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아가 4:16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시편 87:3
사랑의 결실이 꼭 결혼이어야 하냐고 묻는 세상에 대해, 오늘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의 찬가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랑의 생김을 묘사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는 사랑의 언어가 감각적이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1).” 서로 사랑을 나누기에 안전하고 아늑한 장소가 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6).” 또한 그 사랑의 외적 아름다움은 물론 그 성품이 샘 같고 시내 같다는 표현도 이어진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7, 12).” 더욱이 사랑에게 모두 맡기고 기쁨의 시간을 갈망한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16).”
달콤하고 쌉쌀한 사랑의 노래는 곧 있어 우리가 부를 영원한 노래다. 이때 우리의 온유함으로 우린 당당하고 단호하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6).” 곧 우리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오늘도 우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 22:7).”
이에 우리의 하루는 성화를 이루어 가는 여정이다. 오늘 아가서의 청함이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7).” 우리가 흠이 없다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그 생각의 정도에서도 드러난다.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9-10).” 곧 우린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제물과 같이 순결하여진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미 죽었던 우리요, 죄가 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8, 10).”
실은 어제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놓고 늙으신 장모와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흔히 우리의 예상은 어떤 자격을 갖추고 그만한 대상이 될 때 신 앞에 설 수 있을 것인데, 여타 다른 종교들이 그러하다면 이는 저들 신 앞에서이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릴 찾아오셨는데, 그럴 자격도 가치도 없는 자였을 때의 우리에게였다. 이러한 말씀 앞에서 장모는 지난날 우상숭배와 저들을 섬기던 때를 회생하며 어리석었던 일을 열거하였고 나는 그의 말에서 스스로가 어떠했는지, 그럼에도 주의 은혜가 어떠하셨는지 고백되는 것을 보았다. 우린 이제 지난 이야기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때 속하였던 사람들, 죄악 된 생활을 연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대신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히 11:20).” 곧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삼하 7:19).”
이를 의도적으로 상상하고 묵상하며 사모하는 일을 하는 데는,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6).” 이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에 따른 것으로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20-21).” 곧 우리의 신앙은 여느 것과 달리 앞서 이루신 것에 타당한 삶을 사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것은 이미 주께서 세상을 다 이기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누구와의 대화, 어떤 일을 두고 이와 같은 확신을 더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속속들이 아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다 갖고자 함이다. 단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을 운운하는 플라토닉 사랑 정도의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몸과 영혼이 주와 하나 되는 사랑,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9).” 오늘 아가는 그에 대한 주의 사랑으로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10).” 직접 보고 느끼는 사랑이다.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이는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11, 12).”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 하루하루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3-14).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이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진정한 사랑의 영광이란 온전히 그 대상을 전부로 삼는 사랑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고, 모자라서 다른 데서 보충해야 하는 그런 따위의 사랑도 아니어서, 오늘 아가는 확신 있는 노래다.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15).”
그런데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부차적인 게 많이 필요한지,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눅 9:61).” 겸사겸사 마주하고 차지하고 다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좀 웃긴 비유지만 나는 누가 날 만나러 온다고 할 때, 지나는 길에 들른다든지 무슨 일로 왔다가 잠시 보겠다든지 하면 굳이 그럴 것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니까 온전히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면 나의 마음은 기껍다. 오늘 주님도 그와 같은 말씀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62).” 그렇게 어쩌다 보니, 무얼 하는 김에… 하는 따위는 사랑이 아니다. 온전히 너를 향한다. 너 하나로 됐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 45:10-11).
사랑은 분절로 들어찬 마음일 수 없다. 다른 조건이 따르지 않는다. 부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주가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그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저 그게 전부인 게 사랑이다. 그래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때 나는 어떤 자격도 조건도 갖춘 게 없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 그러했던 나를 사랑하심으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이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는, 그저 다만 저를 믿는 자로 의롭다 하심이었으니, 오늘 아가서는 우리 사랑에 대하여,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16).” 이제 우리의 사랑은 누릴 것뿐이다.
한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6-7).” 이 사랑의 역사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9).” 내가 나 된 것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바랄 수 있는 것이었다. 곧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87:1).
오늘 시편은 우리의 정하여진 사실,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2-3).
곧 그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으로 우린 거룩하였다. 우리가 거룩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심이 아니라, 그 사랑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4).
쓸모없고 가치 없는 나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하여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합당한 사랑, 그 쓰심에 대하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 사랑은 어쩌다 우연처럼 그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곧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하여 우린 확신한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행 13:33-35).” 이에,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5).
주가 세우신 사랑,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결국 오늘 우리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6-7).
우리로 주의 사랑의 증표로 삼으시는, 사랑의 대상으로 살게 하신 일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그 생명이 내게 있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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