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전봉석 2023. 10. 5. 04:49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5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타동사로 보면 ‘받다’, ‘따른다’는 의미로 확장한다. 오늘 첫 구절,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심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면 자주 선언되는 표현으로 ‘그 동안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안에 받고, 따르는 삶까지를 포함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미 6:2).” 하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리 하시는 데 황송한 마음이 든다.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하고,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한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3).” 하실 때, 어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당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하게 된다. 이는 자연이 하나님께 순복하듯이 우리도 주께 순종하게 만든다. 그렇게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 8:27).” 우린 살면서 삶에서 이를 확인한다.

 

모처럼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아버지 사업체에서 독립하였고 두 회사와 합병하여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공황이 오고 그러면서도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는 말이 기특하였다. 아이들 엄마는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였고 현재는 간헐적으로 안정제를 먹을 정도로 호전되었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근황을 듣다 ‘공부 끝나면’ 같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였던 저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오랜 시간 나의 시간 속에서 나란히 하였던 아이라 자신도 늘 그래야 한다는 마음을 지니고는 있다고 하였다. 둘이 가정을 이뤄 두 아이를 낳고 애써 생활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 안쓰러웠다. 그러는 중에 어떤 어려움이 저로 주 앞에 서게 할지, 나는 아이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였다.

 

때론 억지로라도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렘 1:17).” 그러므로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 3:11).” 하신 말씀에 따라 저는 듣기 싫어해도 나는 말씀을 전한다. 부디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전달되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생활이 고단하고 어지러운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돌이켜 주 앞에 세우려하심이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미 6:3).” 돌이켜보면 나의 아집과 고집 때문이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나의 판단이 나로 주를 멀리하게 하였다. 내 곁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무엇이 원인인지 알면서도 선뜻 이를 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때 나도 듣기를 싫어했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시 78:40-41).

 

지금 생각하면 나의 그러했던 모습이 저의 생활 속에서 보인다. 그때는 들리지 않던 말씀이 오늘에서야 나의 안타까움으로 알겠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그게 나였고, 말씀 속의 불순종하는 저들이 나였음을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럴 때 나로 간절하게 하는 것은 그때마다 주가 내게 베푸셨던 은혜를 생각할 때이다. 어느 훗날 저 아이도 오늘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회상할 수 있을까?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 15:15).”

 

나는 가끔 나의 지난 이야기를 할 때나 이를 떠올릴 때면 주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가를 알게 된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죽어 마땅하였을… 나는 이런 말을 일부러 자주한다. 때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한다. 나의 부끄러움이 저를 돌이켜 주 앞에 서게 할 수만 있다면. ‘너는 내게 증거하라’ 하시는 오늘 말씀을 그리 되새긴다. 나의 욕망이 하나님의 율법과 상치되어 괴로움을 겪었던 날들을 돌이켜 다행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나보다 더 괴로움을 당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이 이를 따져 물으시는 것을 듣는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사 7:13, 43:24).” 그럼에도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 2:17).”

 

함부로 지껄이고 행동하며 살았던 날들을 생각한다. 오늘에 아이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나는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통화로는 다 할 수 없는 말이라 조만간 보자고는 했는데… 늘 생인손처럼 아이의 사는 이야기는 아프다. 어머니는 안녕하신지. 동생은 잘 지내는지. 나의 간단한 안부는 빈손만 보이는 것 같아 미안하였다. 나에게 있어 십 수 년의 글방이 다양한 군상들을 마음에 담고 살게 하였다. 모처럼 아이의 전화에 반가움은 뒤로하고 좀 어떤지, 활동하는 덴 지장이 없는지… 통화를 끊고 난 뒤에는 안달만 났던 나의 말들이 아쉽기만 하였다.

 

하나님은 우릴 결코 괴롭히신 적 없다. 도리어 그때마다 속량하심으로 돌보신 은혜를 기억한다. 나의 뚜렷한 증거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확고히 한다.

 

오늘 5절 말씀에서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나는 나의 ‘발락과 발람’을 기억한다.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한다.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를.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77:11, 11:4).

 

그리하여 오늘의 나는 말씀 앞에 앉는다. 누구 이야기를 들으면 저의 영혼을 두고 기도한다. 몸의 연약함으로 괴로움이 심할 때면 그것으로 주께 감사하길 구한다. 주신 상황 속에서 주를 인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그리하여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오늘은 주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하나님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복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한다. 아이의 일도, 어떤 아이의 엄마 이야기도 결국은 몇 곳 더 정신과를 가서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그저 숫기 없는 수줍은 아이 정도로 여겼던 고1 딸애가 아이큐 60의 지능장애로 판명을 받는다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그 심정을 알겠다. 본인도 이혼으로 상한 마음을 정신과 약으로 의존하며 그나마 딸애를 보고 버텨온 삶이었는데…. 그 말을 전하는 누가 말하길, 실은 아이엄마가 상태가 더 안 좋은 거 같아! 하는데 대충 짐작이 갔다. 어제 가까운 아이와의 통화 후에도 주께 묻기를 ‘왜 나로 이 가운데 두시는지 알 것 같다’고 솔직히 주님께 인정하였다.

 

목사가 되고 말씀으로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며 주를 바라며 산다고 하나, 생을 지나오면서 나의 영혼은 많이 상했던 것이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의 속량하심을 거절하면서 심화되었다. 오늘 내 곁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저들의 사연을 접하다보면 공통된 부분이 모두 그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이는 물론 자신도 공황발작까지 겪으면서도 주께 돌이킬 마음을 거절한다. 권하면 권하는 족족 거절하거나 미룬다. 실은 다른 누구는 조현병일 게 분명한데 저들은 끝내 아니라고만 하니까, 외면하고 회피할 문제가 아닌 것이 죄이다. 나는 듣고 전하고, 글쓰기로라도 자기의 속엣 얘기를 들추어 직면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때의 나도 나의 실상을 거부하고 외면하기만 했었다.

 

그런 우리에게 주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부디 그러하기를 위해 저로 그 늪을 지나게 하시는 것일 텐데.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하나님이 원하심은 상한 심령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51:17).

 

이를 어찌하면 저들로 알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와 통화를 끊고 또 점심 때 어느 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내 마음은 어려웠으나 할 일은 선명하였다. 결국은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시려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미 6:6).” 나로 하여금 주를 생각하는 일이 저들로 ‘말할 수 있는 물꼬’가 되어야 한다. 보면 그 영혼이 위로 받지 못해서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차치하고 저들은 ‘따귀 맞은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린 모두 그러한데 저마다 살만할 때는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동안 영혼은 상하고 곪아 생각과 마음이, 몸과 정신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를 위하여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바라심으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그리하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고 외치면서(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이를 알게 하시기까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03:17-18).

 

이에,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146:2).

 

남의 이야기로 그치면 그게 다이지만 내 이야기로 가져와 나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러할 때,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7).

 

또한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8-9).

 

그러므로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10). 아멘.