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단 12:10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 116:3-4
역사가 어떠한 흐름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국가와 왕의 이름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때에 있을 현상을 묘사한다. 구체적인 현상과 시기에 대해 답변하듯 전개한다. 다니엘의 재차 질문에 답하신다.
하나님은 종말의 때에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파괴하실 것이다. 더는 사탄이 넘볼 수 없는 완전한 나라가 건설된다. 이 싸움은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12:1).” 곧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19-20).” 우린 두려워할 줄 알고 이를 감지한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2-3).”
앞서 언급된 미가엘의 도움에 직접 연결되었다. 역사적인 성취와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11:35).” 궁극적으로는 천사 미가엘의 보호를 통해 보존된 신실한 성도들,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 여기서 ‘책에 기록된 모든 자’는 하나님의 세세한 섭리 가운데 기록된 것으로,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10:21).” 이때 ‘진리의 글’과는 달리 신앙적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신앙을 수호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록'’을 의미한다. 다윗은 악인을 상대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 69:28).
하고 기도하였고, 구약은 신약을 준비하며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이를 바울은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곧 우리가 연단 가운데서 괴로움을 당하나 그 신앙을 지켰을 때,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이 두려운 사실을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고 악인들은 사사로이 듣고 농담으로나 여긴다. 여기서 ‘땅 티끌’ 곧 ‘잠’이나 ‘죽음’을 상징하며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욥 3:13).” 주를 앙모함으로 우리는 살아서 주신 생을 다한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이와 같은 선택을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13:3-4).
나는 이와 같은 충동, ‘죽음에 이르는 병’을 조금은 안다. 더는 호소할 데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순간 이는 ‘원수의 속삭임’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육체는 ‘무덤’에 귀속되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이를 알기에 우린 주가 아니면 우리 최후를 안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21).”
훗날에 우리 모두 백보좌 심판에 설 텐데,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1-14).” 이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을 우린 안다. 앎으로 두려워할 줄도 알고, 그에 따라 주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바라게 된다. ‘나의 구원의 아버지. 나를 결코 홀로 두지 마시고 나와 함께 하소서.’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5).”
거부할 수 없는 이 두려움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 복이었다. 누구는 실제 수면제를 삼켰다. 아이 둘에 힘에 겨운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셋째를 낳고 더는 견디기 어려울 때였다. 그이는 수면제를 삼키다, 주일학교 때 들었던 ‘지옥’을 떠올렸고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여 입안에 손가락을 휘저으며 토하고 토하다 쓰러져 의식을 잃고 실려 갔다. 다급하게 위세척을 하고 며칠 만에 깨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하였다. ‘나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오늘 다니엘은 이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 오늘 우리가 사는 생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다들 바쁘다. 아이는 아이여서 바삐 움직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으로 사느라 빨리 왕래한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예수께서도 이를 말씀하시면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22).” 곧 마지막 때의 대 환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참된 소망이 어디 있는지…. 오직 우리가 바라고 소망할 곳은 ‘하나님 나라’인 것을. 우리의 연약함과 부패함을 헤아리시고 미가엘을 통하여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0-21).” 할 때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8).” 이는 상징이 아니고 환상은 더더욱 아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일들을 오늘 본문은 분명히 하였다(12:1-4). 이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한 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오늘 우리는 주어진 한 날을 다한다. 마치 생의 최전방에 서 있는 양버즘나무처럼 숱한 매연과 사람들의 변덕에 시달리면서도 보도블록 사이에 뿌리를 박고 그 맡기신 생을 다한다. 나무의 등껍질은 온갖 상처투성이나 올해도 푸르게 한 여름을 지켜내는 도로변 가로수의 생은 경이롭다. 오늘 본문에서 나는 다니엘의 신앙을 그와 같이 집중한다. 자신에게 닥친 여러 가지 어려운 역사적 형편과 개인적 상황 속에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이 탄복할 만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다니엘에게 위임하신 일을 상기하게 하신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서술하고,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2-3).”
말씀 앞에 가만히 앉아 부활을 생각하다, 누구도 구원이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음을 묵상한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이에 모두의 부활은 곧 영생과 영벌의 갈림에 서게 되는 것을,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누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주의 은혜를 고백할 때에 나도 같이 울었다. 저의 처지가 딱해서도, 그 살아온 생이 기구하여서도 아니다. 주께서 거기까지 함께 하심으로 이내 삼킨 것을 기워내고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서 주를 찬송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어릴 때 저의 학창시절에 나는 저의 가정 이야기를 들었다. 겉으로는 예쁘장하고 발랄하며 공부 잘하는 아이로 모두의 사랑을 받았는데, 곁에서 기도로 받쳐줄 이가 그렇게 없었던가? 수십 년 만에 만나서 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적으로 나에게 베푸셨던 내 곁의 ‘미가엘’들을 생각하며 감사하였다.
오늘도 우리는 말씀 앞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말씀으로 살기를 바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5-26).”
어느새 돌아보면 까마득한 저편의 이야기일 뿐인데, 오늘 누구는 서로 함께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부탁하고, 누구는 여전히 세상으로 돌아앉아 사느라 급급할 따름이다. 극명한 이 사실 앞에서 말씀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 12:32).” 하여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오늘 말씀도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같은 어려움과 연단 가운데서 누군 정결하게 되고, 누군 더욱 악으로 행한다. 누군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누군 이를 깨닫고 지혜를 얻는다. 이에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13).” 이와 같은 말씀이 내게 두신 것임을. ‘나로 듣고 깨닫게 하시길 기뻐하시는 아버지. 이와 같은 말씀으로 오늘도 강건하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116:1-2).
기도하고 그 응답을 스스럼없이 듣는 일은 복되다. 그저 사느라 사는 데 정신 팔려 곧 있을 두려운 날을 잊지 않게 하시기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잠 15:31).” 이 놀라운 은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여 나는 친구와 통화에서 ‘그냥 읽어!’ 하고 저의 의문을 뒤로 하게 하였다. 그냥 읽는다는 것은 결코 그냥 계실 리 없는 성령의 도우심을 알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는 말씀 앞에 앉아 ‘그냥 마주한다.’ 읽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더라도, 이처럼 ‘그냥 쓴다.’ 그럴 때 말씀은 말씀으로 연결되어, 아! 하는 어떤 깨달음을 나는 사랑한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4).
그저 다만 주의 이름으로. 하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5-6).
이에,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7-8).
이와 같은 고백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9-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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