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33:2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119:133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구원의 간구이다. 우리로 주를 찬양하고 경외하는 일에 주는 늘 응답하신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의로운 성도의 간구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2).” 이에 따라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곧 믿음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갖는다. B. C. 722년에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의에 함락당하기까지,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은 이어졌다. 이를 위해 그 선대 왕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통해 국면을 극복하려 했다. 저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간섭을 받아야 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폐하고 친 앗수르 정책을 거두었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세는 점점 심화되었다. 유다를 학대하고 잦은 탐욕으로 침공이 이어졌다. 결국 다시 조공을 바치고 얼마동안의 평화가 있었다. 이에 대한 이사야의 경고다.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1).”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로 전쟁과 전쟁은 끝이 없었다.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욥 4:8-9).” 그러므로 성경은 누누이 강조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그리하여 고난 중에 우리는 주께 구하고 우리의 간구를 주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표면적으로는 앗수르의 공격으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간구하였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2).” 이와 같은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돕는 자가 되신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그러할 때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이를 시편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4:4).
하는 신앙고백이 이루어졌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2).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우리로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것으로 우린 주를 부른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1, 3).
이를 경험한 자는 눈물로 주께 간구한다. 어제 저녁예배를 드릴 때에 장모는 자신이 한 번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어릴 때 어느 가정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는데 저마다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눈물로 주를 부르는 모습이 기이하게 여겨졌다고도 하였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그에 따른 긍휼하심과 은혜를 받을 때에 일어나는 역사이다. 단지 서러워서 한탄어린 눈물과는 다르다. 그때에 우리의 고백은 한결같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28:7).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6:5).
우리에겐 이와 같은 의지와 믿음이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산다.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수 24:13).” 가령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헌금이 들어오고 나는 저를 알 수 없어 주의 은총을 간구한다. 특히 교회를 이루어가면서 나는 이와 같은 경우가 빈번하여 주가 하신다는 데 확신을 더하신다. 이 일을 어쩌나… 하고 마음에 담고 주께 호소할 때 맞춤하니 예배하신 손길을 펼치실 때에 나는 매번 놀란다. 이를 알면서 내 안에 이는 조바심이나 어떤 조급함에서 놓여났다. 주님, 하고 때를 기다릴 때 주가 이루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데서 나는 늘 안도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어제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고백하기를 그래서 나는 다행이다. 안심이 된다. 내가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말이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 12:31).” 그러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4:11).
이와 같은 믿음이 나를 붙드실 때 나는 평안하다. 어디가 아프고 또 마음이 어려워서 고통당할 때 그것으로 주를 바라고 주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것이어서 또한 유익하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25:12-13).
이와 같은 말씀이 주는 힘은 놀랍다. 어제도 같이 말씀을 나눌 때에 우리가 주를 바라고 주께 온전할 수 있는 것이 말씀으로인 것을 설명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고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6:8).
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는 삶,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6).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107:19-20).
하여 고통이 무조건 싫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주를 부를 수 있고, 그럼 고통에서 주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을 보내시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져 고치시고 건지신다. 그러므로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44:6-7).
어떤 고통, 더는 가망이 없을 것 같은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주가 살리시는 역사로 우린 눈물로밖에 감사할 게 없다. 이에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8).” 하여,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31:23).
말씀으로 말씀에 이르게 하신다. 말씀을 보내시어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이 놀랍고도 참으로도 귀한 은혜 앞에서,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19:123).
일생동안 우리로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저마다의 일을 주시고 그것으로 고통당하게도 하시나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우리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심이 귀하였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게, 우리의 신앙이 더욱 더 견고하게,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124-125).
하여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우리로 주의 가족 삼으신 데에 감격할 따름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나는 오늘 이와 같은 말씀으로 오늘의 나를 주께 의탁한다. 때마다 주가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채우시고 인도하심을 신뢰한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주 앞에 붙들려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0-131).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132-133).
오늘의 시편 앞에 다시금 엎드린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하루 종일 혼자 서성이거나 누굴 생각하고 무얼 위해 간구할 때에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뿐이어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135-1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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