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전봉석 2023. 6. 26. 04:41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야애가 1:22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53:1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예레미야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다섯 편의 기도로 비탄함과 소망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다섯 편의 애가는 하나님의 심판에 따른 고통과 절망을 그리는 듯하나 동시에 여호와에 대한 절대 신앙을 투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닥친 상황에서 슬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이를 목격하고 당해낸 사람으로서 여전히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민족을 한탄스러워한다.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면서 선민을 돌아봐 줄 것을 호소한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처절한 탄식과 슬픔은 난무하다. 오늘 1절,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전에 누리던 영화와 오늘의 비참한 현실을 대비시키면서 ‘슬프다’는 표현에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본래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일진대 이방인들에 의한 파괴는 충격적이며 극도의 불안을 압축한다.

 

이를 이사야의 언성으로 들으면,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사 13:9-10).” 극한 슬픔의 고통 가운데서 예수를 만나고 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성도다. 이는 어쩌면 죄로 인한 것이나 은혜의 길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겠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습 1:14-16).”

 

우리 안에 슬픔, 어떤 두려움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 영혼은 그것을 해결할 자가 그리스도 예수뿐이신 것을,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여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공교롭게도 이를 깨닫고 마음으로 받아 인정할 수 있는 자리가 슬픔의 자리였다.

 

“슬프다 이 성이여!” 하는 탄식으로 시작되는 예레미야의 애가는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를 직감하게 한다. 곧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이 모든 일를 주관하시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그러므로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75:5-7).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은 하나님이시다. 15년의 필리핀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연타로 어려움을 겪다 지금은 병까지 얻어 고통당하는 동생과 통화하고 마음이 슬펐다. 한껏 부풀듯 시험 끝내고 주일에 예배에 나올 줄 알았던 아이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어 나는 시무룩하였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은 복잡하였고 그럴 때면 입을 굳게 닫고 침잠하는 나의 고질적인 감김이 스스로를 옥죄었다. 우리로서는 하나님 외에 위로를 얻을 수 없음을. 무엇으로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실은 이 심령의 가난함으로 우린 고통당한다. 슬픔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늘 아픈 아내의 약함으로 눈물로 호소하는 어느 친구의 기도에서나 몸의 고통으로 탄식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아무개의 탄식을 나는 듣는다. 저들의 그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어려워 주가 주실 안식만을 바란다. 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우리의 사는 날이 고단할 따름이라. 억지웃음으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는 듯하다. 자, 우린 무엇을 붙들고 씨름하며 조금은 나은 삶을 찾고 있는지?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7-28).”

 

예레미야는 운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애 1:2).” 이 탄식을 누가 알아주리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여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우리는 직면할 수 있는 정직한 자신으로 주 앞에 설 수 있다. 아직 내 안에 할 말이 많은 까닭은 여전한 자신의 의로 고통 중에 거하는 것이다. 결국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애 1:9).”

 

당면한 어려운 현실이 우리로 주께로 향하게 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이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12).” 이로써 주를 마주하는 일, 나는 내게 공황이 오던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는 이리저리 몰려서 결국은 신대원을 들어갔다. 앞서는 한 번 대학원을 떨어지고 혹시나 하여 다른 생각도 하였다. 그때 나는 여전히 술 담배를 끊지 못하면서도 새벽예배를 그렇게 기를 쓰고 나갔다. 또 하나는 자식들 앞에서 더는 권위도 부끄러움도 없이 가정예배를 드리며 이실직고를 하듯 나의 나 되었던 날들을 고백하였다.

 

이듬해에 신대원에 붙으면서 모든 게 이제 다 잘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오히려 물질적으로는 막혀 파산이 찾아왔고, 육신의 질병으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위경련으로 시달려야 했다. 결국 아들을 맡을 여력이 안 돼 필리핀 동생에게로 보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그간의 문제를 직면하면서… 순종하여 신대원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게 오히려 발목을 잡힌 듯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울면서 학교로 갔다. 젊은 교수 중에는 나보다 나이어린 이도 있었다. 동기들과는 열다섯 살 이상의 차이가 났다. 하루하루가 억지로 끌려가는 듯 나는 울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 결정타는 아들이었다. 필리핀에서 댕기열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 살아났다는 말을 전해들으면서 헉, 하고 공황발작이 왔다. 숨을 쉴 수 없어 가슴을 쥐어뜯고 밤을 새우다 정신과로 갔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나는 고통을 싫어하지만 사랑한다.

 

아프면 억, 소리 나고 주 앞에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살려주세요,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뿐 다른 말은 의미없다. 오늘 애가는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14).”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비로소 할 수 있는 일,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90:13).

 

나는 고통 중에 있는 동생으로 마음이 어려웠고 장마철이라 내 몸도 어려운 가운데,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렘 42:12).” 주의 말씀을 붙든다. 이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애 1:18).” 오늘 말씀이 우리로 주 앞에 불러 앉히는 것,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20).” 더는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서, 나의 신대원 3년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기적이고 은총뿐이다. 목회자과정 대학원에서 설교 한 번, 세미나 발표 한 번 안 하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 물론 교수와 동기들의 이해와 사랑의 결실이겠으나 나아가 하나님은 기필코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기까지 포기하지 않으심이다.

 

새삼 나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돌아보며 주의 은혜에 감격하게 된다.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애 1:22).”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은 하나다. 오직 주를 바라고 의뢰하는 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나름 한다고 하고, 산다고 살면서 열심을 다해 살았다. 그런들 세상이 주는 것은 항상 후회뿐, 그 이유를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이를 시인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53:1).

 

그게 나였음을 인정한다. 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찾는다. 할 때,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9:9-10).

 

이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53:2-3).

 

이에 예레미야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하는 고백을 안고 살았건만, 우린 우리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시인은 답답하여,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3:4).

 

하고 절규한다. 예레미야는 운다. “슬프다 이 성이여…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애 1:1, 22).” 하고 주께 아뢸 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6-7).

 

하면,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53: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