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이사야 3:16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94:14
주신 이가 거두시지 않으시겠나? 오늘 이사야 첫 구절에서 이것이 먼저 눈에 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1-3).” 이는 우리가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총망라한다. 이에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상기하게 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우리가 자주 잊고 마치 내가 내 의지로 사는 줄 알 때에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7).” 하고 성경은 일갈한다. 이에 욥은 거듭되는 재앙 가운데서도 이 신앙만큼은 지켰으니,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살면서 이를 바로 붙들고 인정하고 의지하며 산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까?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이러한 말씀 앞에 주를 인정하는 것, 주신 이도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신 것을. 한데 사람이 참 이를 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라, 그 짊어지고 사는 삶의 무게가 가히 힘겹기만 하다. 그것이 때론 누구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마음이 그러하다. 늙으나 젊으나 바로 서지 못한 가치의 값어치로 인하여 너무 많은 소요비용이 든다. 사랑도 선도 의도 다 돈이라서 그 값을 일일이 다 치르며 산다는 일은 가혹할 따름이다.
하루는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삿 9:15).” 요담이 아비멜렉을 세운 이들을 향해 외친 소리다. 사람의 악은 끝 간 데 없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 9:15-16).” 그토록 예수를 따르며 병 고침과 가난과 이적과 기적을 바라던 이들이 이내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며 외친 소리다.
어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는 데 결론이 든다. “혹시 사람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자기의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네게는 겉옷이 있으니 너는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이 폐허를 네 손아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 하리라(6-7).” 오늘 이사야가 드는 비유의 말씀도 그러해서다. 소유는 바른 사용을 전제로 하고 평안은 찬송을 발판으로 한다. 누굴 의식하고 무엇을 스스로 염려하기 시작하면 이 또한 끝이 없다.
분명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어제 아내와 산책을 하다 그런 소리로 둘 다 인정하였다. 우리가 가난하나 누구보다 부요하고, 가진 것은 없으나 항상 있는 자들보다 모자람이 없었다. 돌아보면 참 어려웠던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어릴 때, 늦게 시작한 아버지의 목회로 우리 가정은 참으로 가난하였다. 남의 건물 옥상에 가건물로 살림살이를 얼기설기 덧대 비닐로 감싸고 살았던 적도 있고, 공납금을 제때 못 내 교무실에 불려갔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한 번도 굶주린 적 없고 어디에서 업신여김을 받은 적도 없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다(렘 5:24). 항상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하는 말씀이 나의 삶에 이루어졌고, 오늘도 그에 따른 모자람이 없이 산다. 이내 나 같은 죄인도 이처럼 강권하여 주의 길 가게 하심을 보면서, 우리는 항상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하시는 말씀은 이루어졌고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와 같이 완료형이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항상 그러하셨다. 오늘 말씀도 이르기를,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10).” 내가 의인인 까닭은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으로 오늘 내 안에 두신 나의 이 마음이 주의 것이지 않겠나? 그러므로 다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하신 말씀에 나는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해도 주는 의로우시다. 주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1).
나는 이제 이와 같은 반복을 사랑한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하루를 말씀 앞에 시작하여 같은 동선을 따라 같은 사람을 만나고 고만고만한 일들로 괴로워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주의 이름을 부르다 또한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일. 어떤 날은 아프고, 어떤 날은 평안하여 그럼 그런대로 일정하게 한 날을 사랑할 수 있게 하셨으니… 하루는 치과 의사가 말했다. 지금 이를 발치하고 약한 잇몸을 보강한 뒤 인플란트를 하시는 쪽으로. 이쪽 이는 다시 때워서 쓰시든가, 덧씌워 사용하시던가. 또 하루는 외과의사가 말했다. 이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여 정상적으로 쓰시던가, 그때마다 약물로 다스리고 살살 다루며 사용하시던가. …이처럼 우리 몸도 일시적이어서 그때마다 소비비용이 만만찮다. 그럴 때면 늘 나의 대답은 그냥 쓰다가… 쓸 수 있는 데까지 쓰다가… 하는 식이어서. 이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결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눅 21:32).” 나의 주어진 삶이란 한 시대 이상의 것은 아니어서, 이 일시적인 삶에 대하여 정작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사 3:16).” 마치 나의 날이 수 년 혹은 수십 년은 보장된 줄 알고 사는 꼴은 우습다. 언제든 오라 하시면 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따로 있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과연 나는 얼마나 이를 의식하며 두려워할 줄 알고 살고 있는지.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10-11).”
엄연한 두려움,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사 3:17).” 부끄러움에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것도 영원한 날에 끝도 없는 부끄러움이라니!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반지와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18-23).”
더는 가리지도 숨기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발가벗겨진 채 우스꽝스런 몰골로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아, 더는 읽기에도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날들이 기다린다(24-25). 오죽하니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26).”
더는 돌이킬 수도, 후회도 회개도 닿지 않는 곳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이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하면 저의 신앙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저의 무던함과 진득함을 사랑한다. 무려 120년의 시간이었을 방주 짓는 일의 반복이라니. 어쩌면 우리의 구원도, 그 믿음의 확신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혹, 하는 어떤… 그렇듯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우리의 신앙은 단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7-8).
아내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그러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 엄마한테 천만 원만 달라고 했어? 다 늦은 오후께 이 무슨 농담인가 했더니, 늙으신 장모가 뜬금없이 수심에 찬 얼굴로, 내가 휠체어를 밀어주며 귀에 대고 말했다나? 무슨 소린가, 하고 황당해 하는데 그리 묻는 아내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나이가 든다는 일은 참으로 여러 변모를 거듭하는 것 같다. 내게는 말하지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장모의 말에 나는 못 들은 척 하고 말았지만, 노모가 지레 어떤 미안함을 안고 있어 환청이 들린 게 아닌지. 혹은 어떤 의미인지, 여러 번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이에 오늘 시편 한 구절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94:11).
우리의 약함과 그 됨됨이를 주가 다 아신다. 주는 말씀하시길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하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4).
나는 주의 백성, 저의 소유인 것에 안도한다. 하여 이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시는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듯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2).
나는 늙으신 노모를 위해 기도하였고, 저의 평생에 이고 지고 살았을 그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주의 긍휼하심 앞에 이 모든 상황을 맡긴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18-19).
나의 일생을 돌아보면 모든 날은 그러하였고, 어떤 어려움이나 역경 가운데서도 나를 홀로 두지 아니하셨던 그 하나님을 나는 사랑한다. 늘 언제나……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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