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 5:2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9
심판과 구원이라는 극명한 대조로 구속자를 소개한다. 왕 되신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 ‘딸 군대여’ 하는 표현에서 실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침략을 받아 수치를 당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때에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다스릴 자, 참된 왕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6).” 하고 인용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떡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베들레헴이 스불론의 베들레헴과 다른 지명인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비록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곧 ‘천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메시아 예수께서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여호와에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이다. 사실 에브라다는 슬픔의 의미를 가졌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 죽은 곳이기도 하다.
이에 죽음과 슬픔의 그림자가 짙게 그려진 장소로,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렘 35:15).” 하는 경고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 그의 근본은 영원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 30:11).
그러므로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곧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다윗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으나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모든 구원의 약속이 집약되는 장소이다. 이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또한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떡집이란 뜻과 같이 우리에게 주실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떡임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이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하며 스스로를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2-33).” 하고 자신을 일깨워 말씀하셨다. 곧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47-48).”
곧,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2).”
이와 같은 메시아의 도래는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 저는 누구신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 한 구절의 말씀으로 모든 게 풀린다. 곧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는 오늘 본문의 예언이 말이다.
그의 근본 곧 그의 나옴은 그리스도의 기원으로 상고(케뎀)와 영원(예메 올람)은 영원성과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나아가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 이르는 창조 역사에까지 닿아서,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신다. 오늘 3절,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곧 오늘 이스라엘의 고초가 ‘여인이 해산하기까지’여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까지 이른다.
이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그러므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미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B. C. 8세기이다. 곧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때이다. 이어서 B. C. 586년에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700년 이상 계속될 고통이다. 우리의 시련과 고통이 가닿을 곳으로 분명한 사실은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와 회복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고통의 시간이 돌이켜 주를 바랄 수 있는 시간으로 주가 기다리심을 알게 한다. 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기다리시는 기간은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이다. 곧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미 4:9-10).” 그렇게 메시야의 오심은 ‘그 남은 자’가 돌아오는 때까지이다.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5:3).”
그러므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저들이 겪는 지금의 고통으로 저들은 돌이킬 시간을 얻는다. 돌아올 수 있다. 이때에 주가 살피신다. 오늘 4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놀라운 예언으로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우리로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고통과 통곡의 시간에서다.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78:71-72).
이는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그러므로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미 5:6).” 당시 그 상황은 동시에 오늘 우리의 상황을 연결한다. 삶이란 그런 거여서 슬픔과 고통이 이어지는 이때에 우리로 주가 주시는 평강의 은총을 기다리게 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당시의 모든 상황을 진술하지만 오늘 우리의 모습도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18).” 이에 오늘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세상과 싸워 승리할 것을 알게 한다. 당시의 앗수르와 니므롯은 오늘에도 여전하여서 우리가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것을 공격한다. 그러나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10:3).
그것이 오늘 우리의 소망이며 현실을 딛고 살 용기가 된다. 그리하여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오늘 우리에게 더하시는 날들 가운데 우리가 믿음 잃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8-19).” 곧 주의 길 가운데 가로놓이는 여러 장애물은 각자마다 다르다. 누구에게는 질병이 또는 가난이, 실제 생활의 어려운 역경이 우리로 주저하게 하고 더디게도 한다.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이내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은 오늘의 말씀이다. 오늘도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미 5:3-4).” 곧 오늘 우리로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고 당면한 현실로 씨름하게 하심은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가령 나는 이번 추석연휴와 이어지는 공휴일동안 자꾸 어디가 아팠다. 거기에 더해 다음 주에 있을 동생의 3차 재판이 마음을 어렵게 하였고, 뒤이어 있을 이사 계획이 마음을 번잡스럽게 하였다. 새로운 변화를 가급적 피하고 어떤 변수를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그것으로 몸이 아픈 것인지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인지… 고질적인 우울감으로 시달려야 했다. 나의 ‘앗수르’와 ‘니므롯’은 몸의 고통으로 진통제를 연거푸 먹으면 속이 울렁거려 힘들고, 마음이 어지러워 안정제를 평소보다 더 먹으면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악순환 가운데서도 그리하여 나는 억척스럽게 말씀 앞에 앉는다. 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한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들추어 이른 아침 묵상글을 쓴다. 아내는 그런 내게 말한다. ‘하루씩 살아내는 사람 같다.’
그러할 때 말씀이 절실한 까닭은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렘 1:17).” 나를 괴롭히는 ‘앗수르’와 ‘니므롯’을 상대해야 한다. 이러한 삶은 곧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한다. 그때에는,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72:8).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5:1-2).
나에게 말씀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8-9).
하고 일깨운다. 나의 문제와 내 곁의 여러 심령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가슴에 품고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실 때,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0, 13).
이에,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6-17).
그러므로,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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