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단 11: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시 115:11, 15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의 여러 왕조들과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드러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유대 민족 핍박과 그의 비참한 최후가 간략하게 예언되었다. 이는 종말에 있을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의 이야기다.
본문 4절까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과 헬라 제국의 분열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고 있다. 바사에서 세 왕이 일어날 것이다. 초대 왕 고레스 이후 캄비세스(Cambyses, B. C. 529-522), 스멜디스(Smerdis, B. C. 522-521), 다리오 히스타스피스(Darius Hystaspis, B. C. 521-486)를 가리킨다. 그 후 넷째는 헬라를 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왕’에 이어 등장할 네 번째 왕은 곧 에스더서에서 언급하는 아하수에로(Ahasuerus)로 크세르크세스(Xerxes, B. C. 486-465)이다. 그는 즉위 후 부왕 다리오가 실패한 헬라 정복을 이어 막강한 경제, 군사력을 바탕으로 마게도냐를 침공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복 사업은 초기에 성공한 듯 보였으나 살라미스(Salamis) 전투에서 헬라의 알렉산더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후에 플라타이아(Plataea) 전투를 끝으로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주석 호크마 참고).
오늘 한 능력 있는 왕은 로마의 알렉산더 대왕으로 헬라 제국의 발흥과 그의 죽음으로 발생할 분열을 기술하고 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저의 막료였던 4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된 사실로 성취되었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4).” 언급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앞에 하나님의 섭리는 앞서 예언의 말씀으로 계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메시야의 나타남을 ‘한 사람’의 환상을 통하여 서론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10장에 이어 오늘은 그 전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일어난 일이고, 분명하게 앞서 제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 국가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2).” 이처럼 본서의 결론에 이르러 하나님 계시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이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
바사와 헬라의 등장(1-4), 남방 왕과 북방 왕 간의 분쟁(5-19), 북방 왕의 승리와 패배(20-45) 등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떠한 역사 속에서 다루시고 이끄시는가를 앞서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예언은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 이제까지 전개되었던 환상의 성격이 상징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다만 구체적인 왕의 이름보다 왕의 근본적인 성향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 그들 왕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양상이 어떠한가를 드러낸다. 36절,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
오늘 본문에서 ‘서 있다’, ‘일어나다’를 16번이나 사용하고, ‘오다’, ‘공격하다’를 12번, ‘돌아오다’, ‘다시하다’ 등의 표현을 12번 사용하였다. 이러한 동사를 거듭 사용하는 것은 세상이 권력을 뺏고 뺏기는 긴박한 전쟁의 연속임을 알게 한다. 바사 제국의 쇠퇴와 헬라의 등장,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득세를 예언하고, 저가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성전제사를 금지하며 우상을 숭배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러다 저는 비참하게 죽고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은 극심한 환난과 고통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이 세상의 왕은 몰락할 것이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2-3, 10).”
실은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의 말씀은 그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 가운데 성령의 이해와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지나치게 역사적으로 풀어 지식적으로 접근하려하다 말씀의 본질을 잃기 십상이다. 또는 너무 상징적으로 이해하려하다 실제 역사 속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석을 찾아보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세상 나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 앞에 늘 마주하여 서게 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래서 더욱 성경을 중심으로 말씀에 주목하고(엡 6:10-20), 마땅히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의미부여나 이해는 주의하고 또 조심할 필요가 있다. 기준이 흔들리면 좌우정열은 불가능하다. 성경은 무질서한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을 주관하시나 그 중심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오늘 1절,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은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하고 그 주체를 분명히 한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이때,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4-6).” 모든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우린 그 중심을 분명히 붙들어야 한다. 또한 이 예언의 말씀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되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아니할지니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8).”
오늘 나의 생활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이뤄가시는 역사이다. 성경이 아무리 어떻고, 내 주변의 일들이 어떻다 해도 이를 나로 듣고, 보고,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밝히 알게 하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8-19).” 예수님의 말씀이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다.
