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전봉석 2023. 8. 22. 04:47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다니엘 5:1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시편 109:4, 2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이어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최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상의 나라, 느부갓네살 왕 당대에도 신상을 세워 다니엘과 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졌다 구원을 입었다. 느부갓네살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고, 다니엘은 이 꿈의 해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었다(4:19-27). 일련의 사건을 통해 여호와께서 유일한 하나님이심이 분명히 알게 하셨다.

 

이에 불구하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다. 저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곁에서 경험하였다. 아비 느부갓네살은 그래도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나 저는 왕이 되자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우롱하고 거부하였다. 저의 불신앙적인 태도에 하나님은 기이한 현상을 보이신다. 즐거워하는 자리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썼다. 모두가 그 글자의 뜻을 해석하지 못할 때 다니엘이 이를 해석하였다. 그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과의 일을 상기시킨다(17-21). 그리고 글자를 해석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엄중히 벌하신다.

 

앞서 꿈의 형태로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났는데 오늘은 잔치 중에 모두가 있는 데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전의 거룩한 기물들로 우상들을 위하며 잔치를 벌였던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의 최후는 허망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뜻, 그 놀라우신 섭리와 비밀한 일을 사람의 지혜로는 깨우칠 수 없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바벨론의 끝, 세상 끝에서 사람들의 쾌락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최후가 어떤지 묵상하게 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이를 알 때 우리 영혼은 무장하게 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2).” 사람들은 그런 우릴 보며 허탈해한다.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 산다. 그러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곧 오늘의 말씀을 읽고 일련의 상황을 두고 주의 뜻을, 그의 은밀하신 비밀을 알고자 하여 가만히 주를 바란다. 가만히 주를 바란다는 것은 결코 무능함이 아니다. 도리어 숨은 능력이다. 우린 가만히 있는 자 같으나 깨어있다. 주의 때를 주의하며 정신을 차린다. 앞서 생각이 널뛰지 못하게 단속한다. 나의 판단이나 생각을 끌어내지 않는다. 우리가 가만히 주를 바란다는 것은 오히려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일이다(살전 5:6-8).

 

말씀 앞에서 나의 자세를 고쳐 앉는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주께 맡긴다. 주의 뜻을 살피며 주를 인정한다. 10월에 이사가 결정되고 나는 교회를 옮기는 문제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생각 같으면 이사 갈 곳 주변의 부동산을 돌며 몫이 좋은 곳(?)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여의치 못한 돈은 창업자금 대출이니, 다른 방도를 찾아 궁리를 하였을 것이다. 실은 그런 마음이 앞섰고 그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는 교회다. 하나님의 성전이다. 내가 나서 일을 도모하고 발품을 팔아 해결해야 할 문제가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을 주셨다. 다시 말하지만 주의 일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오늘의 나’로 두셨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 행하실 것을 우선하는 일이다. 나는 자주 이것을 잊는다. 남들 말이나 아내의 성화는 알겠다. 하지만 나는 순간,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하였다. 그리고 대뜸 ‘하나님이 하시라.’ 하고 나의 짐을 주께 맡기었다. 우리가 군포에서 인천으로 올 때도 이와 똑같았다. 여러 상황이그러했는데, 내가 하려고 하다 보면 자주 아내와 부딪쳤다. 그러다 둘 사이가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그만! 하고, ‘주가 알아서 하시라.’ 하고 맡겼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게 순조로웠다. 예비 된 곳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늘 알면서도 생각은 마음을 충동하고 마음은 요동치며 별의 별 궁리를 다한다. 어제도 아내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이러다 또 싸우겠다 싶어서 그만! 하고 멈추었다. ‘주가 알아서 하신다.’ 하고 확신을 가졌다.

 

여러 궁리가 따르면 편법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또는 누군가에게 구걸하듯 아쉬운 소릴 하게 된다. 설령 그렇게 해서 좋은 곳으로 교회를 옮겼다 한들? 물질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너무 출혈이 따르게 돼 있다. 문득 드는 감사 하나가 ‘나의 불안’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어려서부터 잘 아는 곳이다 보니 선뜻 운전을 하고 나서서 찾아다닐 엄두가 나질 않았다. 두려움이 앞섰고 이는 긴장으로 이어져 아니나 다를까 속이 볶여 탈이 났다.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깨달았다. 나의 깨달음은 누추하나,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 지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상이다. 오늘 날은 자신이 최고의 신(神)으로 이보다 무서운 우상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오늘 벨사살의 작태와 다를 게 없는 신앙도 흔하다. 보면 다들 믿는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모든 결정과 판단은 자신이 여러 정보를 취합해서 결정한다. 실제 누군가는 이사 가는 그곳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냈다. 어떤 자리가 좋은 것 같다며 해당 링크를 보내기도 했다. 누구는 은행에서 보다 싼 이자로 대출 받을 방도도 알려주었다. 교회로 등록하지 않고 무슨 사업장으로 했을 때, 뭐가 어떻게 유리한지를 알아보고 설명하려 하기도 했다. 글쎄….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꺄우뚱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 115:6-8).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9).

 

아내를 비롯하여 주변의 몇몇이 여러 방도를 제시할 때, 나는 우선 나의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한다. 교회가 돈에 여유가 없는 것, 내가 선뜻 나서서 여러 방도를 찾아볼 수 없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점, 곧 남들은 다 한심스러워하는 그것으로 주를 신뢰한다. ‘주가 행하실 것이다.’ 나는 나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남을 인정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늘 나로 우선 멈춤! 그리고 주의 뜻을 살피게 하는 것은 나의 약함으로였다. 그리하여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하여 나는 벨사살과 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다. 저는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높이고 자신은 죽었다. 이 간소한 내용 가운데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다. 벨사살은 벨사살스럽게 끝났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0-21).”

 

우리의 번민은 주를 바라게 한다. 주를 인정하고 바라게 하시려고 여러 어려운 여건도 조성하신다. 그러할 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리할 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더욱이 교회를 두고 다양한 편법이나 비루한 손벌림으로 욕되게 할 수 없다. 그리 결정을 내리고 ‘기도할 뿐이라.’ 성령이 하실 것이다. 오늘도 시편이 가늠좌가 되어 과녁을 바로 보게 한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109:4, 21).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의 인자하심이, 그러므로 나는 기도할 뿐이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그러므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7, 9).” 이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나로 나의 연약함을 사랑하게 하심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2, 26).

 

그리하여,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