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전봉석 2023. 2. 25. 05:11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아가 6:3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시편 89:1

 

 

 

사랑은 응답이면서 갈등이다. 서로를 찾고 찾은 그의 모습에 흡족해 한다. 우리 안에 주를 바라는 마음도 그와 같아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 더하여 주는 이르시길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51).”

 

그렇듯 사랑은 갈등이며 목적이다.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고후 9:2).” 곧 우리가 주 앞에 나아갈 때 세상을 이끈다.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1).” 오늘 아가서의 첫 구절은 사랑이 전하는 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사랑은 부족함을 이유로 떠나지 않는다.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2).” 백합화로 비유되던 것을 보면,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아 2:2).” 백합화가 꺾이는 데 대해 그 연약함과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사랑은 동산이요, 잠근 동산 같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4:12, 15).” 이 동산은 동시에 우리 성도이면서 교회이다. 때론 우리의 방심과 나태함으로 백합화를 꺾고는 한다. 그럼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1).”

 

그러한 주의 사랑은 끝까지 나를 책임지신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 46:4).”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하나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러하여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아 6:3).” 하는 오늘 아가서의 진술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사랑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사랑의 대상 앞에 더는 다른 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이를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시다. 용서하지 못하실 게 없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시 50:2).

 

이를 구술하면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이에 기쁨 혹은 아름다움은 평강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주의 사랑은 그럴 자격도 안 되는 자를 향하신 것이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하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놀라운 사랑 앞에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그 사랑은 돌아오길 기다리신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맞아 주시는지를,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눅 15:22).” 그럴 가치도 기준도 되지 않는 우리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곧 주의 사랑은 우리로 하나 되게 하신다. 곧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이 이상한 사랑의 셈법을 우린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에 영화 <브로커>와 <아기>를 보았다. 보면서 어느 장면에서는 한참을 울었다. 사랑은 본디 우리의 천성이라 죄가 가득하나 감출 수도 없다. 우리 마음은 만물보다 부패하였으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그럼에도 우리 안에 본래에 심겨진 사랑은 작동한다. 곧 우린 누구나 하나님을 알만한 ‘그 마음’을 가졌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한데 그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어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그 결과는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

 

이에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하여 오늘 나는 가능하였고, 내 안에 두시는 마음으로 누굴 생각하고 어떤 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다. 누군 여전히 회사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다른 일을 구할 수 없어 당하기만 한다. 이런저런 사정을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나는 저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주의 도우심을 바라는 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괴롭히는 그들이 병들고 아픈 것임을… 나는 주를 사랑하면서 주의 사랑이 그때에도 함께 하셨음을 알고부터 그리 이해한다.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는 말씀에서 감복하는 이유다.

 

아무리 비천해도 주의 영광을 감추지 않으신다.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아 6:9).” 오직 주께는 나, 나에게도 역시 주는 한 분이심을. 그렇게 주님은 기도로 아버지께 아뢰신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주가 우리에게 청하시는 것,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9-13).” 오늘 그 주님은 기다리신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14).” 우리를 둘러싸고 돌아치는 여러 것들 가운데서 우린 주의 음성을 듣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할 때 나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과 같이 홀로 아마존 강변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연애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슬픈 이야기, 아픈 사정을 찾아 읽고 보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울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89:1).

 

하는 오늘 시인의 마음으로 다짐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 내가 주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는 다른 것이 중요하지 않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03:17-18).

 

하여 내가 주를 사랑함은,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138:2).

 

마음은 저 혼자 어지럽기 일쑤고 누구의 어떤 사연은 내내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아 마음을 어렵게 하기 일쑤지만,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는 어떤, 사랑의 원리 같은.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89:2, 5).

 

더러는 그렇게 말이 어우러지는 이와 언제까지고 대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저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의 말에 놀라워한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하나님이 나를 어디까지 사랑하셨는지를 들려주다보면 내가 다시 놀라워한다. 그렇게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이를 우리는 경쟁하듯 말하며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하면 그 하나님이 오늘 이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9).

 

오늘 시편은 우리의 슬픔 중에 주의 사랑이 가득하였음을 알려준다. 이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14).” 그리하여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15).

 

우리의 복은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는 사람이면 다들 알아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오늘 내게 가장 귀하고 감사한 일은 전혀 그럴 사이가 아닌데, 그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어떤 친구와는 수다가 즐겁다. 저가 요즘 성경공부를 하고 아들은 수련회를 가고 아내와 둘이 주 앞에 화목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일처럼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다 풉, 하고 웃는 것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니… 하는 감동으로,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6).

 

우리로 그리하게 하셨다. 실제 그럴 수 없을 것 같던 우리가 서로의 그런 고백 앞에 자기의 기쁨처럼 감사한다. 그런 우리에게 주는 약속하셨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 (셀라)

(35-3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