일련의 일들로 마음이 어려워서 몸은 반응하고 고통은 따르는 가운데, 나는 수시로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고 지키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고 속으로 읊조리며 나의 마음을 아뢴다. 행여 나의 마음이 휘둘려 세상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오늘의 문제를 떠안고 씨름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내가 나의 기준과 판단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데 있어 미적거리지도 서둘지도 않게 하여주시기를. 육신의 연약함으로 마음을 담대하게 하시고, 마음을 붙드심으로 영혼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여주시기를.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 28:22).”
가령 교회를 이전하는 일에 있어 내 의지나 생각을 뒤로하고, ‘이 시간’ 곧 이른 아침 말씀 앞에 앉아 묵상할 수 있는 일을 우선하게 하시기를. 누구의 일을 듣거나 저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 주의 뜻이 먼저 전하여질 수 있기를. 다시 또 돈벌이나 잘 살 궁리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나는 늘 저의 영혼을 두고 씨름할 수 있는 주의 권능을 부어주시기를. 나는 자주 생각을 멈추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고 주께 아뢴다. 동생의 일로 마음이 볶여 약이 도로 늘었다. 몸은 자꾸 아프고 의욕은 무거운 외투 같아서 걸치고 일어서기도 힘에 부친다. 이때 오늘의 말씀은 실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도하신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일들이 주의 백성을 위함이었다. 오늘의 모든 역사는 나, 우리 믿는 자를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은 그저 부질없어 그들의 역사 또한 한 줄 요약으로 족할 뿐이어서,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6-7).
나의 헛됨을 알면 알수록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목도하게 된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 6:11-12).” 나의 아버지! 나로 이 지혜의 말씀을 되뇌고 그 의미를 깨달아 나의 남은 날들이 결코 헛된 것으로 버려지지 않게 하소서. 나는 말씀을 읽으며, 누구와 통화하다, 어떤 이의 기도부탁을 들으면서… 수시로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고 주의 이름을 붙든다. ‘부디 일련의 모든 상황과 사건으로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 3:2-3).” 이러한 세상에서 그 출처를 살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그렇다면 더욱 더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주의 긍휼하심을 통하여서도 나의 연약함과 경솔함을 용서하여주소서.’ 주께 아뢰고 고하고 수시로 주를 생각하다보면, 일련의 모든 일들이 사사로워서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미 7:5).”
‘아버지.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택정하신 아버지. 행여 나의 입의 말이 내 안의 영을 거치지 않고 세 치 혀 끝에서 나가지 않게 막아주소서.’ 그리하여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 12:6).” 하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4-45).”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 예수로 말미암아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저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주의 공의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뒤틀리고 악의적인 것들을 바로잡아주시는 것이 저희에게 “하나님이 그 해를” 비추시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2).”
나의 기도는 수시로 사소하여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어떤 일에 생각이 붙들릴 때면, 어떤 불안이 나를 짓누를 때에 ‘나의 아버지!’ 하고 주를 부르고 아뢴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115:1).
시편의 세계를 산다는 것은 기도와 찬송의 나라에서 사는 일이다.묵상과 기도가 하나일 때 찬송과 감사 또한 하나가 된다. 잠들 때 몸이 아파서 끙, 하고 돌아누웠는데 아침에 또 이렇게 새 힘을 주심으로 성전에 올라 말씀 앞에 앉을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며.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3).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오늘 나의 보잘것없이 사소한 하루 가운데서도 증거가 된다. ‘죽어 마땅한 나를 돌이켜 원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시길 주저하지 않으시는, 나의 아버지! 나의 남은 생애가 온전히 주의 것이기를. 주가 사용하실 때 천한 그릇도 귀히 담을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11).” 저들의 열매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려워함으로 경외하는 것임을. ‘나를 늘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 무엇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주 앞에 앉았는지, 아버지는 아십니다.’ 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
그러므로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15, 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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