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46:28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1
죄에 따른 심판과 무조건적인 은혜가 전해진다. 유다 주변국을 시작으로 바벨론과 애굽에 대한 예언이 이어진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로느고 군대의 위용을 묘사하고, 애굽 군대의 패망을 알린다. 선지자를 통한 예언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따른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애굽을 징벌하시고 바벨론은 후에 로마에 의해 멸망한다. 이에 따른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묘사된다.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27).”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구원하심을 알 수 있다. B. C. 586년에 유다가 멸망한 이후 580년과 570년의 바벨론의 애굽 원정으로 567년에 애굽은 멸망하였다. 그토록 하나님의 선민들이 의지하고 사랑하였던 애굽이다. 결국 세상은 우릴 도울 수 없고 영원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심판은 동시에 구원을 염두에 두신다. 오늘 본문 13, 14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와서 애굽 땅을 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너희는 애굽에 선포하며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굳건히 서서 준비하라 네 사방이 칼에 삼키웠느니라.” 곧 바벨론이 애굽을 칠 일을 두고 알리심은 그곳에 이주한 주의 자녀들이 있어서다. 믹돌과 놉은 애굽을 대표하는 도시다. 다바네스는 요새로 그 성읍에 유다에서 건너온 선민들이 살고 있었다.
주목하게 되는 것이 “너희는 굳건히 서서 준비하라.” 하시는 부분이다. 애굽의 사방, 블레셋과 베니게와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유다 등을 “네 사방이 칼에 삼키웠느니라.” 하고 알리신다. 칼은 바벨론을 사용하심이겠다. 살고자 하여 피할 길을 찾아간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가히 짐작도 할 수 없이 크고 넓고 깊으시다. 이를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우리 죄가 아무리 깊고 크고 끔찍하게 높다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보다 더 넓고 길고 높고 깊으심을, 그 사랑의 충만하심으로 우리에게 충만한 것을 오늘 본문에서 그 역사의 한 장면에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 46:28).”
처음 사람 아담 때도, 노아의 홍수 때도,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그 지경일 때 더는 사랑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9-10).”
죄를 돌이켜 회개한다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로 그 사랑,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따른 사랑을 알게 하시고자,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7-18).”
이는 베드로가 세 번을 모른다 부정하고 외면했던 이유이면서 동시에 세 번, 그 완전한 수의 의미로 무궁하심을 알게 한다. 하여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움만이 영원하심을. 우리가 의지하고 찾으려 한 애굽은 그렇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일 뿐임을. 오늘 본문 16절, “그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지며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포악한 칼을 피하여 우리 민족에게로,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하도다.” 그가, 곧 하나님이 넘어지게 하셨다. 즉 파멸시키신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진다.’ 그러나 다시 ‘이르되 일어나라.’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곧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8).”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스스로 뭔가 한다고 하는 것 같으나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저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의 자녀다. 내 죄가 아무리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이에 사탄은 수시로 우릴 고발한다. 하나 하나님이 사탄을 꾸짖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더러운 죄를 ‘아름다운 옷’ 즉 그리스도의 보혈로 흠이 없는 것으로 갈아입히신다.
우리 죄가 아무리 그슬린 나무 같이 숯검정 같다 해도, 자 우리가 주 앞에 섰다. 사탄도 그 옆에 섰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우리의 허물을 들추어 그슬린 나무 같음을 사탄이 고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을 책망하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2).” 우리의 모습이 더러운 옷을 입은 것 같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3).”
이때 하나님이 우릴 나무라시고 정죄하실 수 있으나,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4).” 오히려 우리 죄를 없던 것으로 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신다. 더하여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5).” 이 놀라운 반전은 예정된 사실이다.
이를 요한은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즉 감히 말하건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이다. 만일 우리 죄를 정죄하신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부정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오늘 유다 민족은 다들 멸망하여 더는 구제할 방도가 없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떠나 애굽에 의지한 저들을 하나님은 이내 돌아보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성취해 가신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 이는 주의 언약이요 말씀이셨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4).” 그러므로 우린 이를 붙들고 주 앞에 선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 32:18).”
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이에,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 118:8-9)
그러므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3:3-5).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릴 붙드신다. 오늘도 나로 주 앞에 나오게 하셨다. 고로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4).” 오늘 본문이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하신다. 이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아니 믿는 자들에게는 이를 알 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말씀으로, 말씀에 의하여서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그리하여 오늘 시편을 읊조린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46:1).
이를 삶에서 살아서 체험하며 사는 삶은 복되다. 스스로 자신에게 입증되는 말씀을 가지고 사는 자는 귀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여,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33:20).
어느 사이 한 세대는 가고 다른 세대는 이르러 양가 부모는 노인이 되어 누구는 앞서고 다음은 뒤를 따를 것인데, 어제 같이들 예배드리고 식사를 대접하고 차를 한 잔씩 하면서 인생의 속절없음 앞에 그 순리를 생각하였다. 다들 마음은 아직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는 몸이 따라주질 못하고… 그 쓸쓸함에 대하여 우리는 순응을 배워야 할 것이다. 곧 이를 것인데, 하면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할까?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2-3).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5).
이 아침, 말씀 앞에서 나는 문득 늙어가는 것을 사랑한다. 이는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3).”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0).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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