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전봉석 2023. 8. 13. 04:30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44:27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5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시고, 성전 봉헌에 대한 규례를 밝힌 후이다. 오늘은 성전의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들에 대해 언급한다. 성전에 대해 묘사한 후 예배의 신성한 기준을 묘사한다. 이에 따른 선지자는 성전 제사장의 의무를 설명한다(44장). 성전 제사장을 위한 땅의 할당을 묘사한 후(45:1-12) 여호와께 드려질 제물에 관하여 알게 한다(45:13-46:24).

 

성전 출입에 대한 내용(1-8), 레위인들에 대한 내용(9-14), 제사장들에 대한 규례(15-31)로 이어졌다.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 매우 거룩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내용과 비교 된다. 레위기와 비슷한 역사적 정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출애굽기의 성막 건립에 대한 명령(출 35:10)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출 32:1-10) 이후에 주어졌다.

 

에스겔의 성전 환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포로시기에 주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성막이나 성전의 생활이 주로 속죄와 관련된 삶이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속죄의 삶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제사의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제사장들은 백성의 십일조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받게 되는데, 백성의 중보자답게 각종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성전 사용의 지배적 원리가 거룩함으로 제사장은 온전하게 헌신해야 한다. 성전 예배에 집중하면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성전에 출입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동쪽 문이 닫힌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1-3), 이방인들에 대한 규칙을 기술하였다(4-9).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 대한 직무를 묘사하고 있다(10-14). 성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1-3).

 

성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주로 사람이 해야 하는 일들이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 구별된 사람들이었다. 성전의 일들이 표면적으로 사람의 일이나 이면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성전의 출입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백성들은 성전을 성결하게 보존해야 한다(4-10). 그러나 성전의 책임을 맡은 레위인들이 성전을 더럽힘으로 언약을 위반하였다(7-8, 10). 그 결과 직분이 격하되어, 성전 문을 지키고 번제에 쓰이는 희생 제물을 잡는 책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직분을 회복시키시지만, 자기 일에 불충한 자는 작은 일을 맡기신다. 반대로,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본문에서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이 성전의 성결을 지켰다는 사실과 앞으로 성전에서 있을 제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될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15-31). 이처럼 실제와 예언은 같이 한다. 사독 제사장들의 구체적인 일들에 관해 열거하고(15-27), 사독 제사장들의 기업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한다(28-31). 사독의 계열은 레위 사람의 제한된 집단인 제사장 계열의 한 지파로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다윗 왕이 이르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니 그들이 왕 앞에 이른지라(왕상 1:32).” 오늘 본문에 이르러도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충성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체적으로 ‘배도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사독과 그의 제사장들은 신실하게 순종을 잃지 않았다.

 

제사장은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17-22, 25-27). 의복에 있어 구별되어야 하고(17-19), 그들은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어야 하며 가는 베관을 머리에 쓰고 베바지를 입어야 한다(출 28:39-43). 왜냐하면 양털 옷을 입을 경우 민첩하게 행동할 수 없고, 땀을 흘리게 되어 불결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제사장들은 바깥뜰에 있는 백성 앞에 나갈 때, 베옷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럼으로 제사 의식의 거룩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백성들이 옷에 접촉하여 거룩하게 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머리털을 면도로 밀어도 안 되고 길게 길러도 안 된다(20). 머리털을 미는 해위는 이미 율법에서 창조자를 모독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금지되었다(레 19:27, 21:5). 나실인의 머리를 기르는 행위는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로서 거룩함과 정결함을 유지하는 데 부적당하기에 허락되지 않았다(레 10:6). 또한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21). 제사장들은 영혼의 정결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금주를 실천해야 한다.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 수 없다.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수 있다(22).

 

제사장의 거룩은 여호와의 거룩과 연결되므로(레 21:4, 15), 결혼에 있어서도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 죽은 시체에 접촉해서도 안 된다(25-27). 만약 친척의 죽음으로 더럽혀질 경우에는 7일의 기간이 지나야 정결케 되고(민 19:11-19), 안뜰과 성소로 들어가려면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제사장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차이를 백성들에게 교육해야 한다(23-24). 그들은 스스로 거룩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예배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레 10:11, 말 2:7), 송사를 공의롭게 판단해야 한다(신 17:8-13, 19:17). 그럴 때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출 19:5)로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다. 제사장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다(28-31).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등의 제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열매와 첫 밀가루 그리고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 등 거룩한 것으로 살아간다(레 10:12-15).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먹을 수 없다.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에 합당한 ‘하나님의 몫’으로 살아간다.

