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 30:15-18, 26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7, 71(49-72)
우리로 돌이켜 주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기까지 참고 또 기다리시며, 하나님은 일하신다. 첫째는 우리로 세상을 떠나 주가 예비하신 곳으로 부르신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1-2).”
둘째는 우리의 가는 길에 저는 요새이시다.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 22:2-3).” 셋째, 우리가 숨을 구원의 바위가 되신다.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7).” 넷째, 우리가 내딛는 걸음마다에 등불이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29-30).”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심이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사 40:1-2).” 여섯째,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43:3).” 일곱째, 우리 가는 길에 ‘좋은 소식’이 되신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52:8).”
오늘 본문으로 우린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우릴 얼마나 귀히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된다.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앞에 숨을 곳이 없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가끔은, 아주 가끔은 말씀을 읽을 때면 왜 이처럼 날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유다는 하나님을 불신하면서 자기 스스로 강하여지기로 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애굽과 동맹한다(1-2). 늘 수치를 당하면서도 애굽에게로 간다(3-5). 많은 재물이 들고 수고가 따른다(6-7). 하나님은 유다에게 경고하신다(8). 심판을 선포하고 불싱앙을 지적한다(9-11). 그럼에도 말씀을 업신여기고 불신한다(12-14). 그럼에도 하나님은 거듭 권면과 경고로 이를 알게 하려 하신다(15-17). 결국 징계가 임하고 주께 돌아오길 주는 기다리신다(18-19). 그들을 위해 선지자를 보내 회복과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돌이키게 하신다(20-22). 하나님은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회복될 것을 알게 하신다(23-26).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앗수르의 군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위세를 집행하신다(27-29). 그에 따라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기뻐하게 될 것을 알리신다(30-33).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거듭 되풀이 되어 나타났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게 하려 고난도 징계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에 오늘 시편은 적절하게 노래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 71).
이와 같은 고백은 우리 믿는 자이면 후렴과 같이 동일한 찬송이 아닐까? 주를 멀리하며 세상을 좇고 저들과 어울려 저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살고자 할 때는 몰랐다. 그때 내가 얼마나 수치를 당하고 모욕적인 삶을 자처하며 살고 있었는지, 주 앞에 돌이켜 주의 사랑을 알고서야 그때를 부끄러워한다. 족장 시대를 지내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거듭 이 일이 되풀이 되었다. 주의 은혜로 태평할 때 애굽으로 또는 각종 이방의 우상숭배로 죄에 빠졌고, 그때마다 징계의 고난이 주어져 돌이켜 회개하면 다시 또 용서하길 수도 없이 반복하셨다. 이에 지혜자는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잠 6:14-15).” 여러 차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가 더는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날이 갑작스럽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29:1).” 정작 우리로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6:23).” 이에 말씀을 주셨다.
여전하여서 오늘의 이런저런 상황에 눈이 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여전한 반복 가운데서 돌이켜 주 앞에 세워지는 자가 적으나 꾸준하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 2:25).” 두려운 것은 어느 순간 더는 그럴 기회가 없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주가 하시는 일에 우리는 증인이 된다. 목격자가 되어 내가 경험한 바를 알린다. 그리하여 나에게 들린 것이 너에게 보이기를, 나에게 보인 것이 너에게도 들리기를.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4-26).”
나는 오늘 말씀에서 결국 주는 포기하지 않으심을 새삼 감사히 여긴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사 30:15-16).” 오늘 일련의 이런저런 일들이 스스로 자처한 것임을. 그렇듯 잘해보겠다고 하는 일이라 그게 도리어 억울하고 분한 심정일 텐데, 그 삶이 또한 얼마나 구차하고 번잡스럽기만 한지.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17).” 참 우린… 우리 스스로의 어쩔 수 없음 앞에 혀를 내두른다.
아내는 교회로 나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또 그러고 있는 자신을 두고 어쩌면 좋은가 하고 주께 여쭌다. 내 안에 이는 그러한 심정이 있어 나 또한 다르지 않은 것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참고 또 기다리시기를,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2).”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인애가 정의가 무엇인가?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 주는 우리의 체질을 다 아신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03:14).
이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오히려 나를 싸매시고 빛을 더하시는 하나님 앞에 영광과 찬송을 돌릴 수밖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를 기다리시며 오늘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119:49-50).
말씀이 위로가 되는 삶. 이처럼 주 앞에 나와 말씀으로 그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주를 바라게 하심을.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 9:31).” 곧 우리의 경건은 어떤 업적이나 결과가 아니라 주를 바라는 것. 우리의 수고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어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하는 소리 따위는 소용이 없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하여 점점 그 바람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 예전에는 삶이 질이 나아지기를, 나의 어려움이나 이 고단한 현실을 아뢰며 도움을 구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으로만 바라게 되는 것. 예수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저들의 바람이 훗날 예수를 내어주고 못 박게 한 것을 볼 때면, 우리의 어쩔 수 없음이 되레 주를 바라게 하는 빠른 길이었다. 나의 나 됨을 어쩔 수 없어하며 주를 구하는 일,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55-56).
우리로 더욱 주를 바라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심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곧 우리의 시간은 낡아지고 더는 운신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를 기뻐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7).
이와 같은 고백이 내 것이어서 나는 이제 다행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22).” 그러므로 나의 고난, 주를 찾고 부르짖게 하였던 그 순간이 복이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67, 71).
그러한 삶에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68, 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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