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예레미야 27:5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7:4-6
선민을 위해 바벨론을 드셨다. B. C. 594년을 전후한 시대적인 배경으로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로 기록되었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1).” 이어 3절에서 보면 시드기야 제 4년의 일이었음을 알린다.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3).” 이어지는 28장에서도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렘 28:1).”로 이 기록이 역사적인 것임을 알게 한다.
유다 뿐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시고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한시적으로 바벨론의 지배를 허락하셨고 이에 열방은 항거하지 말 것을 명령하시고 있다. 그러나 이때 바벨론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 어쩌면 이들을 가려내려 이와 같은 기간을 두신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시라는 것이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이를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도 높이 들어 사용하신다. 그리하여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곧 하나님의 백성이 죄로 순종하지 않을 때 그 죄로 저를 다스리게도 하시는 일이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시 94:12-13).
이를 볼 때 우리에게 어떤 고난은 C. S. 루이스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성경도 이르시기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징계의 목적은 하나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2-13).” 우리로 바른 길 가게 하시려고,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곧 오늘의 어떤 어려움 그와 같은 역경은 우리에게 소리친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7-18).”
그러니 어제에도 이어 우리의 신앙이 실제인 것과 일상에서 드러나야 하는 행동에 따른 것임을 증거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선은 그의 백성에게 알리신다. 오늘 본문 1절,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곧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전말을 알기를 원하신다. 노아의 홍수 때도(창 6:13-3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도(18:17-21) 하나님은 당시 노아에게 또한 아브라함에게 그 사실을 알리셨다.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어찌 될 것인가를 어린 사무엘에게 먼저 알게 하신 것처럼(삼하 3:10-14) 이스라엘이 애굽에 종살이 하였다가 4대만에 나올 수 있다는 것도(창 15:13-16),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의 자녀가 알지 못함을 원치 않으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이는 오늘에도 같아서 우리로 누구인지, 이를 맡은 청지기임을, 오늘 본문 5절,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하고 선언하신다. 곧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 9:8).” 결국 말씀은 이루어지고 이를 받들어 믿음으로 받지 못하면 제외된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이 간단한 진리가 그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상상력으로 더하거나 과장하여 외계인을 만들고 마술과 심령술로 온갖 사술에 빠지면서도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분명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그럼에도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그 이후의 일은 오늘의 현상과 같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22-24).”
이 끔찍한 지옥 같은, ‘겐 힌놈’의 현장에서 우리는 산다. 살면서 이를 곁에서 보고 들으면서도 깨닫는 게 없다면…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25)” 가끔은 영화에서 그 소재로 혹은 우리 일상에서 이웃의 일로 그와 같은 현장을 목격한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3-24).” 너무 그럴 듯하다. 그런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책을 읽을 때 우리도 종종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흔들린다. 그런 가운데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것이 너무 가까이 우리 곁에 속해 있다. 점점 더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연기로 그 소재는 잔악하고 흉물스럽고 노골적이다. 이를 공중파 방송을 피해 각개의 채널이 생겨나고 저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과 없는 표현은 브레이크 없는 열차 같이 달려든다. 이에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신 28:47-48).” 보면 어른 부재의 시대이다. ‘꼰대’라 하여 뭐라 이르는 말을 비꼬아 외면한다. 하다못해 부모의 권위도 없고 어른의 자질도 상실한 시절이다.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07:12-14).
오늘 우리의 시대나 수천 년 전 저 유대 땅에서 벌어졌던 일이나 그에 앞에 노아의 때나 소돔의 시대가 어쩜 이렇게도 하나 같은지. 친구는 신앙이 깊어갈수록 두 아들에 대한 걱정도 많아진다. 전에는 그럴 수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인데… 흔히 볼 수 있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즐기는 일에 대하여 마음이 어렵다. 속상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부른다. 그럴 수 있지,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친구는 그와 같은 일로 마음이 아프다. 속이 끓는 것 같아 주께 간구하게 된다. 말씀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심을 아는 고로,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무겁다가도 두 아이가 주를 경외할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딸애가 이제 갓 목사 안수를 받은 청년을 사귀하면서 나는 감사의 눈물이 고였다. 뚱하니 공부하느라 힘에 지쳐 있기는 하나 아들이 어김없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는 감사하다. 나의 어린 날이 어떠했든지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그 어떤 축복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인생은 속절없고 시간은 광음 같이 지나가지만 주를 앎으로 이 모든 게 주의 주권 아래 있는 것으로 감사하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시는 이 말씀으로 내 것을 삼는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오히려 두려울 게 없다. 오늘 다윗의 기도이고 찬송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1).
그럴 수 있다는 것,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그때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4).
이 놀라운 은총을 받은 나로서는 감사와 찬송이 넘칠 뿐이다. 이에,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5-6).
시대가 아무리 어떻다 해도 노아의 때와 다를 게 없다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와 같았다면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그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이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0:15).” 두려운 것은 그것이다. 앞서 산 어른들의 말이 ‘꼰대’로 비틀려 우스갯소리로 전락하면서 더는 아무도 나무라 줄 사람이 없다. 어릴 때야 윽박질러 붙들 수나 있었지, 다들 성인이 된 두 아들을 두고 친구는 속수무책이다. 성경을 모를 때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오늘의 상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죄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없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7-8).
어제 통화하면서 친구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감사는 먼 데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잠잠히 또 기도하면서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그러므로,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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