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사야 4:3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6
앞서 3장 24절부터 오늘 4장 1절까지 예루살렘의 여인 곧 성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비참한 그 현실,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하고 이어지던 말씀과 오늘 1절,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1).” 그 신세가 처량하고 한심한 지경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버렸을 때의 비참한 현실을 말씀하고 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신 28:15-16).” 또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대하 36:17).” 이에 따른 사실은 매시대마다 그 역사가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주의 심판에 열외는 없다.
주를 멀리하고 떠났을 때의 그 현실은 실제 저가 어떤 권세를 누리며 살든지 그 생은 고달프고 허망한 것들뿐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단 하나의 이유다. 그 영혼의 회복과 주의 영광의 복원이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2).” 하고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앞의 내용과 단절을 이루면서 동시에 회복을 더한다. 여호와의 싹,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6:12).” 이를 오늘 본문으로 연결하면,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3).”
하나님이 남겨두시는 자들을 향하여,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2-33).”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더해지는 이런저런 일들, 어떤 삶의 무게가 때론 주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나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시려고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내가 종종 위로하는 말도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 주께서 오셨다는 사실, 이를 붙들고 설 때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일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나 또한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늘 나를 세운다. 여러 생각이 엉겨 서로를 들들 볶듯 힘겨운 날에 생각하기를 멈추기. 그리고 묵묵히 행해야 할 일을 준행하는 것. ‘몸을 쳐 복종시킨다.’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과 마음가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던함으로 행동이 그만두지 않는 것.
어제는 무슨 문제로 구청에를 가야 했다. 모처럼(?) 행해야 할 일을 며칠째 미루다 결국은 해야 했다. 실내에 가득한 사람들과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며 무슨 서류를 적어두고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살필 때의 초조감. 몇 번이고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던. 어쩌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고 마주해야 하는 일이 힘에 겨운 일이 되었다. 다시 돌아오는 5.25킬로미터. 운전을 하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이 나로 두시는 것에 대하여 그리하여 더욱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시려는. 누군 어떤 이의 기도를, 누군 어떤 그룹의 만남을 제안하며 나의 범불안증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해주곤 하지만 이것으로 ‘남은 자’, ‘시온에 남은 자’로 산다. 나의 생각이 맞는지 그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 또한 그리 주시고 두신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오늘의 나로 두지 않으셨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릴 지키고 있기는 할까? 내가 행하여 추구하며 살던 시간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어려웠고 주를 인정하는 일은 묘연했다. 구청에서 돌아와 한나절이 다 간 시간에 기진한 몸으로 이게 뭔가, 하고 느끼고 있을 때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30:5).
솔직히 나는 나의 나 됨으로 주를 바란다. 누군 어떤 용한 목사? 혹은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 이런저런 이를 운운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고 그 교회(?)의 부흥을 운운할 때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은 그리 달갑지가 않다. 다윗처럼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삼하 16:10).” 하고 주를 인정하였던 일을 나는 자주 묵상한다. 낫고자 하는 데 따른 수고를 하는 대신 그리 두신 데 따른 하나님의 뜻을 자주 되새긴다. 필요하시면 주의 강권하심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을 안다. 주가 그리 하실 것을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5:11).”
나로 묵묵히 주만 바라게 하시려고. 나는 문득 그런 일을 두고 시름에 젖다 오히려 주를 부른다. 오후께 그 막연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서성거릴 때 드는 마음도 주를 인정하는 연습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14).”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나로 이와 같이 두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금처럼 순순히 주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뭐라도, 무엇을 하려고 벌써 뛰쳐나갔을 것이고 그때마다 곁을 기다렸다는 듯 나를 잡아 이끌려는 여러 열심들을 나는 잘 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천성을 향해 하는 크리스천에게 그때마다 다가오던 익숙한 명칭의 명분과 사실들처럼. 누구는 다시 캐나다로 선교를 떠났다. 말이 그렇지 저는 사업가다. 누구는 어디서 복지 일에 힘을 기울인다. 누군 다시 목사 안수를 받고 하와이로 나갈 것을 놓고 일대 사명으로 삼고 있다. 나는 저들의 자신감 넘치는 의욕에 주눅이 들다가도, 주의 일이란 게 주가 원하시는 일인지, 자신들이 추구하고 원하는 일인지… 나는 분간이 어렵기도 하다. 나는 누가 난데없이 은퇴 후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생각에 뭐라 거들어줄 말이 없었다. 하라마라 할 문제도 아니고, 왜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저의 열심이 가상하다가도 위험하단 생각도 든다. 그럴 때면 문득,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어떤 물음 앞에 입을 다문다. 내가 무얼 하려는 것과 하나님이 무얼 하게 하시는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마치 꼼짝 마라, 하고 붙들어두신 것 같은 오늘 나의 날들을 두고… 나는 고작 구청에 가서 사소한 일처리를 하고 돌아와서 힘들어하는 나를 두고 새삼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한 사실,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5-6).” 나로 오늘을 마주하게 하시는 것,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5-7).”
늘 혼자 있는 나를 두고 아내는 때로 염려하지만 나는 그의 향하심을 되새긴다. 이때에 오늘 시편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95:1).
할 때에 우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오라’ 하고 부르실 때에,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그런다고 나는 은둔자로 무슨 수도승과 같은 생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때론 이 또한 답답하게 여겨 낫고자 하고 주께 기도하지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시는 이 말씀을 받고 묵묵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2-3).
오늘 더하신 어떤 슬픔, 혹은 답답함에 있어서도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4-15).
주가 더하신 약속을 붙들고,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00:4-5).
나로 시편에 살게 하시려고. 지난날, 그 애쓰고 수고하였던 일들에서부터 놓여나 주를 바라며 오히려 그때마다 보내시는 ‘상한 영혼’의 누구와 같이 그 어려움을 나누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려고,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더는 나를 내어주지 않으시려고.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4-5).
이 또한 주의 것임을 알고,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6).
주를 인정하게 하시려고,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7-8).
나는 나의 지난날들을 안다. 내가 하려고 할 때 오늘은 주가 막으시는 덴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24:5-6).
이에,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1).
하시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이로써 온전히 주를 바라며 섬기고 그 쓰심에 합당한 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 12: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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