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전봉석 2023. 2. 22. 05:20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아가 3:3-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편 86:11

 

 

 

사랑하는 이를 찾는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흠모함으로 속히 연합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주를 향한 사랑은 이와 같아서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1).” 삶의 어려운 질고 가운데서 외로운 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른다. 시편에서도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86:1).

 

우리의 찾음은 ‘여러 날 밤’으로 이어진다. 즉 ‘밤새도록’ 주를 찾는다. 이 밤은 때로 긴데 또한 순간 같아서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90:4)

 

이는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8).” 그 때가 언제일지, 혹 새벽일지 오후일지 알 수 없으나 술람미 여인과 같이 우린 주를 찾는다. 인생의 밤에서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사 26:9).” 이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18:1).

 

하여 우린 싫든 좋든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언가에 노예로 산다. 혹은 돈의 노예로, 혹은 사람과 관계의 노예로, 혹은 자신의 명예와 신념의 노예로 말이다. 모든 게 문화가 되고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란 참 주인, 그 사랑을 섬기는 가운데서 가능하다. 오늘 아가서는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2).”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찾고 있다. 곧 우리의 사랑은 섬김의 또 다른 언어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의 일상이 드려지는 예배일 때, 주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합당해진다. 할 때 주의 응답이 없으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시 10:1, 13:1, 22:2, 30:7).

 

주가 그 얼굴을 가리실 때 우리 영혼은 막막하여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는 사랑하는 이를 밤낮없이 그리워해 본 사람이면 안다. 그 심정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 때나 흐르는 눈물은 도무지 주체할 길이 없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꽃의 성장에는 햇빛 뿐 아니라 밤과 그늘, 달빛과 이슬도 필요하다.’ 우리 안에 주를 찾아 헤매는 마음이 없다면 주를 만난 환희도 알지 못한다. 이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잠시 받는 환난으로 영원을 주목하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고로 우리의 참 자유는 온전한 섬김으로 체험된다. 그저 막연하게 내멋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었다. 이는 중독으로 현대인의 또 다른 면모이다. 자유란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섬김으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

 

주가 내게 주시는 참 자유, 그는 이런 사람이다. 먼저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자유를 위해 섬기는 사람. 그릇된 자유에서 벗어나는 사람. 이를 성경은 일러,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당장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못하나,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8:5).

 

우리로 그 자유를 갈망하고 바라여 찾고 의뢰하게 하심은 성령으로였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5-26).” 무엇이 헛된지 혹은 온전한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26:5-6).

 

이는 우리의 결말이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장이었다. 하여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 8).” 반드시 우린 주를 만날 것으로 같이 할 것이다. 오늘 아가서의 노래다.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3-4).” 주가 계신 은밀한 곳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8:11).

 

오후께 문득문득 서성이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또한 그 가족들을 생각하다 어려워지는 마음으로 주를 찾았다. 우린 이처럼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4-8).” 우리로 주를 찾게 하시고, 찾음으로 인도하시고 보전하시는 길 위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그 사랑,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내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은 안다. 일찍이 한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해본 사람이면 안다. 그 사랑의 기다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러나 또한 그때가 순수하였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음을. 이에 찾으면 우린 결코 놓지 못한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잠 3:3).” 그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약의 언어 성경을 읽을 때면, 우리의 기다림이 답보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곧 그 자체로 행진이었다는 것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때론 어둡고 암울하여 나 홀로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바울은 누구보다 이를 깨달았고 이제 내게 손을 흔든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 여전히 거친 들판에 있는 이들에게 오늘 아가는 외친다.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아 3:6).” 우리의 고단하고 구슬픈 발걸음이 남기고 가는 자리마다 ‘향내 풍기며 연기기둥처럼’ 거친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나는 남은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였고 이를 곁에서 위로하며 섬기는 이들의 손길을 귀하다 여겼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이 길이 언제 끝날는지, 혹 밤에 혹 낮에… 그때가 언제인지 우린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11).” 주가 오실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이는 아는 사람이면 다 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34:7).

 

오늘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 이 영혼의 자유함이 주를 더욱 바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그러므로 우린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에,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86:3-4).

 

우린 당당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구하는 사람들이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상 16:11).” 이는 우리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이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나는 이 생각이 내 주장이 아니고, 나의 창작이 아닌 것을 성경에서 찾아 증명한다. 말씀이 약속하신 약속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그러므로 때론 뻔뻔하게 또는 담대히…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6-7).

 

하나님은 그러실 것이고 그게 또한 저의 사랑이시다. 예수님은 이를 당연하게 가르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 11:8).” 주리라, 하신 이 말씀 때문에도 우리의 소원을 물리치지 못하실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34:8-9).

 

곧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 1:7).” 우리가 주를 부르고, 주께 피하는 것은 마땅하였다. 이에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86:11).

 

우리에겐 바로 이, 일심(一心)이 있었다. 한 마음,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사 41:17).” 그 마음을 갖게 하신 이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2-13).

 

지옥 같은 날들에서 건짐 받은 자로서는 더 이상 주저할 게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이에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