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2 주일
시 125편
평강
들어가는 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새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은 호레이셔 게이츠 스패포드가 사랑하는 아내와 네 딸을 잃고 지은 찬송 시이다.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의 저자 윌리엄 쿠퍼는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평생 우울감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살았으나 주께 고백하는 시들을 찬송으로 남겼다.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후일에 목사가 되어 주의 부르심 가운데 지은 찬송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저마다 눈물어린 신앙고백으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얻어낸 열매’ 곧 세상은 알 수 없는 평강의 찬송들이다.
우린 누구나 불안정하다. 신자나 불신자나 우리 사람은 모두 무언가를 의지하고 무엇에 의존하여 산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간다는 일이 곧 찬송이 되어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낸다. 우리에겐 누구도 알 수 없는 안정감 곧 평안이 있다. 물론 우리도 갈등하고 회의하고 절망가운데 빠질 때도 있지만 곧 주가 주시는 평강이 우리로 안정감을 되찾게 한다. 우리의 어떤 확신, 이 알 수 없는 평강이 오늘 시편의 주제이다. 그래서 우린 스스로 의존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 방어기제를 발동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어떤 든든함 그 알 수 없는 안정감이 있다. 이를 오늘 시편은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고,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 같다’고 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열다섯 편(120-134편)의 시들 가운데 여섯 번째 시로 우리가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만 주시는 평강’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린 끝내 이 순례의 길을 무사히 마칠 것이다. 주가 주시는 평강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하는 필연적인 약속이 있다.
이 평강은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에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고백되고 고백대로 안정을 얻는다. 이에 우리가 주목하고 주의해야 하는 두 가지 죄악이 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파지 않는 것이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0-13).”하나님보다 더 원하는 것, 하나님만으로는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 이는 먼저 돈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눅 16:14).” 다음은 스스로 높이는 일이다.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 곧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15). 정리하면 우리가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파는 것은 돈을 사랑함 때문이고 스스로 높임을 받으려는 것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를 가리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모든 것이 ‘터진 웅덩이’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지는 일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사는 것이다(롬 1:21-23). 오늘 시편에서 우리는 이를 주목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안전에 대해 알아보고 확신을 얻고자 한다.
본문이해
시적구성은 두 연으로 나뉜다. 1연(1-3절)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를 여호와 우리 주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 2연(4-5절)은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며, 1절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와 2절에서 ‘그의 백성’과 3절에서 ‘의인’과 4절에서 ‘선한 자, 마음이 정직한 자’ 들은 모두 5절에 표현된 ‘이스라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는 영원토록 평강이 있을 것임을 알게 한다.
이에 오늘 우리는 이 시편에서 두 가지 주제, 하나는 ‘구원은 곧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에 대해 그 근거를 찾고 확신을 얻고자 한다.
1. 구원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1-2).”
세상은 위험하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갑작스런 변고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예외가 없다. 이때 우리에게는 주를 의지하는 의뢰가 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하는 게 성경의 약속이다. 욥은 이 진리를 깨달았고, 그리하여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아 더는 희망이 없다 해도 자신은 하나님을 의뢰하겠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이 내 가족을 모두 난파당하게 하셨고, 사랑하는 이를 먼저 데려가셨다 해도, 바울은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하고 더 나은 은혜가 있음을… 그래서 우리의 환난의 목적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 소망, 우리의 구원은 곧 우리의 불안과 슬픔보다 확실하다. 우리 안의 평강은 우리의 방어기제를 풀고 원망과 서러움을 ‘견고한 의뢰’로 바꾸어놓는다. 이를 시인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시 46:1, 139:5).” 하고 찬송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럴 수 있는지, 우린 자신할 수 없다. 과연 그럴 때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한데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1-12).”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의 기도 때문에라도 우리 안에는 안전한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정이 있다.
2.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3-4).”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우린 완벽한 보호하심 아래에 있다. 우리의 감정은 들쭉날쭉하고 좋았다 싫었다, 흐렸다 개였다,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는 기분 때문에 불안할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평안하다. 우리의 본성은 나약하나 이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주께 고하면, 닥치는 문제 앞에서 우린 덤덤할 수 있다. 심지어는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그 일에 대처한다. 이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리학적인 근거로 시인은 증명한다. 오늘 1-2절의 표현처럼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이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 같이’ 주의 백성들은 산을 옮기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평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을 선대하신다고 시인은 또한 확신한다. 우리는 ‘선하고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리 인정하신 의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우리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궁하시다. 우리의 그 어떤 죄보다 높고, 길고, 넓고, 깊으시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그러므로 우린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악인의 능력이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으로,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시 125:3).” 곧 모든 죄악 속에서 하나님의 의는 우리로 성결하게 하신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던 것처럼,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목숨을 잃을 각오로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로 죄인들의 죄악을 경계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결국은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2).” 이는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이것이 우리의 평안이다. 우리에게는 요동치 않는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두른 산들과 같이 ‘굳건한 평강’이다.
결론: 평강이 있을지어다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5).”
우린 수시로 주께 간구하고 회개한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시 25:7).”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기도다. 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3-4).” 곧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가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알면 알수록 얼마나 큰 죄 가운데 있었는지, 다시는 죄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는 데서 바울의 절규가 우리의 절규가 된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하는 이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 1:19-20).”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이 파선하는 이들은 본래부터 ‘자기의 굽은 길로 간 사람들’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마치 내비게이션에서는 하나로 보였던 차량이 하나는 고가 위로 하나는 고가 아래로 달리다가 다른 길로 빠지는 것처럼, 우리가 같이 시작하여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시인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믿음의 경로를 이탈하여 달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게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오늘 시편은 우리의 ‘견고한 평강’이 주가 주신 증거임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곧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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