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전봉석 2023. 9. 8. 04:39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0:12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시 119:169-170

 

 

 

우리 삶은 순간마다 열매를 맺는다. 이를 쌓아 곳간에 둔다. 나이 들어 모든 게 시들하고 지나가나 열매는 날로 쌓여간다. 이를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그런데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호 10:1).” 오늘 본문 이 한 문장에서 우리 생의 그릇된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무성한 포도나무’,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이 많고, 주상을 아름답게 한다. ‘넓게 퍼진'’, ‘무성하게 자란’,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요로운 은혜 가운데 정착했다.

 

그런데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하심과 같이 그 풍족함으로 우상 숭배를 자행하며, 사신(邪神)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사용하였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2:8).” 이러한 현상은 유다 왕국의 말기에도 동일하였다(겔 16:15-29).

 

이를 오늘 말씀은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호 10:2).” 곧 우리가 두 마음을 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머뭇거리는 상태이다. 마음이 거짓되고 기만적이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그릇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곧 우리는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4).” 은혜를 바로 헤아려 사용하지 못할 때 우리의 결국은 끔찍하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시 80:14-15).

 

돌이켜 주를 바라고 의뢰할 수만 있다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16:12).

 

은혜에 감격하며 사는 일은 절대적이다. 상대적일 수 없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신 31:20-21).” 곧 우리의 됨됨이를 이미 아시는 주, 그리하여 주를 멀리할 것이라 하여 주께 돌이키실 터인데,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32:6).”

 

살면서 모든 순간마다 주를 인정하는 삶이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는 요즘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자주 머문다. 때론 어줍은 기도로 덜 고통스럽고 힘들기를 바라다가 문득 듣는 말씀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곧 나의 간절함이 나의 약함 중에서 주를 바라고 신뢰하는 일이었으니,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턱을 괴고 오래 머문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주의 인애로 감사한다. 그러할 때 나의 묵은 땅, 주의 은혜로 감사가 가득하였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날을 돌아보며 ‘회개를 촉구한다.’ 흔히 우리 신앙은 타성에 젖어서 처음 가졌던 그 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기 마련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2-4).” 이는 에베소교회를 향한 말씀이다. 저들은 누구인가? 바울서신을 통해 그 놀라운 택하심의 원리를 들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나는 자주 이 부분에서 나의 나 된 것을 되새기곤 한다. 오늘을 사는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그러나 살면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위신과 명분을 의식하게 되면서 교회 안에서도 저들만의 무리가 형성된다.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이 모여 저들의 적당함으로 ‘유한마담’을 형성한다. 직분과 봉사를 보이는 것으로 취하고, 나름 말씀과 기도는 있으나 정작 하나님과는 거리를 둔다. 이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나는 요즘 몸이 약하여 고통을 당하면서 더러는 의기소침하고 시무룩하지만, 그리하여 주를 가까이서 찾는다.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 몸의 통증은 정직하여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유익하다. 저마다 힘에 겨운 일을 안고 살지만 그것으로 마음을 성결하게 하기란, 그리하여 주를 간절히 바라는 데 있었다. 나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더하시는 아버지. 고통 중에 정직하여서 영혼을 돌아보게 하소서. 적당할 때는 몰랐던 주의 은혜가 새롭습니다. 나의 아버지.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하시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한참동안 묵상하다 처음 가졌던 나의 뜨거운 사랑은 여전한지? 죽기까지 주를 사랑하겠다던 마음은 여전한지? 그럴 때 지금은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시는 오늘 말씀이 여러 모양으로 마음을 채운다(호 10:12). 말씀 앞에서 ‘나의 묵은 땅’이 무엇일지, 그대로 놓아두고 기경하지 않는 시간과 생각과 교제와 서로의 나눔은 아니었을지를 생각한다. 공의를 비처럼 내리실 터인데,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3).” 아, 내가 의지하고 더 사랑하는 것이 실은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렘 4:3).”

 

안 믿는 자들이야 그렇다 해도 믿는 자로 산다면서 나는 얼마나 주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주의 은혜를 그때마다 비 같이 내려주심을 돌아보며 새삼 나의 안일함과 나태함을 생각한다.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심에 그러므로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12).” 멈칫, 나의 안이함에 놀랐다. 거기에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회개는 의의 은혜를 풍족하게 내리시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잠 19:23).”

 

오늘의 상황에서 족하게 지낸다는 것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15:1-5).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8:16-17).”

 

몸의 고통은 그러해서 마음을 일그러지게는 하나 그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나의 묵은 지경을 기경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나의 칭얼거리는 영혼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선명해진다. 나의 아버지, 하고 부르는 나의 부름이 벌써 나로 주 앞에 절실히 세운다. 그리하면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20).” 이와 같은 명료한 원리를 되새기게 한다. 그런 가운데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보잘것없다고 여기던 일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56:5-6).

 

곧,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19:165-166).

 

나의 절실함은 약한 데서 온전하였다. 나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셨라.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내가 시무룩하여 ‘따귀 맞은 영혼’처럼 굴다, 내가 언제 주의 말씀과 그 말씀을 묵상하는 이와 같은 시간을 이토록 절실하게 바란적이 있던가? 하고,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겠다. 이로 족한 줄 알고, 이 고통 또한 잘 건사하며 주를 바라는 것이 주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신다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 아픈 게 질색이나 그것으로 주께 간절함은,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69-170).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시는 여러 방법 가운데 육신의 어려움으로 주께 호소하는 것보다 정직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이는 실제이고 아프면 끙, 소리 내며 주를 찾게 한다. 말씀 안에서 응답으로 사는 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그러므로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이를 간절히 알게 하심은 남다른 약함에서였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 3:15).”

 

곧,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2, 174).

 

그리하여 나는 나의 간절함으로 나의 아버지를 부르며,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75-17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