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전봉석 2023. 6. 24. 04:37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예레미야 51:5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0-12

 

 

 

이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이 선민들의 회복과 찬양을 끌어낸다. 메대 왕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다. 실로 이방의 허무한 우상과 권능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그 섭리 가운데 있으시다. 곧 우리의 가시적인 현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작용하신다.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 51:56).”

 

이러한 말씀이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은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46).” 이런저런 소문과 소문, 난리와 난리가 이어지지만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이에 우리가 요동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겐 영적인 안목이 있어서이다. 코로나가 풀리고 온갖 이단들이 거리로 나와 포교한다. 무슨 기 치료를 운운하며 명상과 함께 우주의 기운이 어떻고 하는 소리에서부터 통일교나 여타 이상한 이들이 둘셋 짝이어 다가오며 전단지를 나눠준다. 이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5).” 저들이 득세함으로 교회가 부화뇌동하여 같은 대열에 서서 가두 노방전도를 한다. 그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 2:21-22).”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심을 우린 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어떤 문제에 함몰되면 이교도의 설전에 쉬 넘어간다. 그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벨이든지 아세라든지, 우주의 기운으로든지 무엇이면 어떠할까? 결국 이러한 판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다.

 

하여 바울은 일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러므로 죽으나 사나 주의 것임을,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부디 이에 굳건하여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살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여러 갈등과 어려움이 없을 수 없는 일이겠으나 행여 그것으로,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6-7).

 

이와 같은 말씀으로 우린 바로 선다. 아이가 오늘 있을 2차 회계사시험을 앞두고 통화하여 기도를 부탁하였다. 나는 전화로 저를 요셉과 같이 오바댜냐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비록 안 믿는 사회에서 이교도적인 문화가 주된 상황에서 온전히 주가 사용하여 주시기를. 이를 위하여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남은 모든 과정도 주의 손에 의탁하며. 나는 아이를 권면하고 응원하되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하기를 바라였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함께 하였는지, 그러는 동안 하나님이 어찌 인도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어떠했었는지를.

 

삶에서 삶으로 우린 확신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이런저런 어려움과 불만 고통이 없는 세월이 어디 있었던가? 그리하시는 까닭은 우리로 주를 바라게, 주만 바랄 수 있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이 놀라운 확신으로 우린 주어진 일에 충실할 따름이다. 때론,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7:1-2).

 

말씀이 내 삶과 아무 연관이 없다면 그저 활자에 지나지 않을 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여 나는 의도적으로 연관 있는 말씀을 찾아 인용하고 옮겨 적으며 나의 사담(私談)은 줄이려한다. 그럼에도 나의 일상에 그 소소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목격하고 증거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더러 일상은 늘 그날이 그날인 것 같으나 성령은 고요한 중에 우릴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고 계심을 안다.

 

문득 길을 걷다 누구 생각에 불현듯 저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당면한 현실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삶이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나는 아주 깊이 이 모든 은총이 나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닌 것에 안도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의미를 아는 데까지, “많은 물 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렘 51:13).” 저들의 끝이 우리로 경각심을 갖게 한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사는 동안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가운데 물질에 대하여 경계하시는 바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더욱이 세무사나 회계사는 돈을 관리하는 직업으로 여차하면 그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일이어서, 그리하여 더욱 주 앞에서 정직하고 청결하기를. 하여 이 시대에 모든 권력으로 돈으로 흥하거나 망할 때 온전히 그 하찮음은 주께 있어 먼지와 같을 뿐인 것을.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하여,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8:2).

 

이와 같은 확신이 우릴 치우지 않게 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 33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그렇듯 모든 권세를 다 누리며 천세만세 누릴 줄 알았는데, 곧 모든 때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데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호 13:3).” 이에 예수님도 이르시되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말씀이 우리로 두렵게 할 때, 오늘 바벨론의 멸망과 열방의 심판이 그저 역사 속에 지나간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 게 된다. 고로 우리는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렘 51:46).” 말씀 앞에 가만히 좌정하여 주를 바라게 된다. 고로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50).”

 

오늘의 은혜는 내일을 소망하고 영생을 사모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여러 우여곡절이 우리로 주를 더욱 가까이 하게 한다. 이는 우리로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 51:45).” 하심을.

 

이를 알기에 죄 앞에서 철저히 괴로워한다. 오늘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이를 통회하며 자복하고 있다. 곧 우리 인생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51:1-2).

 

이 죄가 우리로 얼마나 황폐하게 하고 그 영혼을 갈급하게 하는지,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3).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길 위에 늘 서서 후회한다. 왜 후회는 늘 늦게 오는 것일까? 우리 의지로는 죄를 어찌 다스릴 수가 없어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

 

이게 노력하고 학습하여 나아질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단련하고 연마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성결함이 아니다. 이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4).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다. 그리하여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6).

 

하여 우리가 절규하는 것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0-13).

 

이를 위하여,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7).

 

죄는 우리 스스로 벗어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어서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5-16).”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우린 어디로도, 어떻게도 죄를 숨길 수 없다. 이를 위하여는 주께 아뢰어 고함으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곧,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