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전봉석 2023. 8. 19. 05:3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다니엘 2:47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편 106:14-15

 

 

 

다니엘의 열방들에 대한 예언이 서술되고 있다(2:1-7:28). 시작은 느부갓네살의 꿈이었고 꿈 꾼 자가 그 꿈을 알지 못하며 해석을 요구할 때 다니엘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께 묻고 해석을 구한다. 하나님은 각 시대에 대한 계획을 밝히시고 있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에게 발탁되는 과정에서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을 드러낸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2:17-18).”

 

하여 저들에게 그 꿈을 알게 하시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주를 찬미한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19-20).” 먼저 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21-22).” 친밀하게 하나님을 알게 된다. 이는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23).”

 

우리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우리로 알게 하신다는 것, 그 일은 믿음의 모든 선조들에게도 동일하셨음을,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는 것으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한다.

 

느부갓네살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던 해이다. 때는 다니엘과 다른 유다인들이 포로로 잡혀온 직후였다.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빼앗겼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감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신앙적으로는 회의하고 갈등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꿈 해석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승리하리라는 격려와 위로를 던진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다니엘만이 온전히 꿈을 해석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부여받은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인정받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의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지방을 관활하였다.

 

세상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영적이다. 우린 일상을 산다고 하나 실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다. 당대 최고의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들 곧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 사람들조차 이를 알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과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필연적으로 영적인 존재를 의지한다. 애굽에서 바로가 술객의 힘을 빌리거나 그가 또한 꿈을 꾸고 이를 해석할 때 요셉에게 주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알게 하신 것도 우린 잘 안다.

 

요한 계시록은 세상의 역사가 모두 영적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계 20:1-10). 우린 오늘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게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를 알고 인정할 때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우린 스스로를 무장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4-17).” 저 하나하나의 의미는 실제 우리 삶에서 묵상과 기도로 무장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8).”

 

우리의 기도와 간구, 오늘 다니엘과 친구들의 기도와 간구처럼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행위’로 우리 영혼과 삶의 질은 달라진다. 이는 오늘 시편의 한 대목에서 멈칫,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과 마주할 수 있었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 106:14-15).

 

나는 이 구절에서 여러 생각이 동시에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요구와 간구가 때론 물질적이고 육신의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사는 동안 그러는 중에도 영혼을 먼저 생각하고 주께 바라고 아뢸 수 있는 것이 영적인 능력이 아닐까? 하는. 가령 다윗이 죄를 범하여 밧세바를 범하고 회개할 때 저의 관심은 오로지 영혼의 문제였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51:2-3).

 

이를 인정함으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0-11).

 

저가 두려워하였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죄의 실체가 아니라 그 죄로 인하여 우리 영혼이 얼마나 상한 심령으로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되는지를 알게 하신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일 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7).

 

이와 같은 것, 우리가 묵상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마치 또 무슨 마법사를 꿈꾸며 신통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어리석은 자리가 아니었다. 영적능력이라 하면 열에 아홉은 엉뚱한 신비를 꿈꾸고 신통하고 용한, 점술가를 찾듯이 목사나 '그런 교회'를 찾아다기도 한다. 내가 아는 몇몇 목사나 교회는 어쩌다 그리로 흘러갔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아예 예배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목사를 추종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은밀하고 내밀하게 마치 몇몇만 아는 아주 기이한 비화밀교와 같은 교회도 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나는 신비를 인정한다. 이를 은밀하게 행해야 할 때도 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2-3).” 그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니엘은 이방나라 왕과 그 방백들에게 드러냈다. 그리고 공개하며 왕의 은밀한 것으로 천하를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였다. 그러자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단 2:47).” 저로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였고 그 놀라우신 주의 주권을 알리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것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의 대화다(17-18). 그리고 ‘다니엘의 기도’ 내용은 은밀하지 않았다. 마치 대표기도를 하듯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19-22).”

 

하나님은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이시다. 성경을 그래서 계시라 한다. 하나님은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곧 어두운 데 있는 것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신다. 대표적인 이단들을 봐도 저들 교주가 행하는 일이란 게 은밀하게 진행되어 그런 가운데서 음란과 탐욕이 주저할 것 없이 행하여지는 것을 본다.

 

전에 누가 ‘어느 성경공부’에서 누구의 어떤 자녀가 상관도 없는 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들었다며 그 일을 행한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지금은 영매가 필요한 시절이 아니다. 우리가 은혜의 때라 하는 것은 우리 누구나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바울이나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오늘의 나나, 우린 모두 각 사람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이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6:11-12).”

 

다시 말해 우리의 영적인 삶은 예수님과 변화산에 머물며 몇몇 소수의 특권자들만 누리는 황홀함으로가 아니다. 오히려 이를 바라는 제자를 이끌고 예수께서 나오신 곳은, 하필 귀신 들린 자와 온갖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있는 저잣거리 같은 일상으로였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마 17:14-15).” 이는 금방 성스럽고 황홀한 경험을 하였던 변화산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서의 사명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이 곧 영성의 현장이다. 오늘도 우린 지겨운 사람과 일과 예기치 못한 일들로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는 일이 영적이다. 우리가 주를 바라는 것, 주를 의뢰하고 묵묵히 주어진 생을 다하는 것. 저 피조물들, 자연은 우리에게 곧 여름이 가고 가을 올 것을 알리고 있다. 저 나무와 풀과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며 그 무던함으로 주어진 생을 다하는 것이 경이롭다. 아주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 같으나,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른다. 바로 그 주어진 한 생을 다하는 동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다는 것(단 2:18-22).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하여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1).”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면서 감히 우리 안의 영혼을 일을 안다고 자부하는 순간 사달이 나는 것이다. 이단에 빠지거나 사이비교리에 현혹되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4).” 이 끔찍하고 서글픈, 두렵고 떨리는.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장래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는 사실(단 2:25-30). 다니엘이 말하고 있는 은밀한 일은 역사와 미래의 주관자인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28).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55:10-11).

 

그런 현실 속에서,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106:1-2).

 

이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신앙을 유지하는 일,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4-5).

 

부디 그러하여서, 행여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15).

 

이 끔찍한 지경에서 살지 않기를.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구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4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