하여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이 드는 것도 같다. 곧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곧 우리가 추구하고 살던 이 땅의 모든 가치들이 헛된 것임을 뒷받침해준다.
우린 이 황량한 그림 앞에서 오히려 소망을 본다. 모두가 그러할 때, 그리하여 우리의 영원한 집이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한 현상을 보면서, 여호수아는 여든다섯 살에 오히려 소리치며 주께 간구한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 14:12).” 그렇게 아브라함은 일흔다섯에 갈 바를 알지 못하며 ‘약속의 땅’을 향해 길을 떠났고,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모세는 여든 살에 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출 7:7).”
우리의 ‘청년의 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92:13-15).
곧,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03:4-5).
우리 믿음의 날에는 뒷방늙은이란 없다. 여든을 넘겨서도 여전히 말씀 전하는 일에 착념하는 나의 부친을 존경한다. 때론 기진하여 나야말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러한 나의 남은 날을 아버지께 드리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몸을 사리고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칠 때면 나는 이처럼 믿음으로 달려갈 길을 다하는 이들을 부러워도 하고 두려워도 한다. 우리 인생에 가장 두려운 일은 ‘풀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자 하는 마음은 풀어지고, 그 높던 꿈은 깨어진 채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사람처럼 인생을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오늘 전도자는 재촉한다.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6-7).”
그러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28).” 나는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서면 두렵다.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나는 말씀 앞에서 두렵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이에 전도자는 부르짖기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8).”
곧 우리 앞에 닥칠 환난과 곤고를 일깨운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롬 2:9-10).” 결국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11).” 우린 그럼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찌 이 말을 듣고 있는지. 전도자는 모든 것이 헛되다 하면서 동시에 헛되지 않은 것이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9-10).” 저의 이와 같은 수고가 오늘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곧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11).”
그러함을 알고 말씀 앞에 앉는다. 묵상하며 글을 쓴다. 이는 우리 신앙의 기본적인 수고이며 또한 마땅한 원리와 같아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6-10).” 결국은 말씀으로였다. 일을 벌여 사업을 확장하고 선을 도모하여 의를 추구하는 노력도 궁극적으로는 말씀으로 말씀을 위한 것이었다.
내 속에 주신 이 소망에 대하여,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고로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사는 삶, 그도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리하는 데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전도, 이 미련한 일을. 이런 글을 누가 읽는다고, 그런 소릴 누가 듣는다고….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잠 22:20-21).”
나는 다만 말씀 앞에 앉는다. 주시는 말씀에서 생활을 살핀다. 그리고 나의 허접한 생활을, 생각을 글로 쓴다. 누구에게 들려준다. 이 보잘것없는 일에 대하여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우선은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듣는 한 영혼을 위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에 더욱 강조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 14).”
그렇게 나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이것이 주의 명령이고 성경의 가르치심이고 복음의 수고였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오늘 전도자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고 결론 짓는다(전 12:13).
이때 우리의 입에서도 오늘 시편의 아삽과 같은 부르짖음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83:1-2).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라. 목사들이 방송에 나와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저들이 살 세상을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교회는 나서서 여느 문화센터가 할 만한 일로 주의 일을 전락시키고, 성도들의 모임은 ‘친절한 타인’으로 문화인을 지청하며 사교적이다. 이때에 말씀은 고개를 저으며 소리치신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10).” 곧 주는 주의 자녀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이를 싫어하며 격식만 갖추고 살길 바라는 자들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우린 과연 어떠한지? 시인은 고발한다.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3, 12).
그러한 오늘을 돌아보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가 주만 바라는 것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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