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예레미야 47:6-7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시편 47:6-7
선민을 둘러싼 모든 변방의 국가들을 향한 예언의 말씀이다. 블레셋에 대한 예언을 시작으로 바로가 가사를 칠 때 곧 느고가 갈그미스로 북상할 때를 일컫는다. 블레셋과 유다를 관통하여 팔레스타인 지중해 연안으로까지 전쟁이 들불처럼 번져간다. 그 사이에 유다가 있다. 요시아 왕이 느고 군대를 상대로 므깃도에서 전투를 벌이던 때는 B. C. 609년의 일이다.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
보면 성경의 언어는 매우 문학적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2).” 이 한 구절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정국을 표현한다. 또한 문답 형식을 빌려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5-6).”
짧은 오늘 본문에서 인류의 역사와 만물의 처지가 사람의 손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노래한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우리로 이를 알게 하시려고 성경은 묘사와 진술, 서사와 갈등을 가감 없이 표현하신다. 결국,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시 89:11).
이를 인정하는 것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저마다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각기 제 갈 길로 가나 궁극적으로 서로 막다른 길에서 마주할 때에 알아볼 것이다. 이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4-8).”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물리치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슥 2:8-9).” 곧 나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과 같다! 이 놀라운 사랑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는 데서 놀란다. 곧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3-6).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감탄하며 놀란다. 이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서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이에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이에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26:8).” 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여호와여 이 비방은 주의 원수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비방한 것이로소이다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89:50-52).
어제는 모처럼 몇몇 누구에게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물었다. 이런저런 핑계가 내 안에 있어 저들을 피해왔다. 그것이 안타까움이든지 어떤 속상함이었든지… 누가 말하길, 나를 잊은 줄 알았다! 하고 말할 때 마음이 쓸리는 듯 따가웠다. 누군 결국 수술을 미루고 사는 동안 더 살아보고 막판에 더는 못 견딜 때 하자고 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누군 또 하필 얼마 전에 넘어져서 고관절이 으스러져 큰 수술을 하고 회복중이라 했다. 솔직히 괜히 연락했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그것이 또 마음을 찔렀다. 정작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정에 대하여 이를 같이 안다는 일은 속상함을 각오해야 한다. 그럴 때면 주의 이름 외에 달리 누구에게 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저들도 자신의 사정을 알아 혼자서 그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구원은 은혜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영혼의 구원은 물론 육신의 질병이나 마음의 어려움을 아시는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다. 오늘 본문 5절을 머금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다시 소리 내어 읽으며 물어본다.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어제 저들과의 통화 때문일까? 어떤 통증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다. 극단적인 슬픔에서 스스로를 자학하는 일은 빈번하다. 이방인들은 더해서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28).” 요즘은 흔히 모양을 내느라 문신을 새기고는 하지만 그와 같은 고통을 더하면서까지 저들은 죽은 자를 기리거나 기억하고자 하는 일을 살갗을 뜯어 몸에 새겼다. 일종의 우상숭배와 같다. 자기 몸을 베는 일….
저녁이 다 돼, 병원을 옮겼다며 누가 전화를 했다. 저가 길게 내뱉는 소리에 담배를 피우는가 물었다. 꽤 됐다며 덤덤히 말했다. 저는 꼽추여서 폐가 기형적인 위치라 다른 사람보다 위험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뭐라 해도 개의치 않는 것은, 모두가 저마다 자기 몸을 베며 살아간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있는데, 한때 저는 기타로 찬양을 치며 인도하던 이였다. 시를 쓰고 문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저는 오히려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고 언젠가 말했었다. 목사가 되기 전, 그러니까 나 역시 돌이키기 전에는 누구보다 애연가로 살았던 터라 뭐라 나무라고 저지하고 싶은데 듣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인천 숭의동 어디 병원이라는데, 가보고 싶은 마음과 갈 수 없는 상황이 뒤섞여 마음만 어려웠다. 저들과 통화하고 이런저런 사정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은 만큼 괜히 연락했단 생각도 들어 이중으로 어려웠다. 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오늘을 살면서 내가 아는 은혜는 천 가지가 넘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는 또 내 몸을 베듯 아파한다. 누구를 향한 애통해 하는 마음이다. 이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그러니 신기한 게, 아이가 퇴근하면서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오후에 문득 ‘무슨 일 있나?’ 하고 들어차는 마음은 알 길이 없다. 성가시고 귀찮아서 안 받을 때도 있으면서 정작 연락이 없으면 걱정이 되는…. 기껏 궁금하여 모처럼 먼저 연락을 하고는 저들이 처한 사정으로 내내 마음이 어려운 일…. 나는 이 마음의 조화를 이해할 길이 없다. 모 약사협회 누가 개인방송을 하려 하는데 그 대상이 장애인들의 약물 오남용을 테마로 해서 저들에게 필요한 약물을 알게 하고, 이를 확장하여 약을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라 하는 연락을 듣고 그리 먼저 연락을 해본 것이다. 기획과 방식이 짜이면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하여 그리 된 것이다.
여하튼 우린 기어이 주의 은혜로 산다.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오늘 6절,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비록 정세에 따른 저들끼리의 전쟁 같으나 그 일은 주의 주권에 따른 것이다. 주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하물며 사람의 일에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0-31).”
나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주 앞에 앉아 주의 이름을 부른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47:2).
이를 인정하는 일이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하여,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6-7).
우리의 가장 큰 맡은 바 소임은 주를 찬송하는 것으로, 찬송하게 하시려고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나는 가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혹은 이 길이 맞나? 하고 가는 길을 의심할 때 저 말씀을 되새긴다. 그리함은,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8-9).
우리의 모든 주권이 주의 것임을 인정할 때, 나의 어려운 마음도 주의 뜻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러므로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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