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단 7:18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시 111:5
사자굴로 인해 다니엘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6:28-29).” 그 일로 만방에 하나님을 알리었다.
오늘은 다니엘이 직접 꿈을 꾸고 진술한다.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7:1).” 이전의 꿈들과 본장의 꿈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다. 오늘 꿈은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2장에서 보여준 네 나라에 대한 계시와 연결된다.
2장의 네 나라가 모두 파멸 당한다는 것과 같이 오늘 네 짐승은 난폭하고 잔인하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7:3).” 2장과 7장 모두 멸망을 알린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2:44).” 오늘 7장 또한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26).”
앞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 ‘네 나라의 파멸’과 오늘 다니엘이 꾼 꿈 네 짐승에 것은 모두 심판자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7:13-14).”
오늘 꾼 꿈의 네 짐승은 사자와 독수리,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4)”, 다음은 곰,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5)”, 다음은 표범,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6).” 등을 통하여 세상 역사의 흐름과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세계 역사의 변화를 예언한 것이다. 네 짐승은 앞으로 세계를 주도할 네 제국을 의미했다. 이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또한 예수 재림으로 인하여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실 것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막강한 나라들이 메시야의 재림으로 완전히 패망하고 새로운 평화가 임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께 대적하는 세상 권세들은 종종 큰물로 상징됐다.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사 17:12).”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네 짐승들이 바다에서 나왔다.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단 7:2-3).” 네 짐승의 공통점은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을 가졌다. 일반적인 동물과 달리 매우 괴이하다. 네 번째 짐승이 이전의 짐승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7).” 특히 여기서 뿔은 상당한 권세를 의미한다. 그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방해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보는 부분은 넷째 짐승과 성도의 싸움이 진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17-18).” 넷째 짐승의 주된 임무는 성도를 이기는 것이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21).” 넷째 짐승은 두려움을 준다. “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19).” 두려움을 보이는 대상은 성도이다. 성도들이 넷째 짐승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곧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오직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의 중보적 신원으로만 가능하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승리하신 이가 우릴 위해 기도하신다. 주 예수의 중보만이 우리로 ‘넷째 짐승’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일련의 사태로 나는 마음이 어렵고 답답했다. 화가 또 슬픔이 밀려들기도 했다. 단지 동생의 일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참 악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악의적으로 아이와 아이엄마는 병원진단을 허위로 발급 받고, 없던 일을 사실처럼 진술하였다.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나 검찰 심지어 재판정도 모두 아이의 허술한 고소에 아이엄마의 악의적인 호소에 귀를 기울이었다. 저들은 많은 돈을 쓰며 로펌을 샀고, 고용된 변호사들은 나름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사건을 사실화했다. 아이의 진술이 두 번 일관되면 혐의가 있고 세 번, 네 번 거듭되면 없던 일도 있던 일이 되는 세상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친구도 선생으로서의 사명을 스스로 간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가 그렇다고 우기면 그렇게 되는 게 자명하여, 오죽하니 교탁과 교사 책상을 경계로 선을 그어 아이들의 접근을 차단하였다고 하였다. 간단한 악수나 위로의 포옹은 낭만의 시대에나 있을 이야기이다. 무슨 문제가 생길까 하여 아이 일을 학교로 넘기고, 학교는 기관으로 넘겨, 마치 폭탄 돌리기 하듯 책임을 회피하는 게 상책이라 하였다. 동생은 두 번째 재판에서 기울어진 판세를 읽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더는 대응할 가치도 능력도 없으니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저들은 작정을 하고 아이까지 동원하여 악의적으로 상황을 몰고 갔다. 여기에 경찰이나 검찰은 발 빠르게 힘 있고 유리한 쪽으로 기울었으며, 혹시나 공정할까 하였던 재판도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할 데는 없다. 이러한 문제를 통해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19-21).”
하여,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37).
동생은 체념하였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리해야지… 하며 더는 상대하는 자체를 피하였다. 다만 아이에게 쏟았던 마음과 아이엄마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 사랑으로 돌보았을 뿐인데. 같이 생활하던 아이 둘이 증인으로 섰다가 악의적인 아이와 아이엄마의 주장에 치를 떨었고, 이를 두둔하듯 몰아세우는 검사의 질문에 주눅이 들었다.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넷째 짐승’은 작정을 하고 우리 성도를 공격하게 돼있다. 그러할 때에,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94:13-14).
우리가 붙들 것은 말씀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고 의지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더는 어쩔 것인가? 항소를 하네, 어디에 청원을 하네, 하는 따위로는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다. 그럴 돈도 인맥도 없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였다. 그럼 하나님이 어찌 하실까? 하는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도 된다. 염려와 근심이 들숨과 날숨처럼 긴 한숨으로 이어져나왔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25:1).
지금은 우리가 지킬 것은 믿음뿐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부에 던져지는 상황에서도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에서 동생의 남은 사역을 이어가시든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주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상 16:34).”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2:27-28).
더는 어떤 문제를 두고 씨름할 게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내시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 것을 안다. 모든 결과는 주의 것으로 ‘모든 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다. 결국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03:15-16).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말씀으로만 진실하고 정직하기를.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111:1-2).
우리의 신앙은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다다를 것이다. 이는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97:11, 140:13).
이 놀라운 기다림의 역설은 믿는 자만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방어이고 공격이다. 그러할 때,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111:3).
이와 같은 사실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 현장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들춰보면 문제없는 집이 없고, 저마다의 우환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때에 이를 자신이 싸안고 사는지, 주께 맡기고 기다리는지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5).
이 분명한 사실 앞에서,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7-8).
이를 붙들 때,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9-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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