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 4:1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15
‘끝 날에’ 곧 ‘마지막 날들에’ 본문은 앗수르의 포로 상태에서 귀환하는 날을 말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의미한다. 그날에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 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0-31).”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리로 종말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한다.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겔 38:16).” 하나님의 최종적인 역사로써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5).” 하시는 말씀 앞에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시온에 임재하심으로 오늘 2절, 7-8절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곧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시 87:1-2, 5, 7).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완성된다. 실패하거나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그러므로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누구도 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 이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25:1-2).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 그러므로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8-9).”
오늘 우리가 시온을 삼아 각자가 그 시온을 이루어가는 일에 있어 ‘여호와의 전’이 된다. 이를 앎으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하시는 말씀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7).” 하신 말씀 앞에 순결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로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로 이를 이뤄 살아가게 하셨으며, 나로 그 실체인 것을 알게 하신다. 오늘 본문 2절을 그리 읽는다.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오늘에 이르러 교회는 주가 사신 것으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5-16).”
이로써 주의 백성은 평화를 원한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미 4:3-4).”
오늘은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교회를 생각한다. 나로 이 자리를 지키게 하심을 묵상한다. 그로 인하여 주가 내게 더하시는 것과 우리로 함께 하심이 어떠한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19, 22).” 말씀으로 받은 은혜가 행여 누구를 생각하다 저를 판단하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내 안에 이는 어떤 불안과 염려로 빠져들지 않도록. 주가 그 힘을 더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감정이란 부유물과 같아서 휘저으면 뿌옇게 일다 놓아두면 다시 투명하여지기는 한다. 사는 동안 이와 같은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것을 알지만 이번에는 특히 말을 아꼈다. 가만히 있어 주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두었다. 누구로 서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과 함께 교회도 같이 가는 것으로 뜻이 모아졌다. 교회는 집과 달라서 가만히 있을 때 주의 역사가 선명해진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였다. 스스로 만족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를 따르고 믿는다고 할 때 지근거리의 12제자가 있고, 70인이 있고, 여러 무리가 있다 할 때 나는 어느 자리인지… 모두가 부활의 주를 만나고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시기까지는 다를 게 없다. 12제자 가운데 하나는 예수를 팔았고, 하나는 세 번씩이나 저를 모른다고 부정하였고,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옛 생활로 돌아갔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서 주께서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 하고 물으실 때,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정하게 되는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 하고 대답하였고,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9).” 하고 고백하던 이들이었다.
훗날에 난데없이 군중들 사이에 서서 저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며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하여 그 죄를 자신과 자신들의 후손에게로 돌렸으니… 사람은 사람으로 안 된다. 하여 이를 앎으로 구하는 것이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어쩔 수 없는 나의 나 됨을 인정하면서 주가 쓰시고자 할 때 주의 쓰임에 합한 사람이기를. 지난날 나의 허물과 죄악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누가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겔 16:6-7).” 이제야 느끼는 어떤 부끄러움과 송구함을 부여잡고 오히려 나의 나 됨을 주께 고하여 긍휼하심을 구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
하면 오늘의 이 은혜로 내가 누구보다 나은 줄 알고 저를 경멸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이 없어야 할 터,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부디 더는 누구를, 또는 어떤 처지를 두고 마음을 휘저을 게 아니라 가만히 주를 바람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이로써 곧 ‘끝 날에’ 이르를 ‘메시야 시대’를 떠올린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슥 3:10).” 곧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0:12).” 그날에는, 주가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의 찬송과 기도로 나를 돌아본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44:1).
연단 속에 축복이 내재되어 있음을. 하여,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리하여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0-11).” 이 단단하고 놀라운 말씀을 붙들고,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2).
가끔은 너무 싫은데,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분명한 사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이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2-15).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0) | 2023.10.05 |
---|---|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0) | 2023.10.04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0) | 2023.10.02 |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0) | 2023.10.01 |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0) | 2023.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