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전봉석 2023. 3. 31. 05:12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이사야 32:15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시편 119:116(97-120)

 

 

 

화와 복의 노래다. 한 의로운 왕이 등장할 것과 저가 백성들의 보호가 되고 안식처와 구원자가 된다. 저로 인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영육간에 축복이 임할 것이다. 앞서 가지고 살았던 가치관이 무너지고 참과 거짓이 바로 잡힐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웃시야 이후 히스기야에 이르러 이와 같은 종교개혁과 선정으로 유다가 공의를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1년 남짓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에 머물 것과 이후 선민의 땅에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앞서 회복과 행복을 예언하다 후반부에 심판의 예언으로 구성된 것은 백성들의 회개와 무관심한 태도에 따른 것이다. 뉘우침과 회개가 없으면 파멸뿐이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9).” 이러한 말씀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데면데면한 것은 영적인 안일함을 뜻한다. 실제 믿는 자의 태만은 그 어떤 유혹보다 무력하게 한다. 그에 따른 성경의 경고는 분명하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그저 다 잘 될 거라, 격려하며 서로가 평안을 빌어준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8:11).” 죄를 질병으로,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그렇다. 영적태만은 회개를 가로막는다.

 

누구에게 교회로 나올 것과 바른 신앙생활을 촉구하자 저는 입을 삐쭉, 하고는 ‘나중에요!’ 하였다. 지금은 저마다 바쁘다.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 14:17-20).” 소돔과 고모라가 곧 멸망에 처했을 때도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8:12).”

 

이와 같은 경고는 오늘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4, 6).” 그런데 이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적당하여서다. 살만하다. 다들 그러고 산다. 세상은 여전하고 안 믿는 자들도 그럴듯하게 잘들 산다. 문화란 거대한 담론과 같아서 끝도 없이 되살아난다. 여기에 심판에 따른 경고는 가까울 리 없다. 하여 결국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치신다. 오늘 본문에서도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13-14).”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바울의 근신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는 괜한 염려증도 아니고 불안의 한 증상도 아니다. 내가 나를 볼 때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대상이 나 자신인 것을 인정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주 앞에 회개하고 돌이켜 마음을 가다듬는데도 돌아서기 무섭게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이는 결코 바울 개인의 절규가 아니다. 나의 나 된 것에 나는 날마다 실망한다.

 

그러해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마치 길가의 조뱅이풀과 같이 밟고 문질러도 다시 피어나고, 끝도 없이 잘라내고 뿌리를 뽑았는데도 피어나는 잡목과 같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 3:12).” 그래서도 바울은 재차 언급하였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나의 됨됨이에 내가 두 손을 들을 때,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시 119:107-108).

 

주가 아니시면 감당이 안 된다. 금세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고, 나태와 안일함에 빠지며, 죄악을 따라 그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 오늘 이사야는 이를 일깨운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15).” 곧 위에서 주의 영을 부어주지 않으시면 누구라도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 목사가 버젓이 맡기신 성도를 추행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정치질에 말씀이 썩는 것도 모르고…. 이를 또 맹신적으로 따르는 무리들은 여느 사조직보다 무모하기 일쑤다. 무슨 이단이나 어디 큰 사건사고로 사회적 골칫거리가 된 것은 고사하고 주변에도 그와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가 이르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5-6).” 오늘 우리의 현상은 어떠한지?

 

규범이 되는 교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큰 교회들은 그 사교성과 사회친화력이 남다르다. 목사는 그 지역 유지와 다를 게 없이 발이 넓고 영향력이 뛰어나다. 이에 따른 성경의 지적은 두렵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 14:4-5).” 가까운 누가 노회에서 임원까지 한 모양이다. 발이 넓으니 어디 단독 목회지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서 동생들에게도 희망 아닌 희망을 전달한 모양이다. 이런저런 속내를 다 글로 표현할 수는 없어서 이는 마치 누워 침 뱉기 같아서 송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만다. 굳이 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새삼 연락을 닿으며 예전처럼 알고 지내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저마다 옳고 그름은 있을 테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1-14).” 그러니 날 잘 모르겠다. 그래서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처럼 이대로 하는 일도 없이 주 앞에 송구할 따름이어도 되는 것인지….

 

다만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16-17).” 오늘 이사야서에서 나는 주어진 밭에서 때론 혼자 때론 누구를 돌보고 건사하며 ‘고작’ 말씀으로 이 사소한 일상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다만 주가 행하심을,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 85:9-11).

 

이에,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18-19).” 오늘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무던함과 나태함이 나란히 하고 있는 것에 주의할 따름이다. 그러는 동안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20).” 나는 내게 주어지고 맡겨주신 내 몸뚱이 하나, 내 곁의 아픈 아이 하나, 늙고 병든 장모와 이에 힘겨워하는 아내와… 어떤 일로 급박하게 기도를 부탁하는 누구와 또 다른 이의 ‘어떤 어려움’을 듣고 같이 씨름할 따름이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말과 하나마나 한 소리 같은 말씀으로 위로하면서, 나는 위에서 주의 영을 부어주실 것을 그리하여 주가 행하실 것을 바랄 뿐이다. 이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119:97).

 

솔직히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누구처럼 사회성이 뛰어난 인물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며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98-100).

 

말씀이 나를 붙들어 놓아주지 않으심이 복되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의 불안증도 강박도 사회적인 결함도 사랑한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살면서 사랑하고 배우는 동안 내 곁의 한 영혼에게 주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이 그러하여서 저에게 들려주는 주의 편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요지경이라 해도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렘 14:10).” 나는 이와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일심으로 주만 바라며 살다 갈 수 있기를. 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 쓰임에 따라 나는 가만히 놓여 있기도 하는 것일 테니까….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1-102).

 

할 때에 그 느낄 수 있는 말씀의 맛에 심취하여,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3).

 

그리하여,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4).

 

주 앞에 가만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나는 더 이상 세상을 따라 살지 않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5).

 

그러할 때에,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113, 116, 1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