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전봉석 2023. 7. 9. 04:59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에스겔 9:8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편 65:10

 

 

 

심판을 결행하는 자가 선민을 도륙한다. 여호와께서 저들로 살상 무기를 들고 나가도록 명령하셨다. 이에 일곱 명의 집행자가 실행한다. 이들 가운데 6인은 손에 살상 무기를 들었다. 한 명은 가는 베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다. 이들은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이다.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이가 선민 가운데 구원할 의인과 멸망시킬 악인을 구별하여 의인의 이마에 표를 한다. 이마에 인을 받지 못한 자들은 결코 긍휼하심을 받을 수 없다. 이마에 표를 받지 못한 자들의 시체가 성전 뜰을 채우며 더럽힌다.

 

이와 같은 현상을 목격하며 선지자 예레미야가 탄원한다.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8).”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선민의 범죄를 지적하고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 자들을 서술한다. 서기관 복장을 입은 집행자 천사가 하나님께 명령받은 대로 준행하였음을 보도한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이와 같은 날을 생각하며 최후 심판을 묵상하며 두려움이 인다. 이를 바울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이는 다 때가 있고 이를 놓치면 더는 기회가 없어 예수님은 일찍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결국 그때에 가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 경고하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부터 말세의 때이다. 이를 감지하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자가 복되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이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이를 듣고 돌이킬 수 있는 자가 드물다. 믿음은 주권자의 선물이다. 오늘 내 안에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이에 우리는 이 말씀을 행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우리로 이 말씀이 들려지고 두려워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으로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 104:28-30).

 

우리의 죄를 결코 허용하실 수 없다. 이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와 같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것을 알 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1-2).

 

이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우리로 그리 행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징계하신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때론 어렵고 지칠 때 그것으로 주의 은총을 바란다. 은혜는 이율배반적이고 역설적인 것 같다. 하여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 6:9).” 또한 우리의 표는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가만히 생각하면 나로 궁지로 몰아 두 손 들고 항복하게 하신 이가 나를 죄악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었다. 순순히 돌이켜 순종하였으면 좋았겠으나 그땐 그게 그렇게 불가능하였다. 적당할 때에는 모른다. 오히려 태만하고 안일하여진다. 의로운 소수로 살아간다는 일은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고난 가운데에서였다. 더러는 믿는 자가 당하는 어려움을 두고 설왕설래 말이 많다. 자신들과 견주어 이 땅에서의 것으로 평가하기 일쑤다. 일생을 주의 일을 감당하다 그 노년의 시간이 말이 아니게 어려운 이가 있다. 이를 보며 안 믿는 일가는 저의 믿음의 날들을 폄하한다. 흔히 덕이 되지 않는다고도 수군거린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때에 노아 같은 삶이라니! 누구라도 조롱하고 우스갯소릴 던질만하다. 그러나 저들은 곧 닥칠 심판의 때를 알지 못했다. 비가 퍼붓고 창수가 터져 방주가 물 위에 뜰 때에야 닫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게 해줄 것을 간청한다. 하나 더는 긍휼하심이 없다.

 

여섯 집행자가 살육한다. 앞서 선지자의 먹 그릇을 찬 이가 저들 사이를 앞서가며 어떤 이의 이마에 표시를 한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만 2천 명씩 모두 14만 4천 명의 이마에 인을 친다. 열두 지파에 12를 두 번 곱하면 신구약 성도를 모두 지칭한다. 여기서 천은 무한성의 함의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끝까지 지킨 의인의 총수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이 수는 함축적인 의미의 개념이지 숫자적인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표가 아닌 다른 표를 받은 자들도 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3:16-17).” 짐승의 인은 곧 적그리스도로 심판의 날에 한쪽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가 있고 ‘다른 인’을 가진 짐승의 표를 이마나 오른 손에 받은 자들도 있다.

 

이를 예수님은 양과 염소로 설명하셨는데,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2-33).”

 

같은 무리로 섞여 가족을 이루고 또는 이웃으로 살았으나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는 일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 17:34-35).” 이 황당하고 섬뜩한 일이 곧 있을 가까운 이야기다. 그때에 곧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9-50).” 그때는 후회도 통회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에스겔서의 환상을 상상하다 계시록의 묵시를 생각하면 감사하게 되는 안도와 경계하게 되는 두려움이 동시에 생긴다. 주일학교 때 나는 이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도 저가 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살아나셨다는 일도, 심지어 성경을 알면 알수록 믿기지 않는 말들로 가득하여 두려웠다. 믿음으로 천국에 가고 믿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데, 어린나이에 천국은 믿어지지 않으면서 영원이라는 시간의 지옥은 두려웠던 것이다. 그때 지혜로웠던 나의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은 심각한 나의 고민에 미소 지으며 해주었던 말씀이 영원한 형벌과 그 지옥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구원받은 자라고 하였다. 정작 지옥에 갈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만 바란다고 하였다. 이후 나는 어렴풋이 나에게 믿음 주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오늘 6절,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여기서 심판을 명하실 때에 하나님의 단호하심과 결연하심을 본다. 주의 심판은 그의 성전을 정화를 암시한다.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7).” 곧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이는 우리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데 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우리의 성전은 외형적인 건물이 다가 아니다. 요즘은 여느 교회들이 예배처소를 빌려 주일에 예배드릴 때만 쓴다. 상대적으로 여느 교회는 건물을 호화롭게 짓느라 막대한 헌금을 투입한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왕상 9:9).”

 

정작 주를 경외함은 무뎌지고 대형화되고 시스템화 되어져 가는 교회를 염려한다. 그러할 때 오늘 분문에서의 환상과 같이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애 2:7).” 이 얼마나 비참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무슨 이름 있고 전통 있는 큰 교회를 다니면 뭐나 되는 것 같아서 심지어 목사를 초빙할 때도 어느 교회 출신이라 하면 한 점 먹고 들어간다고도 하니….

 

나는 개인적으로 개척교회가 점점 사라지는 우리 현실을 우려한다. 사람들이 성도라 하면서 대형교회로만 몰려 적당히 친절한 타인으로 지내는 것에 비애감이 든다. 하긴 현대사회란 개인의 사생활이 우선적으로 존중되는 것이 보편적이라, 개척교회 몇 안 되는 교인들과 서로 교제하고 서로의 생활을 터놓고 지내는 일은 이제 점점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친구는 아내 따라 큰 교회를 다니며 성가대도 하고 남전도회도 참석하는데, 그게 다다. 서로 굳이 더는 다가서지도 다가오는 것도 꺼려한다. 주일 한 날의 친절로 족한 것이다.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겔 9:11).”

 

이에,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하여 오늘 시편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65:1-2).

 

이는,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4).

 

그때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0).

 

그리하여,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11-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