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3 주일
시 144편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시 144: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시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들어가는 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드러낸다. 다윗 시 특유의 ‘지난 은혜에 대한 찬송’과 ‘현재 직면한 고난에서의 탄원’과 ‘미래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찬양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이면서 매순간 축복을 경험하고, 이를 바라는 사람이다. [다윗의 여덟 편의 시]에 속하는 일곱 번째 시편(138-145편)으로, 오늘 시편은 20, 21편과 시적배경이 같다. 암몬, 아람과의 전쟁을 무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찬송한다.
여기서 우리가 다윗 시의 특징을 꼽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은혜와 축복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이를 결국 깨달았고 특히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요셉도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노예로 살다,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이를 알았고,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0-11).” 하고 그 공통점을 밝힘으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38-40).” 곧 히브리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망라하며 우리 믿음의 기준을 알려주었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은 크게 전반부(1-11절), ‘원수들로부터 고난을 받으며 주께 간구하는 신앙’과 후반부(12-15절),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는 축복의 신앙’을 담고 있다. 특히 5-9절에서는 ‘종말론적 표현들’을 살려 ‘여호와의 강림’, ‘연기가 발하는 산들’, ‘화살과 같은 번개’ 등으로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 시편이다. 이를 이사야는,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 64:1-4).” 하고 마치 오늘 시편의 논점을 풀이해준 것 같다.
다윗의 시편은 특유의 어투가 있다. 첫째,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한다. 이는 현재의 문제에서 거리두기를 하게 한다. 둘째,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것임을 상기한다. 곧 오늘의 일이 단지 개인적인 게 아님을 스스로에게도 주지시킨다. 셋째, 그 맡기신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는 기도와 함께 후대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는다. 즉 교훈을 남겨 우리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다윗 시편의 몇 곳을 예로 보면,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시 18:50).”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61:6).”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63:11).”
오늘 시편의 시적구성은 1연(1-2)에서 여호와를 부르고, 2연(3-4)에서 여호와 앞에 스스로의 비천함을 아뢰고, 3연(5-6)은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찬양하고, 4연(7-11)은 그 하나님께 탄원과 서원을 올리고, 5연(12-15)에서는 후손들을 위해 간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 시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감사와 신뢰는 경험으로 자란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1-2).”
감사는 경험에서 우러난다. “나의 반석 여호와”는 ‘안전과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다윗은 이를 여러 번 경험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28:1)” 곧 하나님이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신다는 것. 이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 이를 바울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하고 증거하였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뢰는 경험으로 싸여간다. 그리하여 “나를 건지는 자” 곧 하나님은 구원이시는 분으로,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삼하 22:2).” 하는 고백을 칼빈은 ‘믿음을 든든히 하고 강화하기 위한 고백’이라 하였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결국 이와 같이 자신에게 말씀을 선포함으로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거기서 주께 감사하는 신뢰가 커진다.
2. 우리의 비천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커진다.
“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3-4).”
곧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8:4).” 하는 다윗 고유의 겸손과 확신이 느껴진다. 욥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욥 7:17-18).” 하고 스스로의 비천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할 수 있었다.
오늘 시편에서 “사람은 헛것 같다”는 표현은 ‘한 번의 호흡(공기)과 같을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다윗의 다른 시편에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39:5).” 이는 우리 인생이 다만 일시적일 뿐, 지나고 나면 헛된 것임을 일깨워서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102:11).” 하며 시인이 삶의 허무함을 고하고,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109:23).” 보잘것없음을 아뢰어,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욥 8:9).” 하는 성찰을 끌어내고,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14:2).” 하는 깨달음으로 주를 온전히 바랐다.
이에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전 6:12, 8:13).” 곧 우리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성을 내세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3. 하나님만을 나타내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5-6).”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표현은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하는 부분이다. 직역하면 ‘당신의 하늘들을 구부리소서’ 하는 표현인데, 하나님이 임의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곧 하나님의 임재는 ‘구름이 땅에 낮게 드리우는 것’처럼, ‘하늘과 땅이 함께 섞인 것’처럼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대면할 수 없다.
이에 “번개를 번쩍이사” 즉 순간적으로 원수들을 흩으시고 찌르실 것을 간구하고, ‘흩으시며’ 즉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이 순식간에 상대하실 것을 의미한다. 이때 “주의 화살”은 하나님의 진노가 번개 같음을 가리킨다. 우리의 비천함을 하나님의 품에 숨기시고,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18:12).”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는 ‘뇌성과 불길’ 같이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드러낸다.
4. 우리의 탄식과 서원은 정당하다.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7, 11).”
“큰 물” 이는 마치 홍수가 범람하여 모든 것을 쓸어가듯,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18:4).” 그렇듯 “이방인의 손에서” 곧 ‘대적의 깨끗지 못한,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여 건지소서” 하는 탄식과 간구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느 9:2)” 주 앞에 바로 살고자할 때 아뢰게 된다. 우린 이제 안다. “…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겔 44:9).”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들, 저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하는 기도는 오늘을 살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데도 필수적이다.
이때 우리 주님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하시며 당당하게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8).” 하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하지 않을 때 우린 이방인, 안 믿는 자에게 구하게 된다. 하여,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하시고, 이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하고 약속하셨다.
5.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간구하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12-15).”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일이 즐겁다.’ 전반부 1절에서 11절의 경우와 달리 후반부 12-15절은 우리가 오늘을 살며 우리 가족들의 건강과 먹고 사는 일과 하는 모든 일에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심은 실제적이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즉 전쟁이나 위험 따위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며, 충분한 보살핌과 양분을 공급받은 나무처럼 장성하기를.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즉 그 아름다움과 위용이 손상 받지 않도록 하여주시고, “백곡이 가득하며” 즉 모든 ‘종류로부터 종류까지’ 풍족함으로 채우시고,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욥 5:10).”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기를.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이는 곧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데 따른 복의 근원인 것을 알게 한다. 사는 동안 평화와 안전, 풍성함과 번영을 간구하며, 이에 따른 최고의 안전장치는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인 것을 인정하게 한다. 우리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를 이루시기까지 악의적이고 공격인, 부패하고 타락한 이방의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와 지도를 받기를.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축복하심을 누릴 수 있도록,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15).” 하는 오늘 말씀을 하루하루의 키워드로 삼자. 곧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33:12).” 그러므로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1-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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