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전봉석 2023. 8. 26. 05:18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시 113:1-3

 

 

 

다니엘의 기도와 응답이 진술되었다.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한 묘사다. 주로 이방인들과 관련된 계시였다가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하여 관심이 나타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 틀이었음을 알게 한다.

 

먼저는 다니엘의 기도가 표현되었다(1-19). 그리고 칠십 이레의 환상을 묘사하고 있다(20-27). 다니엘의 기도에서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한다. 이러한 사실에 이어 이스라엘의 미래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포로 시대 이후 에스라(스 9:6-15)와 느헤미야(느 1:5-11, 9:6-38)의 포로 시대 이전의 내용과 비슷하다. 곧 믿는 자의 구할 것이 같은 방향인 것을 알 수 있다. 칠십 이레의 환상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직접 계시되었다. 포로에서의 귀환과 성전 중건,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에 의한 성전 파괴,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까지 그 예언이 다다른다.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렘 25:11).” 곧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앞서 응답이 있었다. 다니엘의 기도는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가 민족의 죄에 대한 연대감을 가지고 통회한다. 주위의 죄에 대해 믿는 자의 애통하는 간구가 필요한 이유다.

 

일련의 상황에서 어떤 이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저를 축복한다. 이는 정의가 살아나는 일이다. 하나님이 바로잡으시는 것이 저의 영혼을 위하여도 복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개인을 위한 것으로 기도를 채워가지 않는다. 누구와의 대화 끝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공통된 시각이다. 시대적 죄악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기도한다.

 

우리로 의롭다하심은 죄가 제거됨과 동시에 일어난다. 죄가 제거되면 완전하고 영원한 의를 덧입는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오늘 본문의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더욱 온전한 평화와 자유가 성취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다가 재림으로 완성된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우린 우리 일로만 기도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아니다(느 1:4-11). 세상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앎으로 우린 더욱 예수를 사랑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그렇게 우리가 기도할 때,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

 

이는 요셉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오늘 우리로 살아서 사는 동안에 주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요셉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이해하는 것처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20-21).” 세상은 우리를 해하려 하나 실은 하나님이 앞서 그 일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이와 같은 기도가 다니엘의 것이고, 요셉의 것이었듯 오늘은 나의 것이 된다. 하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때가 악한 것은 우리로 온전케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으로 와 닿는, 마음이 먼저 아는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어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는 끌탕만하다 주의 뜻을 바라고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하면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는 우리 성도의 공통된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시는 말씀으로만 의지하며,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서로가 통화하며 닥친 문제로 씨름하는 단계에서 염려하고 근심하는 단계를 지나 주께 맡김으로 홀가분한, 오히려 하나님이 어떤 결과로 이 일을 해결하실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설령 우리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주는 선하시다는 사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억울함을 억누르는 게 아니다. 슬픔을 참는 게 아니다. 이를 주께 토로하는 것,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우리의 본심 그대로 주께 아뢰는 것. 괜찮은 척, 잘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순종은 순응으로 순이 죽는 일이다. 고집스럽던 자아가 또는 나의 단단하였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으로, 마치 김장 때 배추가 소금에 절여져 순이 죽을 때 고루 그 맛이 배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일련의 사태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안다. 이를 알 때 우린 서로 기도로 응원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다니엘의 기도와 같이 항상 ‘날 위한 기도’에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하게 되는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것.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여 우리는 찬송한다.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 8:23).”

 

이때에,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113:1-3).

 

처한 형편과 사정이 주를 찬양함을 가로막을 수 없다. 하여 우리는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세상적인 눈으로는 패배요, 실패 같으나 또한 주는 아심으로,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1-22).”

 

즉,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세상에서 저들을 이긴들…. 받은 대로 갚은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2:27-28).

 

이에,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 2:11).” 하여 저들 영혼을 위해 빈다. 그 아이의 장래를 위해 탄식한다. 저들로 축복은 그 죄를 깨달아 주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일 테니.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부디 이 일로 저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기를.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4).

 

이는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욥 5:11).” 고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9).” 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5-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