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전봉석 2023. 8. 20. 05:01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7-18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시 107:43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주는 사건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2:46-47).”

 

그러나 저의 고백은 놀람의 표현이었지 온전한 신앙의 실상은 아니었다. 오늘 본문은 이를 증명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운다. 모든 관리와 백성들로 이를 숭배하게 한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방나라로 알게 한다. 다들 느브갓네살 왕의 금 산상 앞에 절할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신앙으로 이에 맞섰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와 같은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거였다. 당장 죽을 수 있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약하다.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 없고 다짐한다고 증명될 수 없다. 먼저 느부갓네살 왕의 고백은 공허한 게 되었다. 온전한 회개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하나님은 이를 경계하셨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사 29:13-14).”

 

결국은 다시 육신대로 사는 우리 안의 느부갓네살은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이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여기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 오늘 보여주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과 그 견고한 믿음이 이를 나타낸다. 이를 위해 바울은 그토록 자신을 연단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어제는 내 특유의 우유부단함에 큰 사건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같은 또래의 사모, 저는 우리 교회 여전도사로 사역하기도 하였는데… 지난주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심정지가 와서 뇌사 상태로 있다 엊그제 주의 부르심을 받고 돌아갔다. 슬하에 우리 아이들과 또래인 서른, 스물여덟의 아이 둘이 있었고 신랑은 선교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주가 부르시면 우리 생명이란 그처럼 속수무책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집과 교회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저 알아본다고 나갔던 아내와 딸애가 어디 아파트 전세를 계약하고, 그 인근의 교회 위치를 살피고 왔다. 하나님은 때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이끄신다. ‘이대로 그냥 있어도 될까?’ 하면서도 나의 생각하기는 행동하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일사천리로 일을 몰아가셨다.

 

처음 글방에서 교회, 처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도 나에게는 대책이 없었다. 다른 동료들과 같이 나는 한 번도 어디서 전도사로 사역한 적도 없었다. 늘 나의 생각하기는 주저하게 할 뿐인데, 그때도 이 일이 어찌된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교회 등록을 하고 글방으로 오던 아이들 몇과 그야말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10여 년이 넘게 안주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인천으로 옮겨오게 하실 때도 순식간의 일이었고, 마치 모든 게 다 준비되었던 것처럼 지금 이곳에 정착하게 된 거였다. 어느새 햇수로 6, 7년의 시간 동안 어쩌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정체된 듯 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영적침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해도, 그리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부쩍 생각이 많았는데 하나님은 나의 미적거림에 앞서 행동하셨다.

 

어떤 변화, 새로운 도전에 늘 주저하는 나로서는 어제 그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움직이셨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 안의 우상은 태만이다. 그 자리에 안주하여 답보상태인 것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강하다. 이는 마치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 32:23).” 하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히는 형국과 같다. 어제 두 사건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 되었다. 이를 성경으로 읽으면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알면서도 늘 내 안에 갇혀 나만 평안하기를 바라는 나의 고질적인 안주함은 나태함으로, 나태함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성장을 멈춘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방자함으로 굳어지게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의 갑작스런 부고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뭉개고 있던 이사 문제와 교회 이전이 맞물려 진행되었다. 어쩌면 나는 또 생각 좀 해보고, 하는 말과 기도해보고 하는 심정으로 발람의 자세를 견지하려 하였다. 그런 가운데 교회 위치는 잠시 결정을 미루었다. 그야말로 기도가 필요하다. 며칠 주께 묻고 다음 주 초에 직접 가보기로 하였다. 뜻하지 않은 이러한 변화 앞에 나의 심장은 또 저 혼자 요동을 치며 불안을 유발하고 있었다.

 

나는 ‘잘 될까?’를 두고 생각이 많은 게 아니다. 특히 교회를 이루어가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이미 하실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여지를 남겨두심은 모세를 불러 일으켜 세우시기까지, 저의 앞에 놓인 ‘불붙은 가시떨기’와 같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그 때에 …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2-3, 5).” 내 발의 신, 내가 의지하고 안주하려 하는 어떤 나의 판단이나 기준을 무력화시키신다. 그리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내 안에 이 마음이 전부가 되게 하실 것이다. 앞서 신대원을 하게 되는 과정과 그 기간은 차치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데 있어 하나님은 한 번도 뒷짐 지고 뒤로 물러나 계신 적이 없다. 어,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때론 나의 생각과 생활을 뒤집어놓으셨다. 고로 나는 늘 내가 한 게 없음을, 하나님이 하실 것을,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알고 있던 것과 같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곧 교회를 이루고 주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 있어 하나님은 다 예비하셨을 것이고, 설령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주가 맡으셨다. 나는 주의 것이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더는 주저할 수 없게 하나님은 앞서 늘 손을 이끄셨다. 앞서 누구의 부고 소식이 나로 마음을 어렵게 하더니, 아내는 내 결정을 묻는 듯 하면서도 저 역시 ‘어떤 결정’에 따라 그리 행하였을 뿐이다. 같이 점심을 먹고 딸애와 같이 보러간다고 할 때도 이렇게 결정이 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럼에도 어쨌든 우린 주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19-20).”

 

이제 내 앞에 놓인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과 불안의 강도와 상관없이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나에게 늘 덤덤한 마음은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나는 다만 하나님의 뜻이면 따라야 한다. 안 따르고 버티다 얼마나 먼 길을 돌아 허송세월을 보내었는지 잘 안다. 이방나라 같은 현실에서 온갖 신상(神像)이 난무한 것에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행할 뿐이다.’ 오늘 본문이 새삼 나의 주저함에 일갈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시 119:173).

 

어쨌든 돈이 문제인데… 그래서 예배 처소를 어찌할까 하고 마음이 어렵다가, 그것도 뭐 정 어려우면 우선은 거실에서 예배드리면 될 문제고… 순간 문제로 안고 있던 문제가 문제 아닌 게 되는 순간에 평안히 잠들 수 있었다. 주가 하신다는 것은 주가 하시게 맡겨드리는 일이고, 이 일은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겠으나,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8:10-11).

 

에워싸고 있는 여러 염려와 불안과 생각은 사사로웠다. 왜냐하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됐다 그럼. 주가 행하신다. 나의 속수무책이 때론 억지스러운 복종보다 낫다. 더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순간까지 하나님은 몰아가신다. 일부러 그러신다. 그래도 할래? 이 길을 갈래? 하고 내 뒤를 따르는 자가 묻는다. 뒤돌아보지 않고 주만 바라는 일,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신다. 나의 생에서 하나님은 그러하셨고 나는 궁지에 몰려 더는 옴짝달싹 못할 때에야 세미한 음성이 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어떤 확신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말씀이 가장 든든하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2-3).”

 

늘 읽고 되새길 때마다 힘을 더하시는 말씀으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여,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이를 이루시기까지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을 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7:1).

 

나는 이제 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8-9).

 

고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께 감사하고 주를 바라는 것,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스 3:11, 애 3:22-23).” 이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 44:23).” 그렇지!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내가 미적거려도 소용없고, 조급해하며 불안해해도 소용없다.

 

그리하여,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0-21).

 

그러할 때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1).

 

나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으로 감사와 찬송뿐이었으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18:6).

 

이에,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107:42-4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