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전봉석 2023. 8. 15. 05:09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에스겔 46:18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시편 102:28
 
 
 
새로운 성전의 모습을 밝혔다(40-42장). 새로운 예배를 언급하였고(43-46장), 새로운 땅에 관해 묘사한다(47-48장). 오늘은 제사에 있어 왕의 지도력을 말하고(1-15), 왕의 재산에 대해 언급하고(16-18), 제사장의 부엌에 대하여 묘사한다(19-24).
 
40장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은 미래에 있을 제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모세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고, 그 삶의 형식은 새 언약 하에서 생생하게 의미를 갖는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33).” 하신 후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4).” 하심을 바울의 해설로 이해하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그러므로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은 서로 불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 선상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여러 제사들이 언급되고 있다. 레위기의 제사와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된다.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은 레위기에서는 먼저 제사의 순서를 명확히 언급하고 절기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오늘 말씀은 절기와 제사가 혼합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저자의 의도가 제사나 절기 자체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보다 제사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절기와 제사가 혼합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왕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제사와 절기에 있어서의 군주의 역할(1-15)과 안식일과 월삭 그리고 번제와 감사제에서 왕의 역할을 들여다보게 한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지도자와 함께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안식일과 월삭에 대한 구체적인 규례를 밝히고(1-7), 왕과 백성들이 제사와 절기에 참여하는 내용을 알린다(8-15).
 
왕이 성전을 통행할 때(1-3, 8-10) 선지자는 안식일과 월삭에 출입하는 통행 규칙을 묘사하면서 왕의 위치를 설명한다. 제사장은 왕을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려야 한다(2). 여기서 에스겔은 왕이 아무리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할지라도 성전을 통행하는 것은 백성들과 동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밝힌다(8-10).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독특한 지위를 가지지만, 동시에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속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왕은 제사에 참여하는 데도 백성과 같이(11-15) 흠 없는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13). 율법에 의하면 왕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든 절기와 월삭에 제물을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왕 역시 어린 양의 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는 하나님의 속죄하심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왕의 기업에 있어(16-18), 백성과의 관계를 규명해준다. 사회적 측면을 강조함으로 왕의 기업에 관한 규례에서 힘으로 백성의 것을 빼앗을 수 없었다. 기업을 자손에게 물려줄 때의 원칙을 제시하고(16), 기업을 종에게 물려줄 경우의 규례를 밝힌다(17). 왕이 백성의 기업을 탈취할 수 없음을 규례로 정했다(18). 왕의 재산이나 기업은 하나님께 종속된 것이다. 왕이 자신의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한 것은 왕의 개인적인 축재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 허락된 재산권을 왕에게도 허용한 것뿐이다. 백성들의 기업을 강탈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언급에서도 이를 분명히 하였다. 왕은 모든 기업을 하나님의 소유로 알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럴 때 선한 청지기로서 칭찬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
 
제사장들의 부엌에 대한 모습도 중요하게 다룬다(19-24). 본 단락에서 천사의 인도에 대한 공식적인 어구(19)와 함께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전 단락(16-18)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40장부터 기술되어 왔던 성전에 관계된 내용들의 최종 결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제사장의 북향 방에 인도되는 장면을 묘사하고(19-20), 바깥 뜰로 인도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은 영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부엌은 소위 백성들의 부엌이다. 성전에는 예배자들이 잘 수 있는 방(40:17)과 부엌들, 그리고 제사장의 옷을 둘 수 있는 곳(42:14) 등이 준비되어 있다. 결국 성전 안에 이러한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영혼뿐만이 아니라, 일상이 그 안에서 같이 공존하여 강건하게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바울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는 곧 ‘영적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성전이 일상의 공간이고,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으로 우리는 범사에 경건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는 외적인 자세에서도 경건을 유지해야 한다. 예배자들의 통행에 대한 제한은 성전 안에서의 충돌과 혼잡함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예배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예배해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4-26).”
 
그러므로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제물의 종류는 동물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곡물이나 기름 등을 포함하였다.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재능은 모두 우리의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 21:1-4).” 나의 전부가 드려지는가, 일부가 드려지는가 하는 게 따른 문제인 것 같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 옛 것을 교훈으로 새 것을 바로 하는 데 주의하게 된다. 이에 따른 성경의 가르침도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잠 23:10).” 흔히 요즘 전통을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고 ‘꼰대’라 하여 어른들의 방식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옛 것을 존중하지 않고 새 것을 바로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말씀으로 중심이 된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 14:2).” 또한 우리가 드리는 찬송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문화를 이루고 문화는 유행처럼 돌고 돌아서 각 시대를 어지럽히지만,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시 99:4).
 
더욱이 지도자는 진리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지키지 않는 자신은 무엇보다 쉬 상하고 변질한다.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잠 20:28).”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신 19:14).” 함부로 자기 힘으로 남의 것을 차지하는 일은 왕이라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이에,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102:1).
 
이는,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2).
 
우린 어떤 어려움으로 주 앞에 더욱 간절하여진다. 그럴 때 우린 기도한다.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하게 하신다. 기도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정의다. 고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면,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17:6).
 
고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하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여,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6-7).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운 날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하신 말씀으로 새 힘을 얻는다. 이처럼 말씀을 의지하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 하여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2-3).” 이 놀라운 은혜가 기도하게 하시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2-13).
 
때를 알고,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8).
 
이 확실한 언약으로 우리는 산다. 고로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6-7).” 이에,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26-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