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1
7장 1, 4, 7절과 동일하게 네 번째 환상이 시작된다. 주께서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신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는 익은 상태로 그대로 두면 곧 상할 수밖에 없어 보존할 수 없다. 곧 이스라엘의 죄악이 쌓일 대로 쌓여 이제 심판 날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무르익은 여름 실과를 따서 광주리에 담아 옮긴 것처럼 이스라엘은 죄악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결국은 이방 땅에 포로로 옮겨질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암 8:1).” 이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11).”
말씀은 우리로 듣고 깨달아 알게 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으시다. ‘주께서 내게 보이신 것’에 ‘주의 말씀을 더하신다.’ 말씀은 은유적이고 비유는 실제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2-13).” 이는,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33-34).
하는 시인의 간절한 기도를 읊조리게 한다. 죄악도 같아서 방치하면 무성하여져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 이를 ‘여름 과일을 담은 광주리’로 비유하신다. 그냥 두면 곧 썩어 문드러진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주는 물으신다. 앞서 세 번째 환상에서도 같이,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다림줄을 가지고 “내 백성 가운데” 서신 주를 보게 하셨다(7:8). 건축에 있어 쌓은 것과 놓인 것이 바른가를 확인하는 게 다림줄이다. 오늘은 이어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다. 여름 실과는 ‘끝’ 또는 ‘마지막’이란 뜻의 어원을 가진 히브리어 ‘케츠’란 단어를 써서 아모스는 일반적으로 ‘여름 실과 광주리’는 추수의 기쁨이나 저장한 곡식으로 이해되나, 이를 ‘용서받지 못할 가련한 상황에 처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로써 불순종하는 백성들의 실상을 알게 한다. 당장은 잘 익은 것이나 두고 보관할 게 아니라 얼른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오히려 궁핍한 자를 삼키고, 가난한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에 대해 지적한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암 8:4, 6).” 곧 스스로는 잘 익은 여름 과일 같이 풍요로운데도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실상을 고발한다. 곧 많은 부자들이 저울을 속여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겨 부를 누린다.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5).” 예나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욥 24:4).” 이를 간과하는 이들이 잘 익은 여름 과일 한 광주리 같아서 자신들은 단내가 나고 금방 터져버릴 듯 잘 익었다고 여기지만 이를 나누지도 바로 보관하지도 않으면 곧 물러 터져 그냥 버려야 한다. 이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사 3:14).” 오늘 저들의 부와 명예와 권세가 약한 자의 것을 갈취한 것과 같다. 주는 이에 분노하신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15).” 오늘에도 여전한 인권 유린은 교묘하고 그 차이는 다르지 않다. 승자 독식으로 가진 자가 다 가지는 구조다. 이를 시인은,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7:14-16).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다. 당장은 잘 익은 여름 과일이 한 광주리나 된다! 그렇게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사 59:5).” 그러므로 여름 과일은 곧 임박한 절망을 알린다. 말씀은 우리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왜냐하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점점 더 담대해져가는 악에 대하여,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겔 12:22).” 오늘도 ‘에이, 설마…’ 하는 방심과 ‘모두 다 그래!’ 하는 합리화가 스스로를 놓아둔다. 그 영혼을 안이하게 만든다. 이에 예수님은 이르시길,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4-35).”
그저 같이 맞장구쳐주고 ‘네가 좋다, 괜찮다, 잘못한 거 없다.’ 하면서 평안하다 평안하다하는 소리에나 좋다고 하지, 정작 그에 따른 죄를 알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하면 졸지에 등을 돌린다. 점점 더 바른 말을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 3:12).” 우리가 돌아보고 ‘먹이라, 치라, 먹이라.’ 하고 사명을 더하셨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곧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정작 주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한 일을 작은 일로 여기고, 이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정작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떠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작은 일도 크게 여기고 이를 모두 기억하고 산다. 하여 어느 훗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나는 늘 이 말씀이 두렵다. 그러므로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금세 한 주가 가고 계절이 바뀌었다. 아침에 나올 때 도톰한 옷을 찾아 걸치게 된다. 24도가 되면 귀뚜라미가 울며 곧 겨울이 올 것을 알린다. 그러고 보니 흐드러지게 울어 제치던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이를 잊고 있다 내가 아는 누가 다녀가면 세월이 빠르단 생각을 한다. 나는 과연 주 앞에 무엇을 바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13).” 말씀 앞에서 문득 두려움이 인다.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사 61:8).” 그러므로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나는 소망한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사 61:10-11).”
자칫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와 같은 ‘말씀의 기갈’이 심각한 상태를 초래한다. 교회를 불신하고 예배를 부정하면서, 스스로 유튜브에서 구미에 맞는 말씀으로 엉뚱하게 머리만 키운다. 그렇게 말씀을 찾아 헤맬지라도 아무런 말씀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 정체성을 잃었다. 그렇게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3).” 인생의 좋은 시절이 잘 익은 여름 과일 한 광주리 같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9).” 그런데 어쩌다 신앙은 ‘마음의 위안’ 정도로 전락한 것일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과연 우린 어떠한지?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이에 우리 영혼의 밤을 지나고 있지는 않은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고 산다면, 돌아갈 본향을 바라는 마음이 없이 산다면,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4-17).” 하여,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134:1).
인생의 어둔 밤을 피할 길 없다. 그때에 ‘주의 성전에 서 있는’ 자로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는 자로 살고 있음이 복이었다. 그때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칭찬하시며 우릴 이끌어 환대하실 본향을 생각한다. 이어,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이는 우리의 의무이면서 영원한 복락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고 하란다고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러므로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29:2).
하실 때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134: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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