 

이상의 내용을 살피면서 나의 직분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실은 어제 가벼운 추돌사고가 있었다. 신호대기 중에 뒤에서 받쳤다.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에는 생각보다 뒷 범퍼를 비롯해 차의 파손이 심했다. 차량 운전자는 100% 자기 과실을 인정하고 서로 현장 사진을 찍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저는 가까운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었다. 차를 도로 갓길로 빼고 서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수련회 준비로 다른 생각을 하다 그렇게 됐다는 저의 사과에 그의 피로한 얼굴이 얹어졌다. 점심께 뒷목과 등짝,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생겼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나는 저에게 병원에를 좀 가야 하겠다고 알렸다. 대인대물 사건번호가 부여되었고, 더는 저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의사는 말했다. 일련의 사건에서 서로는 그랬을까? 서로가 괜히 폐를 끼칠까 하여 조심하게 되었다.

 

문득 제사장의 직분을 읽다 나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이 내 안에서 묻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우린 모두 주께 맡겨진 바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을 것이다. 먼저는 교회의 축복 곧 개개의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성전의 문을 열고 닫는 데 결정적인 행사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명심하게 된다.

 

철저하게 구별된 삶,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곧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하였다는 사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0-21).”

 

곧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우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가는 삶이었다. 그러므로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고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생활이 바뀌어 나타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신분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일이라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우리 일상은 늘 실전이다. 시간이 자면서 울렁거리고 등짝이 아픈 것 같은데 평소에도 부실한 몸이라 그런 것인지, 사고 때문인지. 그것으로 병원을 가거나 하면 누구에게 폐가 될까 해서… 차 수리도 어쩔까, 하고 서비스센터로 가서 나는 어떻게 그냥 써볼까 하고 쭈뼛거리자, 가해차량이세요? 하고 정비소 실장이란 사람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나흘 차를 맡겨야 할 텐데, 당장 장모님 모시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혼자 생각이 많자, 저는 답답하다는 듯 보험사에서 다 알아서 하니까, 그 기간도 렌트해서 며칠 쓰시라, 하고 저 혼자 일처리를 하였다. 주일 지나고 저들 휴가 지나서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그냥 사용하다 맡기기로 하였다. 나의 우유부단함에 아내는 핀잔을 주었다.

 

우린 늘 생의 최전방에서 주의 사역을 맡은 자로 산다. 혼자 들어앉아 거룩한 행세를 하는 일은 쉽다. 그러다 이번 일처럼 어떤 일에 당사자가 되고, 하필 또 그 상대가 어디 부목사로 수련회 준비로 피로하였다는 말에 마음이 계속 쓰였다. 어지간하면 그냥 없던 일로 해주었으면 하는데, 뒤 범퍼에 트렁크문짝까지 교체해야 한다니까, 어디가 아픈 게 미안할 지경이다. 우리의 바뀐 신분이 우리의 마음 자세도 바꾼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6-7).”

 

굳이 안 그래도 된다는데 나는 저에게 문자를 해서 그런저런 상황을 알리고 미안하다고 했고 저는 오히려 죄송하다며 또 다시 사과가 돌아왔다. 사과와 사과는 감사의 열매로 맺히는 것일까? 저의 이런저런 말에 나는 고맙습니다, 하였고 저는 또 나의 무슨 말에 감사합니다 하였다. 아내는 내가 종일 마음 쓰는 것에 상대를 안타까워하다 나의 주변머리없는 것을 타박하였다. 이상하지? 저의 명함에서 어느 교회 부목사 하는 직함을 보면서부터 앞서 뭘 하든지 괜히 미안한 것이다. 하여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119:36-38).

 

이어 오늘 시편에서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00:1-2).

 

모든 상황 속에서 그 일이 어찌 일어나고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사 40:9).” 그러기 위해서도 몸과 마음, 말씀과 이상이 일심으로 나의 삶을 주도하게 하시기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3).

 

곧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할 때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