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전봉석 2023. 10. 2. 05:1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미 3:1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 143:8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아는 게 본분이다. 정의 또는 공의는 지도자의 덕목이다. 공정하고 공평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말씀은 묻는다.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즉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하심은 공의란 책임을 지는 일이다. 자기 편리와 만족을 위해 굽은 것을 곧다 하고 곧은 것을 굽게 할 수 없다. 이를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생활에서 행할 의무가 따른다. 어른이 된다는 일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보다 공의를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야곱의 두령들’ 곧 지도자들이 정의를 저버리고 행한 악을 묘사한다. 그들은 공평하고 공정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오히려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미가는 지도자들, 어른들의 행위를 음식을 만들 때 행하는 방식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다. 가죽을 벗기고 살을 다지며 뼈를 발라내듯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그들이 행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오히려 지혜자는 말하길,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대하여 인정한다. 그럴 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솔로몬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교훈이었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15).”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6-17).” 스스로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은 행여 나의 의로 주의 의를 가리게 될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오직 지혜란 주를 경외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을 때 오늘 말씀은,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미 3:4).” 이는 두려운 일임을 믿는 자로서는 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가리신다’는 것은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인데, 우리 기도의 간구를 외면하실 때 그보다 더 끔찍한 현실은 없다. 하나님의 외면과 무응답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저버려서라면 상대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때 바르고 온전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가령 말씀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질 때, 하여 오늘 시편은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시 143:1, 7).

 

곧 하나님의 뜻에 합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아뢸 수 있는 게 지혜이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자기 소리가 돌아올 따름이어서 스스로 무장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하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6-17).” 곧 선행과 정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대하여 중심을 두고 사는 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3).” 할 때 하나님은 들을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외면하실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 9:31).”

 

우린 누구나 다 어른이 된다. 어느 특정한 위정자로 돌릴 내용이 아니다. 가정을 이뤄 살며 혹은 자신을 스스로 단속하며 살아야 할 때,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우선이다. 여기서 정의한 사회적 통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주를 경외하는,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7).” 배워야 한다. 먼저 들어야 한다. 듣기 위해 자기 입을 가려야 한다. 할 말이 앞서는 것은 자기 생각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아이 때는 어른의 이와 같은 태도를 경멸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같은 행동을 취한다.

 

누구를 대할 때 목적으로 대해야지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오늘 2, 3절의 내용이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사람을 그 이하로 삼거나 차별하는 일에 있어 이와 같은 태도는 고질적이다. 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이런 자와 구분하여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 1:14).”

 

실제 우린 사람으로 사는 동안 서로에 대해서도 장래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곧 ‘예수의 날’에 우린 그제야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기를 쓰고 달겨들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그땐 그리 구하여도 그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숱할 것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가 닫힌 후에 달려와 문을 두드리며 애원한들…. 그때에는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나는 스스로 노력하기를 말씀으로 전할 때에 평소하고 싶은 말을 담아낸다. 말씀에 근거하여 이를 전한다. 평소 뭐라 한들, 귀가 가려워 여러 선생의 소리에는 혹하면서 진리에 따른 권면에는 외면하는 게 사람이란 걸 잘 안다. 내가 날 보면 그러했다. 다만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누굴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 때론 저를 외면하는 일보다 어렵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히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누굴 탓할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건사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11:6).” 그러므로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누구에게 무엇을 일러야 할 때 나는 말씀을 붙든다.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 나의 말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이를 글로 쓰고 이를 바탕으로 전할 뿐이다. 성령이 하셔야 한다. 애굽의 바로도 그 마음을 움직이고 다스리신 이는 하나님이신 것을 잘 안다. 모세와 아론은 다만 전하였을 뿐이다. 그러할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듣는다. 우리의 욕심으로 가득한, 그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에게는 어떤 소리도 귀에 들릴 리 없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 두려울 때,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3).” 하여 행여 전하여지는 말씀이 나의 감정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께 아뢰는 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그러므로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일은 앞선 어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제부턴가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뜨끔하고 울컥하여 마치 자기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는 데서 은혜인 것을 알았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

 

이것이 말씀 전하는 자의 자세이면서 동시에 듣는 자로서의 일이고, 어른으로 사는 데 따른 바탕이 되겠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여 우린 성령을 구해야 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곧 위로부터의 능력,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어느 아픈 아이와 교류가 있는 친구에게 네가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여보라고 하였다. 단지 남 얘기 듣듯 흘겨듣고 말 일이 아니다. 우린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보내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산다. 할 때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 성령이 하심을 알게 된다. 이를 구하라고 권하였다. 곧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그러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3:10).” 이와 같은 말씀으로 다시금 오늘 ‘어른’으로 살아야 할 때 말과 그에 따른 권위를 두고 정의를 세운다. 하면,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43:10).

 

오늘 시편의 말씀에 따라,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8).

 

이와 같이 말씀 앞에 앉아,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이를 붙든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59:9).

 

이 분명한 사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143:10-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