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132편 / 약속을 기억하고 순종하라

전봉석 2023. 5. 11. 16:53

230514 주일

 

시편 132편

약속을 기억하고 순종하라

 

 

시 132: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시 132: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시 132: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시 132: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0-21).”

 

오늘 본문에 앞서 고라신과 벳새다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묵상할 필요가 있겠다. 저 두 고을은 예수님이 자주 거하시며 자라셨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저들은 예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마 13:55-57).” 스스로 잘 안다고 여기는 것, 상대적으로 오래 교회를 다녔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타성에 젖는 일이다. 하여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하고 야고보는 경고하였다.

 

어느 정도 좀 다니고 서로 잘 안다할 때 직분이 주어지고, 직분에 대한 감격이 사라지면서 교회 중역을 맡는다. 오늘 본문은 이에 따른 경고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과 각별한 관계였던 다윗은 항상 깨어 있었다. 저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를 베드로의 설교로 이해하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이를 방어하는 데 있어 다윗은 항상 성소를 바라였다. 주의 성소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언약궤를 모셔두었다.

 

역사적으로 언약궤는 시내산에서 시작하였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정복하는 현장에도 함께하였다. 그 뒤 실로에 모셔졌다가 블레셋에 의해 빼앗기기도 하였다(삼상 4-7장). 후에 기얏여아림에 모셔졌다가(7:1-2), 예루살렘 다윗 성에 모셨다가 솔로몬의 성전으로 옮겨졌다. 언약궤는 길이가 122cm, 너비가 76cm, 높이가 76cm의 금을 입힌 나무상자이다. 그 안에는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과 만나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다. 이는 상징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 설마 하나님이 그 작은 상자 안에 계시다는 소리는 아니다. 곧 이와 같은 역사는 중요하면서 위험하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성물이지만 그 궤짝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우상화할 수도 있다. 종교적인 목적이 투영되면 위험하다. 하나님의 임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령 성경도 마찬가지다.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받을 때 성경은 중요하다. 한데 이를 지나치게 의미부여하며 각각의 어원과 역사적 배경과 각 저자의 의도를 중점적으로 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제한된다. 곧 우리에겐 주의 말씀을 갈망하는 소원이 필요하지만 능숙한 해석과 박식한 지식이 오히려 성경의 감동을 소멸하기도 한다. 실제 신학자나 언어학자들이 곧이곧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는 자신이 잘 아는 언어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성경을 접근하면 그 해석을 국한시킨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

 

이와 같이 언약궤나 성경이나 교회나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말씀으로 주가 세우신 곳이어서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은 ‘좋은 곳’이어서보다 하나님이 계신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여 다윗이 하나님의 성소를 그토록 갈망하고 언약궤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데는 그에 따른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모함에서였다. 이를 기억하자고 오늘 시편은 중심을 잡는다. 이는 하나님을 우리 삶에 모시고 순종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은 열다섯 편의 <성전으로 가는 순례의 노래> 가운데 열세 번째 시편이다. ‘다윗이 성전을 사모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이에 순종을 다짐하고 있다.’ 시적배경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 기도’를 드렸던 내용과 흡사하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일어나 들어가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평안한 처소에 계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옵건대 주의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입게 하시고 또 주의 성도들에게 은혜를 기뻐하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시옵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더라(대하 6:41-42).” 이는 오늘 시편 8-10절에서도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하는 내용과 같다. 이를 보아 솔로몬을 저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시적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연(1-12절)은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갈망하였던 다윗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다윗의 언약을 회상한다. 2연(13-18절)은 다윗과의 언약이 실현될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소망한다. 이를 토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삶의 순종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였던 다윗을 기억하고, 저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축복을 회상함으로 우리도 바른 순종을 살게 한다.

 

1. 기억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132:1).”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연상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이에 축복을 간구할 수 있다. 이는 ‘다윗과의 언약’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의 언약’으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여 우린 오늘 여기에 모였다.

 

우리로 굳건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약속으로 소망을 붙들고 순종함을 배운다. 우리 신앙의 원리는 이와 같이 기억하고,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간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26:45).” 우리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그리고 이르시길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

 

곧 우리나라에 어찌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저들의 순교자적인 삶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 복음을 어찌 지켜왔는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 5:19).” 우리의 기억은 우리로 주를 바라며 간구하게 한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시 63:6, 106:45-46).”

 

이를 기억함으로 우린 다급할 때 교회로 달려가 주 앞에 엎드린다.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우린 기다린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이에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주께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하여 오늘 시편은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132:7).” 그리고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10-12).”

 

2. 약속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2-5).”

 

곧 우린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밤잠을 설치며 공부하거나 일한다. 새벽 일찍 눈을 뜨고 교회로 나온다. 우리로 이 약속을 붙들게 하심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3).” 이와 같은 약속이 이루어져 오늘 우리는 구원의 자녀가 되었다. 히여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곧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왜 오늘 우리의 생활이 성결해야 하는가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하여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모두가 약속 때문이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그러므로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이에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132:13-14).” 우리로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다.

 

3. 순종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시 132:16-17).”

 

우리는 이를 즐거이 외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로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곧 우리는 찬송하는 사람들이다. 입만 열면 하나님을 노래하는 자들이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그러므로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곧 우리의 순종은 주를 기억하고 그의 약속을 믿음으로 가능하다. 이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즉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132:18).” 궁극적인 하나님의 섭리다.

 

<순종으로 달라지는 열 가지 사실들>

 

첫째,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진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24).” 둘째, 우리로 돌이켜 회개하여 존귀한 자로 삼으신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셋째, 더 이상 인생에서 갈증으로 시달리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넷째, 이제는 악을 악으로 간주한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다섯째, 자기 부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여섯째,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일곱째, 예배가 달라진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여덟째, 나의 약점이나 장애, 결핍이나 노여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7-9).”

 

아홉째, 사랑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열 번째, 남은 날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달라진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3-24).”

 

이에 오늘 시편은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132:7).” 이는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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