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전봉석 2023. 8. 23. 05:32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단 6:4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오늘은 다니엘에게 닥친 난데없는 시련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성도의 삶을 설정할 수 있다. 다니엘의 신앙은 삶으로 이어져, 왕이 저를 높이자 총리와 고관들이 시기한다. 그러나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그런 가운데서 억지란 가히 악착스럽다. 저들은 왕을 부추겨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7).”

 

거기에 왕은 어인을 찍는다. 이는 본인도 물릴 수 없다. 다니엘은 꼼짝없이 곤경에 빠졌다. 그곳을 알면서도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저는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사자굴 속에 던져진다.

 

하나님은 왜 저의 곤경을 그대로 두셨을까? 사자굴 속에 던져지기 전에 그 일을 막으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 이외의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조서가 하나님이 두고 보신 이유겠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도, 여호수아에게 하필 수위가 가득한 요단을 건너 가난으로 들어가라 하신 것도, 그 믿음을 보시고자 함이었다.

 

또한 이방나라 왕의 입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소리가 진수를 이룬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16).”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20).”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26-27).”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계에 덮이게 할 것이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는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이를 이루시기 위해 다니엘을, 또한 우리 삶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신다. 그러할 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곧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닥칠지라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그저 묵묵히 주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겠다. 실은 어제 필리핀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둘째 동생의 2차 재판이 있었다. 고발한 아이와 같은 시기에 있던 두 아이가 증인으로 서서 아이의 일방적인 고소에 반론을 제기했다. 저쪽은 그럴 걸 알고 언젠가 따귀를 맞았고, 그 여파로 고막이 손상됐다는 의사소견서도 들고 왔다. 말하는 중에 각목으로 때렸다는 궁색한 변명도 이어졌다. 모두가 저쪽의 치밀한 준비에 혀를 내둘렀다. 상대는 손해배상으로 3억을 요구했다. 때가 악하다고 하나 예나지금이나 사람은 참 모질고 잔인하다.

 

2021년 경기도 의정부시의 의정부호원초등학교의 교사 두 명이 사망했다. 저들은 5학년 담임교사들로 6개월 간격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알려지지 않다, 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23년 8월 7일 MBC 뉴스데스크 단독보도로 알려졌다.

 

김은지 교사는 2017년 3월 첫 근무지인 의정부호원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발령받았다. 학생들이 서로 때리면서 치고받고 싸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김은지 교사는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반려되고, 그해 담임을 내려놓고 음악전담교사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2018년 다시 담임교사가 되었으나 학부모들은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는 식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김은지 교사는 학생들 사이의 폭력과 수업 자체보다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2021년 6월 자살하였다.

 

이영승 교사도 2016년 의정부호원초등학교의 담임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6학년 수업 중 ‘페트병 자르기’를 하다가 한 학생이 손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업 중 일어난 사고라 학교안전공제회에서 2백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학부모는 항의하며 돈을 더 요구했다. 이영승 교사는 휴직을 하고 군 입대를 하였다. 해당 학부모는 학교에 지속적으로 보상을 요구하였고, 학교는 해당 교사에게 책임을 넘겼다. 이영승 교사는 군대에 있으면서도 해당 학부모의 민원과 보상 요구에 시달렸다. 이영승 교사는 2021년에 5학년 담임으로 복귀했다. 이때 학급에서 따돌림 문제가 발생했고, 피해 학생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교사에게 연락하였다. 결국 이영승 교사도 2021년 12월 8일 자살했다. (이상, MBC 뉴스 참조).

 

우리가 믿음 안에 서지 못할 때,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실 때 다시스로 도망갔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여기서 다시 바울의 놀라운 신앙고백을 묵상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나는 동생 일에 화가 난다. 저쪽은 돈으로 로펌을 등에 지고 치밀하게 공격하고 있다. 아이의 말 한 마디로 ‘이상한 법’은 촉법 소년을 운운하며 절대적으로 아이들 편이다. 필리핀에서 함께 생활한 아이들이 모두 이 일을 어이없어 한다. 저들은 들어와 각자의 몫을 다하며 활동한다. 다들 탄원서를 쓰고 심지어 고소인 아이와 함께 생활하였던 두 명의 아이가 증언하는데도 예상치 못한 진단서에 악의적인 거짓말이 이어졌다. 방청석에서 이 모든 상황을 아는 몇몇은 아이의 너무 아무렇지 않은 거짓말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사야는 오늘의 상황을 두고,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5:18).” 하나의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엮고 엮어서 수레를 끌 정도로 여러 겹의 힘을 가진다. 그러할 때 우리의 자세는 오늘 다니엘의 자세에서 배울 수 있다. 이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우리가 온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다. 말씀을 붙들고 주를 바라며 의식하고 사는 삶으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나는 비겁하여 아이들의 영악함에 치를 떨며 더는 가르칠 엄두가 나지 않아 숨었다. 가령 몇몇이 장난하며 내 배를 치고 까불다 나 역시 아이 배를 찌른 모양이다. 누구 앞에서 내가 아이 배를 만졌다고 말했다. 또 어느 아이가 무슨 일로 삐져있어서 달래다 어깨을 다독였던 모양인데, 누구에게 어깨를 더듬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어깨에 손을 댄 것도, 배를 찌른 것도 사실이니 나는 얼마든지 성추행자로 몰릴 거였다. 댔냐? 만졌냐? 하고 물으면 전후사정은 중요하지 않고 그 사실로만 얼마든지 엮을 수 있다. 누구에게 그런 말을 전해 듣고 나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하고 더는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눈을 감는다. 행여 나의 시선이 범죄가 될 수 있다. 행여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손을 대는 것은 물론 쳐다보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다니엘을 둘러싼 세상이나 오늘의 세상이나… 사람들은 앞뒤가 다르다. 내남없이 자기위주로 판단하고 요구한다. 가령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와 허리가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무슨 보상을 바라고 저러나 하는 시선들이라 차라리 내 돈 주고 치료 받고 실비보험을 청구하는 게 낫지…. 세상은 우리로 늘 시험에 들게 한다. 동생의 경우처럼 악랄하게 공격하는 경우도 흔하다. 모두는 각자의 시선으로 판단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9-20).”

 

고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시 119:30-31).

 

우린 주께 바라고 소원을 두고 사는 것일 뿐. 존 번연은 국교회 목사가 아닌데 설교한다는 이유로 12년을 감옥에 갇혔다. 브레이너드는 학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교회 목사 자격을 상실하고 선교사가 되어 인디언 마을로 갔다. 억울하고 분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께 맡김으로 평안을 구하는 일이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55:17-18).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110:2).

 

하여, 우리가 할 일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다른 더 좋은 수를 나는 모른다. 부디 동생의 마음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다니엘과 같이 의연하기를. 주가 아시니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그리할 때,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3).

 

그렇게,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9-10).

 

그렇다면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오늘의 모든 상황은 주의 섭리 가운데 있다. 이를 위하여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하여 주만 바라자. 말씀으로만 의연하자. 하던 대로 무던하게 주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그러하면 주가 돌보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37: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