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전봉석 2023. 8. 8. 04:55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39:29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6

 

 

 

‘마곡’과 ‘곡’에 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예언을 다른 각도에서 전망한다. 곡의 완전한 멸망을 선언하는 데 있어 38장 마지막 부분(17-23)에서는 심판이 자연적인 요소들을 동원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밝힌 반면 오늘은 곡이 완전 무장 해제당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즉, 그들의 무기가 그들에게서 떠나(3), 7년 동안 이스라엘의 연료로 사용되고(9-10), 그들의 시체가 7개월 동안이나 장사되고(11-16), 마지막에 새들과 짐승들이 전사자들의 시체와 피를 먹는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17-20)을 알린다. 곡의 완전한 멸망(1-8), 멸망 후의 상황(9-20),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21-29)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38장에 이어 점층적으로 내용을 심화시키기고 있다. 정리하면 38장 17절에서 오늘 39장 8절에 이어서 ‘곡의 파멸’과 ‘심판 당시의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이어 오늘 9-10절, 파멸의 황폐함과 심판 이후의 상황을 전하고, 11-16절, 곡이 장사됨과 심판 받은 자의 생명력 상실을 알게 한다. 17-20절, 새와 짐승들이 곡의 시체를 먹음으로 심판 받은 자의 최종적 종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21-24절, 심판이 끝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한다. 25-29절, 비로소 이스라엘의 회복과 심판 이후의 미래적인 전망을 예언한다.

 

아울러 미래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함께 이루어짐을 예시한다. 하나님은 종말에 세상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시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하게 구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곡-세상세력은 철저하게 파멸되어 매장지를 찾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분명히 드러내신다. 앞서 모든 악의 악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하심을 드러낸다.

 

세상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저들은 연합하여 하나님이 대적하였다. 그 마곡 연합군이 이스라엘의 산 위에 세워졌었다. 그들을 무장 해제시키신다. 연합한 자들이 산 위에 엎드러져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된다.

 

하나님은 이들의 연합을 멸망시키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셨다. 저들은 본래 악을 위해 존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 그들의 악함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여호와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였다. 후에 이스라엘의 승리를 통하여 이방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신다. 곧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참 하나님이 되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은 그러한 여정을 통해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되는데 그 믿음이 더 굳건하여진다.

 

마치 다니엘과 그 친구들과 같이 죽을지언정,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곧 자신들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믿음으로까지 성장하는,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또는 욥의 경우와 같이 저가 처한 상황에 극한 상황에 치닫고 저의 친구들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판에 반박하면서 오히려 굳건하여서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 15).” 이 놀라운 신앙 고백은 모든 믿음의 선친들이 오히려 역경과 어려움을 지나 주의 살아계심 앞에 승복하는 것을 본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그리하여,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7:4).

 

다른 무엇을 얻기보다 열방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온 세계에 나타내신다. 마곡의 심판과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이후 역사에 대해 더욱 새롭게 한다. 오늘 본문은 이를 확신하며 7년 동안 곡의 병기를 태우는 장면을 묘사하고(9-10), 곡이 죽고 장사될 것을 묘사하고(11-16), 마곡과 연합세력들이 처절하게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자신들의 시체를 먹힐 것이라는 사실(17-20)로 알게 한다. 우리 위에 굴림하려던 우리의 산에서 저들은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여기서 피를 흘리는 것과 정결함이 관계있다(16-18).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을 받아 더럽혀진 땅을 오직 피 흘림으로 정결케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실 수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살 때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묘사하셨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진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죄는 구원을 전제로 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그리하시고 축복을 언약하신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즉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문을 닫기도 하셨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그리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이 복음의 은혜는 부어진 것이어서, 저들로 보았으나 보지 못하고, 들었으나 듣지 못하는 아둔함이 처하게 하셨다.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3-4).”

