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130편 / 기다림, 소망

전봉석 2023. 4. 28. 09:21

230530 주일

 

시편 130편

소망

 

시 130: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 130: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 130: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 130: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 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30: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시 130: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들어가는 말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5-6).”

 

오늘 주제는 소망이다. 기다림은 소망이다. 이를 파수꾼의 이미지로 연관 지어 저의 기다림을 묵상하게 한다. 사실 파수꾼은 크게 하는 일이 없다. 활동적이지도 않다. 망대 위에 서서 망을 보는 사람으로 위험을 알린다. 저는 밤새 새벽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인으로 산다는 일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곧 번잡스럽기 짝이 없는 날에 우리는 주께로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실은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우리가 주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은 ‘사유하심’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사유하심은 ‘두루 대상을 생각하심’으로 하나님이 곧 모든 ‘일의 까닭’이심을 알게 한다.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4).” 이를 알 때에 다윗과 같이, 쫓기며 굴에서 숨어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시 142:1).”

 

이를 오늘 우리는 더욱 확신하는 것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오늘 우리는 소망을 가짐으로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리는 자로 인내할 수 있다.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순례자의 노래> 열한 번째이다. 사죄와 구속을 아뢰며 참회하는 시편으로 역사적인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에 익명의 시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시의 구성은 1연(1-4절)은 ‘인생 깊은 곳에서’ 죄악을 참회하며 ‘사유하시는 주를 경외함으로’ 부르짖는다. 2연(5-6절)은 구원을 확신하며 기다림으로 소망을 내포한다. 3연(7-8절)은 선민의 기다림이 ‘이스라엘’에 이뤄질 것을 확신한다. 기다림은 소망으로 환난 중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앙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나아가 입술의 열매로 우리는 기도를 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시 120:2).” 그럴 때 우린 비로소 확신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63:3).” 곧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57:19).” 곧 입술의 열매로 기도와 찬송이 우리로 평강하게 한다.

 

이에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세 가지, 첫째, ‘인생 깊은 곳’ 즉 고난 중에 우린 참회하며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을 고백한다(1-4절). 둘째, 주를 경외함으로 구원을 확신하며 기다림으로 소망한다(5-6절). 셋째, 우리의 기다림은 반드시 이루어져 환난 중에서 속량하실 것을 의지하며 소망한다(7-8절).

 

1. ‘인생 깊은 곳’에서 기도한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30:1).”

 

인생을 살다 ‘깊은 곳’ 즉 나락(奈落)으로 떨어졌을 때, 우린 이제 주를 부른다. 오늘 시인은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2).” 하고 주 앞에 엎드린다. 이에 따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3).” 죄를 가지고는 주 앞에 설 수 없다. 우린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하여 두 번째는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으로 우린 ‘주를 경외함으로 죄를 고한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4).”

 

앞서 언급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로 주께 부르짖는다. 아무리 인생의 ‘깊은 곳’이라 해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이는 저가 우리에게 보인 모범으로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14:14).” 주께 아뢰게 된다. 이때 우린 괴로워하며 번뇌한다. 이를 참을 것인지 다른 방도를 찾을 것인지,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할 것인지 그래도 견딜 것인지, 번뇌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자로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 하는 신앙은 그야말로 ‘선민’,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다. 곧 우리 입술의 열매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시 66:14).” 여기서 두 가지를 배운다.

 

첫째는 고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곧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고난의 주체는 하나님이신 것을, 하여 모든 인생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에, 오늘 시편의 세계는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130:2-3).” 하고 주를 바란다. 여기서 욥의 고백,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더 나아가 바울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이는 ‘죽이실 것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과 ‘죽여서라도 정죄당하는 것을 막으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이다.

 

둘째,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께 전가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설령 우리 죄가 아무리 크고 무겁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깊고, 넓고, 길고, 크시다. 충만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모든 죄가를 전가하는 것은 고통이 주는 지혜다. 고통은 우리로 회개하게 한다.

 

2. 주를 경외함으로 구원을 믿고, 기다림으로 소망한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5).”

 

우리는 고난으로 기다림의 소망을 갖게 된다. 이를 앎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는 ‘사유하심’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사유함이란 ‘그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행위’도 사유다. 우리는 ‘깊은 곳에서’ 남모를 아픔을 겪는다. 이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주를 경외함으로 소망 가운데 구원을 기다린다.

 

이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130:5-6).” 우리는 믿음의 파수꾼이다.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이를 믿음으로 이겨내며 신앙 가운데 산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27:14).” 하고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 하는 성경의 강조는 그 이유다.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욥 35:14).” 그리하여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이것이 믿음이고 사랑이며 우리의 소망이다.

 

3. 우리의 기다림은 반드시 픙성한 속량으로 끝맺음한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7-8절).”

 

인생의 ‘깊은 곳에서’ 홀로 고통 중일 때, 믿음으로 주께 전가하고,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주를 경외하게 된다. 모든 인생은 고통에 노출되어 산다. 불교나 철학은 이를 관념으로 돌려서 속세를 등지고 떠난다. 저마다 자기 속에 깊숙이 감추어서 스스로 짊어지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하고 외친다. 저는 누구인가?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이 풍성한 속량하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 사랑은 충만하여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곧 우리 죄악이 아무리 크고 깊고 높다 해도 우리 주의 은혜와 진리가 더욱 충만하시다. 이에 우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심을 알고,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141:1).”하고 주의 사랑 앞에 부르짖는다.

 

나오는 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고난의 ‘깊은 곳에서’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고 성경은 되묻는다. 믿기지가 않나?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우린 살면서 인생의 ‘깊은 곳에서’ 오히려 소망한다. 소망함으로 주의 속량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저의 충만하신 사랑을 입은 자의 특권이다. 이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오늘 이 시편의 세계에서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하는 고백이 우리 일상의 언어가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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