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전봉석 2023. 9. 22. 05:11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암 7:5-6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환상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주어진 환상은 풀이 베어진 다음 다시 풀의 움이 돋으려 할 때 황충 떼가 몰려오는 모습이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암 7:1).” 곧 왕이 풀을 베었다는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 때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먼저 왕에게 바쳐야 했음을 알게 한다. 첫 번째 환상은 풀이 움을 돋으려고 할 때, 황충 떼가 몰려오는 광경에서 절정에 달한다. 환상 속의 황충 떼는 장차 임하게 될 외세의 침략이다. 이스라엘이 받게 될 심각한 타격을 알린다. 또한 ‘주께서 ~지으시매’는 매우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주께서 이 일을 허락하신 것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시편은 기도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 119:18, 143:8).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도 느끼는 것이 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바라게 된다. 왜냐하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오히려 세상을 취하고자 깨달아 돌이킬까 두려워하는 자로 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위기 앞에 우리의 자세를 묻게 한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3-5).”

 

이와 같은 슬픔과 주께 간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오늘 2절,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곧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하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이어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고 주께 아뢰는 심정이 전해진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지극히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 이에 우리에게는 은총과 긍휼하심만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할 때,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3).”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하나님은 하시려 하던 일을 정지하신다.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이 필요하다. 아모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우리 삶에 몇 번이나 일어나는지?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신다.’ 이때 ‘뜻을 돌이켜’는 근본적으로 ‘남몰래 괴로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시긴 했지만, 사람이 알 수 없는 신중한 고려가 있음을 알게 한다. 때때로 뜻을 돌이키실 때, 반드시 일어나기로 예언된 일에서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의 중보와 회개를 우선하신다. 이렇게 뜻을 바꾸신 경우는 여럿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 하는 이와 같은 간절한 기도 앞에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34).” 마치 없던 일처럼, 그러나 분명하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33).”

 

이렇듯 하나님은 엄연히 약속하셨다.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8-10).” 이와 같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3-14).”

 

곧 우리가 기도할 때를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를 위해 모든 자비와 인내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이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새로운 역사는 일어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찌 이와 같으신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가를 보신다. 오늘 7-9절, 아모스의 또 다른 환상에서 다림줄을 가지고 서 계신다! 2-3절의 두 번째 재앙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3).” 이는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잡고 서셨더니” 하는 하나님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7).”

 

‘다림줄을 사용하여 수직으로 세운 담’을 살피신다. 견고한 성을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주님께서 다림줄을 들고 우리 곁에 서셨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주의 이와 같으신 역사를 의식하고 산다는 일은 우리로 자신을 살펴 주의 뜻에 합당한지를 늘 깨어 점검하게 한다. 가령 나는 누구의 묵상글을 늘 읽는다. 일상을 말씀으로 비추어 실제적인 삶을 돌아보는 데서 나는 늘 은혜가 새롭다. 때론 너무 사사로운 것에서 의식하고 사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렇듯 그 사소함에서도 자신을 말씀으로 돌아보는 저의 신앙 태도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대수롭지 않은 듯 나는 얼마나 자주 넘겨짚고 흘려버리는 게 많은지…. 그때 내게 물으시는 것 같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은 나를 알고 나를 향한 긍휼과 애정이 얼마나 크신가하는 것을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민감하게 느끼기를 바라신다.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민 16:5).” 오늘도 나로 새로운 날에 말씀 앞으로 나오게 하심이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우리의 일상에서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서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 그것으로 안도하고 안심할 수 있는지, 혹은 답답하여 불안하기까지 한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사는 사람이면 어느 쪽일지 우린 짐작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말씀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다림줄을 들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나는 오히려 안심한다. 오늘 16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하시는 데서 앞뒤 내용은 차치하고 무엇을 주목하고 더욱 의식해야 하는가를 알겠다. ‘여호와의 권위로 더욱 강력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것’ 이는 곧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39:23-24).

 

그렇듯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0-11).” 역으로 생각하면 나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이 없기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이를 위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이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3:1).

 

우리의 만남과 연합이 하나님 안에서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 이때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딤후 2:23).” 이는 마치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우리로 세상과 벗하다 주의 다림줄에서 어그러질까 하여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렘 30:11).” 이 놀라운 은혜의 관심 가운데 우리는 산다. 이는 다시,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3).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 이는 구별됨으로 거룩하고 존귀한 자임을 일깨운다. 하여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곧 오늘 우리의 막중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이로써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곧 우리의 진실한 기도가 주의 뜻을 바꾸기도 하고, ‘천국 열쇠’가 내게 있어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심이 두려움 가운데서도 귀하다. 이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