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8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편 116:2
하나님은 옛적에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그의 성실함과 진실하심으로 심판을 준비하신다. 이를 오늘 본문은 모두에서 기린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1).” 이방의 성읍과 궁성을 심판의 능력으로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빈궁한 자와 연약한 자로 그들의 보장이 되어주실 것이다. 성산에서 구원한 자들의 성회를 여시고, 그 원을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성회에 모이지 못한 자들은 멸하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이시다. 말씀은 예언이며 동시에 성취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나님의 언어, 그 말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쓰는 언어로 주를 찬송하게 하신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왕상 8:56).” 이 모든 이루어진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산다. 우리의 말, 그 사용하는 언어로 주를 알리고 찬송하고 경배하게 하는 데 사용하신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 89:2).
이에 우린 우리의 ‘나의 하나님’을 부르고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하는 오늘 말씀의 초점은 다른 데 한 눈 파는 것을 막으신다. 가령 어제는 늙으신 장모의 말을 막고 그 영혼이 되뇌는 옛 이야기를 가로막았다. 이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애굽을 회상하며 그때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것고 같아서, 돌아가자! 하고 그 무리를 충동하는 때와 같다. 하나님이 내게 부여하신 단단한 막대기는 주의 말씀이라. 저녁마다 함께 예배드리며 나는 그와 같은 어리석음이 우리로 오늘의 축복을 얼마나 상실하게 하는지 설명하였다. 온통 장모의 회상은 ‘그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때에 그나마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었던 몇몇 누구에 대한 것이다. 특히 어떤 이에 대하여는 저가 마치 마땅한 것을 요구하듯 채권자처럼 구는데도 그때마다 갚아야 할 부채를 떠안은 사람처럼 끌려간다.
마치 사탄은 늘 우리 안에 그리움을 둔다. 혹은 어떤 모난 돌을 숨겼다가 돌아앉을 때면 배겨서 그 아픔으로 그때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외침은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이를 나는 아흔이 다 된 노인에게 알리며 그 고집 같은 아집 같은 사탄의 속삭임을 막아내야 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으나 저의 삶이 모두 우상과 저들을 숭배하는 자들뿐이라…. 끊어야 산다고 단호하게 외쳤다. 노인의 고집은 노새의 굽은 등 같이 완고한 것이어서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잠 26:3).” 이는 우리 영혼의 문제다.
예전과 같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이면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겠으나 나는 말씀으로 단호하였고 장모는 그에 따른 자기 생각으로 완강하였으나, 말씀 앞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 나는 담대히 전할 뿐이고 역사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
주의 언어,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롭다. 가령 니고데모는 뭔가 성스러운 대화를 위해 예수 앞에 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엉뚱한 소릴 하신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오랜 경륜과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어도 이와 같은 말씀에는 난해할 뿐이어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하실 때에 저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4).” 곧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일상의 언어로 이루어지고, 일상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와 부딪친다. ‘그때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할 게 없다. 하나님의 언어는 성령의 영감에 따라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가령 나다니엘 호손이 어디에서 한 말처럼, ‘그분의 도구는 그분의 목적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쓰일 뿐이다. 쓰임으로 그 역할은 다했다. 만일 도구가 그분의 목적을 의식한다면 더는 도구가 아닐 것이다.’ 곧 우리가 어떤 일로 무슨 말을 할 때에 그 사용하는 일상 언어에서 성령의 역사, 곧 하나님의 언어가 활동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에 우린 의식적으로 주 앞에 서고 간구하는 성경의 언어를 사용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35:23, 43:4, 68:24).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때에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사 25:2-3).” 오늘 이사야는 이를 밝혀주고 있다. 곧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그때에’ 우리가 그리 행하였던 사실을 나이 든 장모에게 밝히 알려 그때를 벗어버리게 한다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는 평생을 ‘그때의’ 힘으로 살았고 그와 같은 회상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하루에 한두 구절씩 열 번 필사하게 하는 숙제를 드리는데, 그래도 신기하도록 감사한 것은 아흔이 다 된 나이 든 장모가 떠듬떠듬 이를 공책에 옮겨 쓰고,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예배 전에 공손히 내어놓는다. 어제의 숙제는,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곧 그때의 그들과 오늘의 그들은 엄연히 다르다. 끊을 자는 끊어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장모는 이를 한참 고집하였으나 나는 엄히 전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주어질 숙제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29-30).”
오늘 우리가 누리는 주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와 그 대가를 치르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심지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곧 우린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값으로 새 삶을 얻은 자들이다. 하여 오늘 이사야의 찬송은 온당하였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사 25:4-5).” 날 위해 싸우시고 날 위해 대신 죽으시기까지 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어찌 허투루 값싼 은혜 안에 처박아둘 수 있겠나?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
우린 필히 이기는 자들이다. 승리의 삶을 산다. 굴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게 두지 않으신다. 나는 장모에게 그리 말하였고, 이젠 앞을 바라라고 하였다. 코앞에 죽음이 있어 한사코 외면하고 싶겠으나 나는 그 죽음을 대비하라고 일렀다. 이를 위해 기도하시라 권하였다. 세상에 죽음이 두렵지 않고 이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나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 7:8).” 곧 우리의 죽음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을.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12:5).
그럴 시간에 여전히 예전 일을 떠올리고 저들의 요구와 막무가내인 관계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가령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선생과 더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또는 가까이 하며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자들과도 끊어졌다. 때론 그립고 때론 엄청난 부채감 같은 고마움이 가슴을 누를 때도 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신들의 ‘높은 마음’을 우선한다. 나는 저들에게 변명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오늘 이사야의 외침이다. 하여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9-10).” 이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116:1-2).
오늘 시편은 나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한다. 담대함으로 주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 때론 내가 하는 일을 나는 알지 못하나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여 나는 나의 사고와 나의 언어가 때론 나 자신에게조차 의심스러울 때,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4).
주가 항상 앞서 행하심을.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나는 기도할 뿐이라!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욘 2:7).” 도구는 그저 그 쓰임을 다할 때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이다. 하여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오늘 시편은 이에 기도하게 한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5-7).
고로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주는 이내 나를 붙드시고 우리로 바른 쓰임을 다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를 살아온 날 동안에 알았고, 요즘 동생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아하, 하고 저절로 주의 행하심을 깨닫게 된다. 주가 쓰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13-14, 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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