 

저들 이스라엘은 앞서도 이후에도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그러니까 저들은 시내산의 언약을 저버렸고, 앞서 출애굽 때 나온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았는데, 그 이유는 보았는데 보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신 29:2).” 그럼에도 저들은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민 13:2).” 본 것을 보지 못했다.

 

결국 광야 40년이 지나고 출애굽 당시 20세 이하 살아남은 자들 또한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1-12).” 왜냐하면 그 마음이 완고하여져서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 3:14).” 이는 오늘 우리의 현실로써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이와 같은 구속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어제 공항에서 몽골선교를 떠나기 전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수속을 다 마치고 지금 줄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잘 다녀오고, 유익하고 복된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랐다. 저는 뜬금없이 어제 그제는 말씀을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났어. 같이 둘러앉아 말씀을 읽는데 울먹거리면서 목소리가 떨어지질 않아서 이상했어. 나는 저의 말에 울컥, 하며 감사하였고 저는 스스럼없이 기도를 부탁하였다. 잠시나마 전화로 통화하며 기도하는데 주의 살아계심이 이미 충분히 우리 삶에 보였고 들렸고 우리로 느낄 수 있게 하셨는데 우리가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였다. 간절히 저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빌고 예수 이름으로 올렸다. 기도 중에 놀라운 사실 하나는, 저의 입에서 중간 중간에 아멘, 아멘, 하는 참여와 고백이 함께 드려졌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 감격스럽고 감사하기만 한 마음으로 충만하여졌다.

 

하나님은 우리로 부드럽게 하신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34).” 우리의 죽은 줄 알았던 해골 같던 마른 뼈를 으깨고 부숴 지옥 문 앞에서 흩으셨다.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시 141:7)."

 

그리하여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결국 하나님은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마 4:1-11). 하나님께서는 마곡을 격퇴하고 성도들을 보호하신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이에 우리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나는 이 놀라운 사실을 내 곁의 친구들에게서 목격한다. 서로 이야기하다 누가 먼저랄 없이 자신의 죄를 토설하고 이를 두고 주께 회개함으로 더하시는 은혜가 감격스러워 운다. 우는 저를 앞에 두고 덩달아 감격하여 운다. 나 역시 ‘죄인 중에 괴수’라 하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에서,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17-20).”

 

오늘 말씀에서도 마곡과 곡의 세력이 최후에는 주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회복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로 ‘마곡’에서 살며 ‘곡의 세력들’과 어울려 선을 선으로 보지 못하고 악을 악으로 보지 못하고 살던 것을 돌이켜 오직 주만을 바라게 하심인데,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9:29).” 이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95:1-3).

 

놀라운 사실 하나는 나는 하는 게 없어 송구할 따름인데, 그저 저들의 사연을 듣고 마음에 두어 주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어느 날 저들은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어제는 함께 어울리던 ‘마곡’에서의 나의 의지와 사랑의 대상들이 증발하였던 사실로 묵상글이 우울하였다면 오늘은 그런 가운데서도 수십 년을 같이 지내면서 서로 전혀 그럴 사이가 아닐 줄 알았는데 저가 내게, 내가 저에게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으로 감격이 되어 주께 찬송하게 하였다. 서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로 찬송하였다. 나는 이 두 사건이 내 임의로 된 것이 아님을 인정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6-8).

 

더는 예전의 우리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저가 몽골 선교를 다녀와 어떤 새로운 모습이 되어 있을지 기대한다. 공항에서의 전화,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어떤 떨림과 회개를 고백하고 기도를 부탁하는… 공항의 분주한 안내방송과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섞인 가운데서도 저도 그랬을 테지만 나는 귀에 전화를 꾹 눌러 붙이고 소리를 모으려고 다른 손으로 입을 가리고 또박또박 기도를 했다. 저는 그런 와중에 눈을 감고 아멘, 아멘 하면서 (처음으로 듣는) 저의 동참에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하였다. 그렇게 우린,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